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사고 후 첫 주말, 단원고 교문 옆에 무사귀환을 바라는 시민들의 메시지가 빼곡히 붙어있다.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주말 나들이도 없어-텅빈 시내…'무사기환' 바라는 현수막만 나부껴-단원고생들 국화꽃 들고 추모단에[아시아경제 박나영 기자, 유제훈 기자] 세월호 침몰사고 후 첫 주말 안산은 온 도시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오랜만에 찾아온 봄날씨였지만 거리엔 사람이 드물었다. 실종된 학생들이 다니던 단원고 인근 공원에선 운동이나 휴식을 즐기는 시민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간혹 마주치는 시민들의 표정은 어둡고 하나같이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시내 곳곳에 걸린 '단원고 학생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합니다'라는 현수막만이 비탄에 빠진 안산의 분위기를 알려주는 듯했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인데... 말할 기분이 아니죠." 토요일 오후 8시 한창 젊은이들로 북적여야 할 중앙동은 매우 한산한 모습이었다. 택시기사인 김모씨(50)는 "길에 사람도 없고 일할 기분도 아니어서 일찍 들어갈 것"이라며 "뉴스 듣고 있기가 힘들어 (차안에서) 라디오도 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6년 동안 안산에서 살았다는 한성용씨(52)는 "주말이면 10대, 20대 애들로 북적이는 곳인데 오늘은 정말 조용하다"고 말했다. 이어 "애들 2명이 다 대학생이라 한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너무 착잡하다"고 했다. 그는 "안산 외부 지역 사람들로부터 전화를 많이 받는다"며 "서울에 사는 어머니도 사고소식을 접하자마자 전화를 해서 (안산에 터를 둔) 처가 식구 중 누가 사고를 당한 게 아닌지 걱정했다"고 말했다. 한씨는 학생들을 못 구했다는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원고 교감선생님에 대해서도 "나랑 동갑인데..."라며 안타까워했다.20일 일요일 실종된 학생만 109명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고잔 1동의 분위기는 더욱 암울했다. 이곳 주민들의 문화공간이었던 안산 올림픽기념관에는 "침몰사고의 아픔을 함께하고, 전국민적인 애도 분위기에 동참하기 위해 4월 일부 프로그램을 휴강합니다"라는 공지가 붙어 있었다. 단원고 근처 '명성교회'에는 실종자들을 위한 기도회를 알리는 현수막만 펄럭였고, 상인들은 가게 문을 열어 놓고도 혹시나 생존자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온통 뉴스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슬퍼할 여력도 없는 듯 사망자가 나왔다는 보도에도 상인들은 망연자실 지켜보기만 했다. 학생ㆍ교사들이 받을 충격을 우려해 굳게 문을 닫아 건 단원고에는 학생과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작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는 어린 단원고 학생들은 손에 순백색 국화 꽃 한 송이씩을 들고 교문 옆에 놓인 작은 추모단을 찾았다. 추모단에는 '형아 누나 조금만 참아주세요, 서로서로 용기내세요', '간절히 소망합니다.. 제발' 처럼 학생들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쓴 쪽지로 가득했다. 이곳을 찾은 김모(43ㆍ여)씨는 울먹이며 "매일 같이 마주치던 아이들이 배 안에 있는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면서 "그저 제발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 뿐"이라며 뒷말을 잇지 못했다. 학교 안을 둘러볼 수도 없지만 시민들은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저녁께 찾은 고대 안산병원도 슬픔과 정적에 싸여 있었다. 병원 로비 구석에서는 구조된 한 남학생이 고개를 떨구며 연신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장례식장의 유족과 문상객들도 더 이상 눈물 흘릴 힘이 없는지 그저 멍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19일 안산 단원고 재학생과 동문회가 안산 초지동 화랑유원지에서 연 촛불집회에 안산의 시민과 학생 2000여명이 참석해 실종자들의 무사기환을 기도하고 있다.
여느 주말이었으면 시내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있었을 안산의 고교생들은 19일 저녁 안산 초지동 화랑유원지에 모여 촛불을 밝혔다. 단원고 재학생과 동문회가 3일째 열고 있는 촛불집회다. 이날은 안산 시내 중고교생은 물론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나온 시민들까지 집회 참여자가 2000명에 달했다. 선후배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단원고 재학생들의 낭독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연신 눈물을 닦아내는 모습이었다. 행사진행요원으로 일하고 있던 단원고 졸업생 엄주현씨(21)는 "모교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 달려왔다"며 "졸업생들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2때 수업을 들었던 문학선생님을 잃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촛불집회 소식을 듣고 친구 10여명과 같이 왔다는 권구완군(17)은 "단원고 학생은 아니지만 실종자 명단에 중학교 선배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이렇게 큰 일인지 몰랐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다"며 인터뷰 내내 굳은 얼굴을 풀지 못했다. "얘들아, 우리 목소리 들리니? 기다리고 있어. 꼭 돌아와줘" 행사가 끝날 무렵 학생과 시민들의 합창에 학생과 시민들의 흐느낌만 커져갔다.박나영 기자 bohena@asiae.co.kr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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