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문'의 한장면
어린 시절 세계문학전집에서 읽은 책 중에 인상깊었던 것을 꼽으라면 나는 마르셀 에메(1902-1967)라는 프랑스 작가를 든다. ‘벽을 통과하는 사나이’(최근엔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로 번역되어 나와 있다), ‘사빈느라는 여자들’을 읽고나서 오랫동안 이야기의 매혹에 푹 빠졌던 기억이 난다. ‘벽을 통과하는 사나이’는 말 그대로 우리가 열린 문을 드나들 듯 마음만 먹으면 벽을, 부딪침없이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이런 반문의 벽을 제목으로 일단 통과해버린 뒤 그 사람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을 아주 현실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는 언론인이었다. 뉴스를 만나면서 현실과 비현실의 긴장감이 주는 이야기를 즐겼다. 이 점에서 딱 내 스타일이다. 벽을 통과하는 저 친구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처음에 그는 그 능력을 스스로도 의심했지만 몇 번 써먹고 나서는 그것을 요긴하게 인생에 활용한다. 그런데 어느 날 벽을 통과하다가 문득 사단(事端)이 생기는 것이다. 작가 에메는 이런 말을 했다. “아이들은 경이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자라서 어른이 되면 왜 비현실에 대한 상상력을 잊어버릴까?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어른들 역시 경이로운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기담(奇談)은 현실 속의 문제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친절하고 비통한 통찰을 이끌어준다” 에메의 ‘사빈느라는 여자들’은 더욱 놀라웠다. 아름다운 여인 사빈느는 자기를 순간적으로 복제하고 다시 마음대로 복제인간을 거둬들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처음에 그녀는 아주 사소한 개인적인 일에만 이 능력을 썼다. 그러다가 유부녀인 그녀가 젊은 작가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사빈느2를 만들어 그 총각과 데이트를 즐기고 사빈느1은 현재의 신랑과 문제 없는 삶을 살아간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조금씩 문제가 노출되지만 적당히 얼버무리면서 두 개의 존재로 두 개의 삶을 산다. 그녀가 한 권력자의 청혼을 받게 되면서 복잡해진다. 여러 명의 사빈느가 파리를 돌아다니고 사교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혼선과 갈등이 생겨난다. 오래 되어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대강 그런 스토리였다.(궁금하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영화 '더문'의 한장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 개의 존재로 살아가는 분화(分化)된 인간에 대한 환상을 가졌다. 손오공이 제 털을 뽑아 훅 불면 손오공이 여럿 생겨나는 장면이 사빈느와 겹치면서, 나 또한 ‘지금 여기’라는 시간적 공간적 저주에 붙들린 존재가 아닌, 초월과 범재(汎在)의 신적인 인간을 꿈꾸어보았다. 이 ‘에메’모호한 스토리들의 매혹. 아직도 여진(餘震)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영화 ‘더문(The Moon)’은 에메와 황우석 사이를 진자(振子)운동하던 나의 상상계의 무엇에 일대 충격을 준 ‘스토리와 통찰의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에베의 사빈느는 불가능과 비현실을 단숨에 뛰어넘은 상상의 피조물이었지만, 대한민국 황우석에게는 ‘현실의 문턱’까지 닥쳐온 문제였다. 여러 가지 문제와 논란이 있었지만, 황우석이 나아가려 했던 실험의 목표는 성체(다 자란) 세포의 복제였다. 아직도 그에 대한 여론이 분분한 상황에서 그의 공과(功過)를 따지고 해명하는 일은, 여기가 적절한 자리는 아니다. 다만 동물의 어른세포를 복제하는 일이 성공을 거둔다면, 결과적으로 인간이 인간을 복제해서 의도하는 수량(數量)으로 상품처럼 생산해낼 수 있어진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1993년 황우석이 국내처음으로 생산한 시험관 송아지는 수정란을 복제한 것이다. 