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신에게는 아직 12㎏의 지방이 남아있습니다

최근에 접한 최고의 패러디는 '신에게는 아직 12㎏의 지방이 남아 있습니다'는 문구와 함께 '감량'이라는 굵은 제목이 새겨진 스포츠센터 홍보 전단지다. 배우 최민식의 맹수같은 표정을 배경 삼아 '감량' 앞에 작은 글씨로 '체지방'을 추가한 센스까지. 영화 '명량'의 '명'을 '감'으로, '12척의 배'를 '12㎏의 지방'으로 바꾼 위트는 둘째치고 '체지방 감량의 고통 속에서도 12㎏을 기어이 더 빼고야 말겠다'는 결사항전 임전불퇴의 결연한 의지가 눈물겹다. 다이어트가 절실한 사람이라면 당장이라도 센터에 전화를 걸지도 모른다. 쭉쭉빵빵한 센터 언니ㆍ오빠들이 우리 몸의 '적들'을 일거에 격퇴시켜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다이어트가 얼마나 힘든지는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급격히 줄인 식사량에 반비례해 부쩍 늘어난 운동량으로 정신은 아득해지고 성격은 까칠해지면서 만사가 귀찮다. 기름진 음식들을 차마 보지 못해 고개를 들면 하늘에는 닭다리, 삼겹살, 햄버거가 구름처럼 둥둥 떠다닌다. 지글지글 요리 소리는 마귀의 속삭임이요, 갓 구워 모락모락하는 김은 요괴의 손짓이다. 그럴 때면 눈 감고 귀 막으며 하느님, 부처님, 조상님, 삼신할멈을 애타게 불러 보지만 '살과의 전쟁'에서 이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신에게는 아직 12㎏의 지방이 남아 있습니다'는 문구가 더 없이 장엄하고 숭고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옛날에는 호환 마마가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지만 이제는 과식, 과체중이 인류를 위협한다. 비만은 '21세기 신종 전염병'이라고 세계보건기구(WHO)도 경고했다. 2025년 전 세계 인구 두 명 중 한 명은 비만에 시달릴 것이란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중년 남성(40~60세)의 과체중 비율이 40%를 넘어섰다. 너도나도 '배둘레햄(복부비만)'이다. 패스트푸드 섭취는 늘어난 반면 덜 움직이고 덜 뛰고 덜 걷는 탓이다. 게다가 비만은 당뇨병, 암, 관절염 등을 동반해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킨다. 지나치게 많이 먹어 탈이 난 몸을 치료하는데 또다시 약을 먹어야 하는 꼴이다. 잡식동물인 인간의 과욕이 낳은 모순이다. '아름답고 건강하게'는 인간의 본성이다. 다이어트 열풍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다이어트할 게 어디 몸뚱이 뿐일까.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을 줄이고 시기와 질투와 욕심을 뺀다면 우리사회가 보다 건강해지지 않을까. 타락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따뜻한 영혼이 간절해진다. 패러디를 다시 패러디하자면 '신에게는 아직 3g의 영혼이 남아 있습니다'이랄까.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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