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담뱃갑 경고그림 유감

백우진 국제부 선임기자

애연가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을 실천한다. 자신의 몸을 축내면서 사람을 대하는 마음을 가다듬어 어질게 만든다. 또는 화를 누그러뜨리며 인(忍)에 이른다.  인(仁)은 남을 사랑하고 어질게 행동하는 일을 가리킨다. 흡연자가 담배연기로 날리는 돈의 60% 이상이 세금으로 걷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간다. 이 또한 흡연자는 인(仁)을 실행한다고 할 만한 이유다. 흡연자가 이런 어진 행동을 자발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흡연자들이 낸 세금의 혜택을 나 같은 비흡연자가 함께 누린다는 사실은 고마운 일이다.  흡연자를 볼 때면 측은한 마음이 든다. 이들이 담배 한 모금의 여유를 즐기기가 점점 어려워지도록 제도가 바뀌고 있어서다. 대형건물 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된 이후 일정 규모 이상인 음식점과 술집에서도 흡연이 금지됐다.  여기에 더해 담배에 세금을 더 물려 흡연자의 부담을 가중시킴으로써 흡연율을 낮추면서 세금을 더 걷기 위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이 법 개정안에는 담뱃갑에 흡연의 폐해를 경고하는 그림을 표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흡연자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흡연을 가로막는 제재나 부담은 담배를 구매하기 전과 구매하는 행위, 그리고 실제로 태우는 단계로 나뉜다. 담뱃값이 비싸고 흡연이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은 담배 구매를 꺼리게 하는 요인이다. 담배를 피울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을 제한하는 것은 비흡연자가 간접흡연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만, 흡연자 입장에서는 담배를 구매했더라도 마음껏 피우지 못하게끔 하는 제약이 된다.  담뱃갑 그림은 흡연자가 담배를 피우기 직전에 흡연의 폐해를 경고한다. 건강을 해치는 담배를 왜 태우느냐는 최후의 만류인 셈이다.  이 만류가 효과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이 단계에서 흡연자는 이미 담배가 해로운 걸 알고 구매했고 피울 곳을 찾았고 이제 막 불을 붙이려고 한다. 니코틴을 보충하려는 충동이 경고 그림을 보자마자 이내 꺾이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더 중요한 점은 담뱃갑 경고 그림이 끽연의 정신적ㆍ물리적 쾌락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술 한 잔을 마실 때마다 망가진 간(肝) 사진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이를테면 모든 술잔 바닥에 그런 사진이 부착돼 있다면 술 맛이 나겠는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흡연자도 존중해줘야 한다. 흡연자가 담배 한 개비를 맛있게 피울 수 있는 권리를 지켜줘야 한다. 백우진 국제 선임기자 cobalt10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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