이것은 핵이식과 세포융합, 복제 수정란 배양 기술 등이 동원되어 이뤄낸 개가였지만, 체세포가 아닌 난자를 복제하는 것으로 여전히 조물주의 생명시스템의 기본을 따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1996년 7월 영국의 월머트와 캠벨 연구팀이 성공시킨 ‘복제양 돌리’는 체세포를 이용한 복제로 인류에게 큰 충격을 준다. 당시 통념으로는 수정란이나 초기 배아는 복제가 가능하지만 이미 분화가 진행된 세포는 복제가 불가능했다. 그러면 돌리는 어떻게 복제했을까. 분화가 진행된 세포라 할지라도 그것을 굶겨서 분화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포 주기를 다시 조정하면 분화세포도 복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발견은, 황우석을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던졌다. 1999년 2월 황우석의 ‘체세포 복제소’ 영롱이가 태어났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체세포를 통한 복제인지에 대해 의혹이 제기된다. 2004년 그는 인간복제배아 줄기세포 1개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줄기세포는 세포 중에서도 장기(臟器)와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핵심세포를 말한다. 도룡뇽이 꼬리가 잘려도 다시 생겨나는 것, 히드라가 몸의 20분의1만 있어서 몸 전체를 다시 만들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이 지닌 줄기세포의 힘이다. 황우석이 그것을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듬해에는 11명의 환자 체세포에서 복제배아 줄기세포를 모두 만들었다는 실험 결과를 내놓았다. 그런데 세상을 경악케한 두 개의 논문에 조작 의문이 제기되면서 황우석의 성취는 희대의 사기극으로 낙인 찍힌다. 이후부터 지금까지 황우석은 여전히 분발하고 있지만 상황을 반전시킬만한 뚜렷한 진전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와 함께 인간복제에 대한 인류의 열정 또한 암중모색에 들어가 있는 상태이다. 과학이 조물주의 능력에 넘나드는 ‘목젖’에서 잠시 주춤거리고 있는 사이, 스토리라는 상상의 영역에서 ‘넥스트 황우석’의 세계를 내놓았다. 영화 ‘더문’이 접촉하고 있는 영역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영화 '더문'의 한장면
영화 속에서 인간은 달을 ‘정복’했고, 그것을 지구의 삶에 활용하고 있다. 명월(明月)산업주식회사(LUNAR Industries Ltd)는 한미합작회사다. 이 기업은 달에 있는 바위들에 축적된 태양에너지를 뽑아내는 기술을 개발해, 전세계 에너지 사용랑의 70%를 공급한다. 지구가 그토록 골머리를 앓아온 에너지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한 셈이다. 그런데 이 회사가 왜 한국과 미국이 합작한 것으로 설정되었을까.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인간복제와 관련한 황우석 스캔들을 조롱할 목적이라고 분개하기도 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볼 필요가 있겠는가. 던칸 존스감독은 박찬욱감독의 ‘올드보이’를 보고 크게 감동하여 그에게 존경하는 뜻을 담아, 영화에서 한국기업과, 한글로고 그리고 한국말을 등장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존스감독에게는 한국인 여자친구도 있다고 하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감독의 개인적인 감정들을 아로새기기 위해 영화 속에 한국인을 위한 선물을 넣어놓았다는 것은 지나치게 피상적인 설명이 아닐까 한다. 이 영화가 겨냥한 것은 ‘우주’가 아니라 ‘인간복제’이다. 달이라는 무대는 그야 말로 ‘인간복제’가 활용되는 공간일 뿐이다. 명월산업은 미국의 우주기술 및 태양에너지 채취기술과 한국의 인간복제기술이 손을 잡고 일하는 합작기업이라는 암시가 숨어있다고 본다면, 영화 속에서 ‘한국’의 무게감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미국은 달의 암석에서 무궁무진한 태양에너지를 발견해내고 사업을 서둘렀으나, 채굴 작업을 수행할 노동자를 구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달이라는 환경이 인간이 지속적으로 거주하기엔 여전히 거의 부적절했기에 인력(人力)을 쓸 수가 없었다. 