[Book]희망을 꽃피우는 힘, 숲…제인 구달의 '희망의 씨앗'

'침팬지의 대모' 제인 구달의 식물 사랑 이야기

희망의 씨앗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한국에서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느라 500년이나 된 산림을 잘라내는 게 안타깝다. 이런 일들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많은 중요한 종들이 비무장지대(DMZ)에 산다는 것을 알고 있다. DMZ를 세계평화공원이 아닌 세계생태평화공원으로 추진하기로 했다는데, 이곳을 생태적으로 보전하면 남북이 평화를 이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우리에겐 '침팬지들의 대모'로 알려진 영국 출신의 제인 구달(80)이 지난 달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했던 이야기다. 1960년대부터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침팬지와 함께 지내며 연구 활동을 해온 세계적인 동물학자 '제인 구달'은 이제는 전세계의 동식물은 물론이고, 이들과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환경운동가가 됐다. 그가 특별히 식물들과 이를 지키는 환경운동에 초점을 맞춰서 쓴 책이 바로 '희망의 씨앗'이다. 책의 서문을 쓴 세계적인 식물 연구가 마이클 폴란은 "제인 구달이 동물들에게서 잠시 눈을 돌려 식물에 대한 책을 쓴 것이 '식물들에게 정말 좋은 소식'"이라며 그동안 동물에 비해 인간이 공감하기 어려웠던 식물의 세계를 풀어낸 것에 대해 기대감을 표하기도 했다. 이 책의 1부인 '자연계에 대한 나의 사랑'에서는 제인 구달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외할머니 댁이 있는 영국 본머스에서 지내면서 보낸 시간들이 "식물과 자연계에 대한일생에 걸친 애정의 기초를 이루게 했다"고 고백한다. 12살이었던 제인 구달은 작은 노트에다 그 지역의 수많은 식물과 꽃을 세밀화로 그려넣었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클럽 모임도 만들어서 활동했다. 제인 구달은 다양한 식물들의 경이로운 이야기를 마치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흥미진진하게 전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식물들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숲의 나무들은 해충이 나타나면 서로에게 경보를 발령해 나뭇잎을 맛없게 만드는 화합물을 온 숲이 생산하게끔 유도한다고 한다. 또 가뭄이 닥쳤을 때는 뿌리를 통해 신호 물질을 전달해 근처 다른 식물들이 호흡을 줄이도록 유도했다. 침팬지도 사고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였던 제인 구달은 식물 역시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전한다.1981년 제인 구달은 남편 데릭 브라이세슨이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었다. 당시 힘든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찾았던 곳이 바로 그가 오랫동안 침팬지들과 더불어 생활했던 탄자니아 곰비의 숲 속이었다. 그 곳에서 제인 구달은 "숲 세계의 영원함에 현실을 유예시킨 채 서서히 상실감을 수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숲에서 사람들은 삶이 점점 죽음에 자리를 내주고 죽음이 결국 새로운 생명체를 이끄는, 오래된 주기의 필연성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이밖에도 썩은 고기 냄새를 풍겨서 꽃가루를 날라줄 파리를 유혹하는 '썩은 고기 난초(볼보필룸 에키놀라비움)' 이야기, 네팔에서 행운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보리수나무(신부)와 벵갈고무나무(신랑)를 결혼시킨 일, 땅이 뜨겁게 달궈져야만 번식하는 남아프리카 식물 세루리아 플로리아와 관련된 에피소드 등은 다른 어떤 책에서는 접할 수 없는 자연의 흥미진진하고도 생생한 이야기다. 또 아프리카의 내전 지역에서 아이를 잃고 성폭력까지 당한 한 여성이 정원을 가꾸며 상처를 지료해내는 과정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식물을 가까이에 두는 것만으로도 인간이 얼마나 정서적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한다.하지만 인간의 욕심이나 이익때문에 고통받는 식물들도 있다. 담배, 벼, 목화, 야자수 등 다양한 상품 작품들이 더 많은 이익을 위해 대농장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그 땅을 마련하기 위해 수많은 동식물들이 서식지에서 사라지게 됐다는 지적이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는 바이오 에너지 원료로 각광받는 야자유를 공급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삼림을 벌목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에 대해서도 그는 다양한 연구결과까지 인용하면서 GMO가 원본 농산물보다 인체에 유용한 성분의 함량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제인 구달은 9.11 테러가 일어났던 세계 무역센터 빌딩에서 살아남은 '돌배나무'를 찾아간다. 당시 몸통이 불타고, 뿌리는 잘린 채 오직 가지 하나만 살아남았던 이 나무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했다. 이를 두고 제인 구달은 "우리가 자연을 포기하지 않는 한, 자연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끝없는 경제 성장이 정부와 주요 금융기관의 목표로 남아있는 한, 그리고 기업의 손익 계산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넘어선 목전의 이익에만 계속 머무르는 한, 세계의 너무 많은 거주자들이 빈곤이 경감되지 않는 채로 계속 살아가는 한, 자연에 대한 범죄는 계속될 것이다.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는 우리들은 맞서 싸우기 위해 원하는 모든 방법을 사용해야만 한다."(희망의 씨앗 / 제인 구달, 게일 허드슨 / 홍승효, 장현주 옮김 / 사이언스 북스 / 1만9500원)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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