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세월호 속보경쟁 ‘슬픔’이 유통되는 현실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슬픔’이 유통되고 있다. 방식도 비인간적이다. 상처를 자극하는 방식이다. 때로는 엄청난 기쁨을 안겨준다. 곧이어 벼랑 끝으로 밀어 떨어뜨린다. 마지막 남은 한조각의 희망을 산산 조각낸다. 19일 오전 10시 현재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302명이 숨을 거두거나 실종됐다. ‘세월호’라는 이름의 배에 탄 이들이다. 친구들과 추억여행을 꿈꿨던 젊은 청춘들이 그곳에 있다. 엄마 아빠의 보살핌을 받으며 귀하게 컸던 우리 아이들이다. 누가 그들을 시커먼 바다 속에 갇히게 했을까. 절망의 시간을 경험하게 했을까. 승객들을 버리고 나 홀로 탈출했다는 그 선장 때문일까. 함께 탈출했다는 다른 선원들 때문일까. 마음껏 욕을 하면 마음이 풀릴 것 같지만 정말 그럴까. 가슴 속 답답함은 그대로다.
‘슬픔의 공유’, 대한민국을 휘감고 있는 그 존재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런 마음 말이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진다. 아이들이 울부짖으며 애타게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데 정부 당국은 이유 없는 낙관론을 편다. 심지어 아이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주장을 전한다. 그렇게 부모의 마음을 한껏 고무시킨다. 절망의 시간이 끝난 것처럼 들뜨게 한다. 그리고는 ‘잘못된 정보’라고 사실관계를 전한다. 벼랑 끝에서 떨어지기 일보 직전까지 몰린 이들을 그렇게 무너뜨린다. 언론은 정부에 책임을 돌린다. 그렇게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 ‘슬픔’의 유통 주체는 바로 언론이다. 그것도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상처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왜 그럴까. 왜 ‘슬픔’을 상품화할까. 이윤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관심은 곧 돈이다. 광고매출액을 올릴 수 있고 언론사 인지도도 높일 수 있다. ‘보도의 홍수’를 가능하게 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언론도 잘 안다. 이건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빗나간 속보 경쟁은 수많은 오보를 양산한다. 학생 전원 구조 소식을 전한 이는 수많은 언론이다. ‘속보’라는 타이틀을 달고 경쟁적으로 뉴스를 쏟아냈다. 차분하게 팩트를 확인하기보다는 다른 곳보다 빨리, 더 많이 뉴스를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장이 보도로 둔갑하기 일쑤다. 수많은 사람의 인터뷰가 뉴스로 전해진다. 주장이 검증됐는지는 의문이다. 어느 방송사는 자신을 민간잠수부라고 밝힌 홍모씨 인터뷰를 전했다가 보도국장이 공식 사과를 해야 했다. 수많은 사람에게 인터뷰 내용이 전달된 뒤였다. 혼란은 그렇게 증폭된다. 문제는 그러한 과정들이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는 피해자 가족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가족들은 더는 버틸 수 없는 심리적 상태다. 금세라도 무너질 수 있는데 힘겹게 버티고 있는 이들이다. 어떻게 키운 아이들인데, 눈물과 땀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키워낸 아이들인데 그렇게 보낼 수 있겠는가. 뭔가 희망의 끈을 이어가야 가족들도 버틸 수 있다. 그런데 왜 언론은 가족의 마음을 헤집어 놓고 무표정한 얼굴로 알고 보니 ‘오보’라는 얘기를 전할까.

▲세월호 침몰 희생자 빈소

신속함이 아니라면 정확함이 중요할까. 그것도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리다. 당시 세월호에 승선했다 어렵게 목숨을 건진 이들을 만나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들어야 할까. 친구들이 어떤 상태였는지, 탈출과정은 어땠는지, 지금 심경은 어떤지 등을 물어야 할까. 그러나 정확한 보도도 ‘정도(正道)’라는 게 있다. 지금 세월호에 탔다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아이들에게 그런 것을 묻는다는 행위가 무엇인지 정말 모르는가. 평생을 안고 갈 수도 있는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행동이다. “끔찍한 장면을 생생히 말해보라”는 요구는 위태로운 아이들의 마음을 찢어놓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재난보도는 신속하고 정확한 내용 전달보다 중요한 게 ‘사람’이다. 섣부른 속보 경쟁의 폐해를, 정확함을 가장한 ‘심리적 폭력’의 문제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같은 시기에는 언론의 진중한 접근이 상처입은 이들이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 뉴스’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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