이때 대한민국에서 ‘넥스트 황우석’이 나타나 체세포에서 인간을 복제할 수 있는 기술이 완성됐다고 발표를 한다고 상상해보자. 미국의 에너지기업은 득달같이 달려와, 공동사업을 제안했을 것이다. 양국의 장삿꾼들은 지구인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건장한 미국 남성 샘 벨의 체세포에서 복제한 클론 수십명을 ‘생산’했다. 클론의 머릿속에는 샘 벨의 모든 것을 입력하고, 달과 지구의 화상통화 내용까지도 철저히 기획했다. 물론 샘 벨이 처음에는 직접 달에 근무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인간이 달에서 생명의 지장없이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굳이 클론을 쓸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르니, 그보다 양국의 장삿꾼들이 더 영악하게 모든 것을 ‘준비’했다고 보자. 이 영화는 우주영화라기 보다는 ‘인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하는 영화이다. 달 위에는 ‘인간’은 없고 복제인간과 컴퓨터 밖에 없다. 인간은 지구에서 원격으로 그들을 조정하고 감시하고 경영한다. 달 채광기지의 이름이 ‘사랑(SARANG)’인 것도 뜻없이 지은 게 아니다. 에너지공급이 인류에 대한 ‘사랑’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복제인간에게 공급해야 하는 ‘정신적 양식’ 중에 사랑이 중요함을 거기에 심어놓은 것이다. 그 사랑 때문에 참고 희생하고 일하는 인간노동자의 정신을 복제인간에게 심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영화 '더문'의 한장면
우주선으로 가면서 초콜렛이 먹고싶은 복제인간을 이런 기묘한 삼단논법으로 설득한다. “초콜렛이 먹고싶다 ? 넌 충분히 달콤하잖아 ? 넌 초콜렛이 필요없지” 충분히 달콤하다는 설득은 지구의 아내로부터 충분히 사랑을 받고 있다는 각인이다. 초콜렛이 먹고싶은 충동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지만 사랑받고 있음을 그런 방식으로 세뇌시킨다. 기지에 붙어있는 잠언은 이런 내용이다. “금욕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인내심으로 그것은 늘 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채광기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Mining Base ; SARANGCrew : 1Contract : 3Years 사랑기지의 ‘승무원’은 1명이며 3년 계약직이라는 의미다. 3년이란 시간은 체세포 복제실험을 통해 클론이 달에서 문제없이 살 수 있는(혹은 그때까지의 기술로 연명할 수 있는) 기한을 바탕으로 정해졌을 것이다. 3년 뒤에는 지구로 돌아가 가족의 품에 안길 수 있는 희망을 심어놓음으로써 업무를 능률적으로 할 수 있도록 설계했을 것이다. 진짜 샘 벨의 아내 테스가 보내는 동영상 메시지는 ‘사랑’의 환상을 지속시키는 투약(投藥)과도 같은 것이 어린 아이 이브가 나와서 “아빠는 우주인(ASTRONAUT)”이라고 중얼거리는 것 또한 정교하게 설계된 신념 고취의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사랑호의 복제인간에게 엄격하게 금지된 것은 ‘자신이 복제인간임을 아는 것’이었다. 하지만 채광기지 건물 내를 통제하는 컴퓨터 커티는 저 문제에 대해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 명의 복제인간이 ‘제거’되면 다른 복제인간을 ‘시동’걸었기에 클론끼리 만나는 상황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5번째 클론이 채광 작업을 하다가 사고가 나서 외부의 작업차량에 부상을 입고 갇혀있는 상황이 발생한다. 커티는 인력의 부재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6번째 클론을 해동(解凍)해 작동시켰다. 이 샘6호가 일을 저지른다. 그는 기지 외부의 사고를 눈치채고, 컴퓨터 몰래 기지를 빠져나가서 샘5호를 구해온다. 두 명의 클론이 한 기지에 동시에 있게 되면서, 둘은 자신의 정체를 인식하게 된다. 처음에는 클론임을 부인하며 서로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 “내가 복제인간하고 얘기하고 있다는 게 문제지.”“난 복제인간 아니라고! 네가 복제인간이겠지.”“그래 샘샘(samsam)이다. 나도 복제인간 아니야.”“넌 정말 나를 많이 닮았다.”“네가 나를 닮았다는 건 어때.”“그래 서로 닮았다.” 세임세임(same same)이 샘샘(sam sam)으로 쓰이니 기가 막히다. 둘 다 샘이니 그 상황에 대한 패러디다.
