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서해는 거칠다. 간만의 차가 심하고 물살은 빠른 데다 속이 캄캄하다. 그러나 부패는 더욱 힘이 세다. 병들고 허약한 나귀를 채찍으로 일으켜 세우듯 낡고 허술한 배에 생때같은 어린 목숨들을 싣고 거친 바다를 나서게 할 만큼 힘이 세다. 통신기록과 세월호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고 전문가들이 분석하기 전에는 어떻게 침몰했는지 그 직접적인 원인은 모른다. 그러나 선박에 대한 점검과 운항의 관리 감독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다. 도를 넘은 행정청과 업자의 유착관계가 이미 밝혀졌고 그 부패의 고리는 협회니 조합이니 하는 업자와 퇴직관료들의 단체다. 떼죽음의 음습한 그림자를 몰고 다니는 사이비종교 집단이 수천억원의 빚을 딛고 일궈낸 수천억원의 재산 역시 부패의 짙은 그늘 아래서 핀 독버섯이다. 부패는 대통령의 명령도 잠재운다. 대통령은 처음 방문한 날에 대다수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명령'을 했고,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연일 텔레비전에 나오던 정부관계자는 그날도 변함없이 헬리콥터 수십대, 선박 수백대, 구조요원 수백명이 투입됐다고 읊어댔지만 바로 대통령이 명령한다고 했던 그날, 실제적인 구조 활동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관련된 국가기관들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결정적인 순간에도 국민이 아니라 업자의 편에 설지도, 선 것인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을 정도로 미심쩍은 행태를 보였다. 그들은 인명구조도 민영화했고, 대통령의 영은 서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 권력의 큰 줄기를 대통령이 행사해 행정부를 조직하고 권한을 분배한다. 그 조직에 영이 서지 않고 그 기능이 기대에 어긋난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대통령이 지는 것이다. 우선 의혹을 해결할 책임이 있다. 삭제되지 않고 편집되지 않은 통신기록과 회의록, 선박과 그 운항의 자료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납득과 설득, 충격에 대한 위안이 필요하다. 색깔론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기능 부전에 빠진 조직들에게서 권한을 회수해 새로운 조직에 재분배할 책임이 있다. 어떻게 통제와 감독을 맡을 조직을 구성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숙고가 필요하며 섣불리 단편적으로 제안할 일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김영삼 정권 시절 어설프게 세계화에 대한 논의를 하다가 IMF 지원을 받는 사태를 맞고는 모든 정권이 신자유주의를 복음처럼 받들고 규제완화, 탈규제를 외쳤다. 신자유주의의 전도사 후쿠야마가 변명하듯이 신자유주의하에서도 체제유지가 가능한 조건들이 있는데 이를 빼놓고 수입한 변두리 관변학자들은 이를 규제에 적대적인 방향으로 확대 재생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업자와 국민의 사이에서 업자 편을 들기에 익숙해진 역대 정권들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깃발 쓰러뜨리기 게임을 벌이다 이와 같은 극단적인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엊그제 대통령이 봉축법요식에 참여해서 "불의를 묵인해준 무책임한 행동들이 결국은 살생의 업으로 돌아왔다"고 한 것은 이러한 의미로 읽힌다. 이제 정책기조가 바뀌어야 한다. 규제는 실상 공익을 위한 것이며, 그 공익은 사익을 위해 압력을 행사할 조직을 갖추지 못한 자들의 안전판인 것이다. 곧 지방선거가 치러지고 월드컵이 온다. 사람들은 열광하고 세월호의 침몰은 잊을 것이니 그때까지만 견디면 된다고 판단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이 사건의 충격은 총체적이고 전면적이면서도 내면의 저 아래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 기간이 그냥 지나가면 영이 서지 않는 행정부를 바꿔 제대로 이끌어갈 동력도 잃게 된다. 기다리면 묻히리라 기대한다면 이번 정권이 회생할 기회도 같이 묻히게 될 것이다.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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