영화 '더문'의 한장면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두 사람은 힘을 합친다. 그들은 동영상 직통전화가 안되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작업장 바깥으로 탐사를 해서 외부의 통신교란 설치물을 찾아낸다. 직접 통화를 해보니, 아내 테스는 몇 년전에 이미 죽었고 갓난쟁이 이브는 열 다섯 살이나 되었다. 또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복제인간이 수없이 들어있는 비밀지하실도 찾아낸다. 이런 상황을 만난 뒤, 컴퓨터 커티에게 묻는다. “내가 정말 복제인간이야?”“테스트를 받는 건 심신을 안정시키기 위해 모든 새로운 복제인간이 거쳐야하는 일반적인 절차예요.”커티의 대답에 샘은 충격을 받는다.“그럼 테스와 이브는?”“기억이 심어진 거죠. 진짜 샘으로부터의 조작된 기억.” 이것이 사랑의 진상이며, 영화가 적출해낸 복제인간 기술의 ‘잔혹한 만행’의 핵심이다. 이 얘기를 해준 뒤 샘이 넋나간 상태로 있자, 컴퓨터일 뿐인 커티는 ‘눈물’을 흘리는 이모티콘을 보낸다. 인간의 기억을 조작해 심어놓고 그 ‘사랑의 마음’을 이용하여 노동력을 착취한 뒤 버리는 그것이 사랑호가 말하는 사랑과 인내이다. 클론6호가 마침내 달을 탈출해 지구로 돌아갈 때 커티는 이렇게 인사한다. “지구에 도착하면 모든 것이 기억과 같기를.”그때 클론은 말한다.“우린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야. 인간이라고.”이후 6호는 달에서 저질러진 복제인간에 관한 증거자료들을 폭로했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가 발칵 뒤집힌다. 사건을 기획한 당사자들은 클론의 입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맨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 클론5가 입고 있던 노란 티셔츠에는 ‘깨어나(WAKE)’라고 씌어져 있었다. 해동시켜서 태어나는 존재에 대한 익살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들이 깨어나서 인간의 비인간적인 음모를 밝히는 존재가 되니 이것 또한 치밀한 복선이다. 복제인간 샘6호가 인간들을 속이기 위해 전략을 짜면서 5호를 설득하는 이 말이 가슴에 깊은 울림으로 남는다. “그들은 장삿꾼이라고. 걔네들은 투자자와 손님이 있어. 뭐가 싸게 먹히겠어? 새로운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 돈과 시간을 들이는 게? 아니면 복제인간 몇 개 예비로 만드는 게?” 에메가 만들어낸 사빈느 복제인간은, 1호 인간 사빈느의 존엄과 주체를 지닌 존재였다. 그래서 세상을 혼란하게는 만들었어도 인간에 대한 본질적 회의감은 들지 않는 ‘산뜻한 비현실’이었다. 그러나 던칸 존스의 샘 벨 복제인간들은 1호 인간 샘 벨과는 전혀 별개의 ‘인간의 인간상품’일 뿐이었다. 우리가 만나야할 섬뜩한 미래현실과, 인간이 인간에 대해 지녀야할 근본적인 예의를 돌아보게 하는, 줄기세포의 묵시록이었다. 다시 영화가 처음 시작될 때 묻던 질문 하나를 여기 기록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Where we are now?)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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