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력이 국력이다-10대 과제 집중 조명<8>연애담
연애사실 알렸다가 "남친이랑 어디까지…" 대놓고 성희롱돌싱女에 이혼 왜 한거래?…사적 호기심에 뜬소문 나돌아
[아시아경제 이창환 기자, 이정민 기자]#1.중견기업에 근무하는 30대 초반의 여직원 L씨는 업무상 연관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연애 사실을 굳이 알리지 않고 있다. 회사 특성상 거래처에 남자 직원이 많은데 '남자 친구가 있다'고 얘기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반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남자친구가 없다고 할 때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호의적으로 이것저것 해주려고 했지만, 있다고 하면 호의적인 반응이 줄어 들어드는 경험이 많다. L씨는 회사 내부에서도 친하지 않은 직원들에게는 남자친구가 없다고 얘기한다. 남자친구가 있다고 하면 애인의 직업은 무엇인지, 언제 결혼할 것인지 등 탐정처럼 캐묻곤 해서다. 연애에 관해 자세한 이야기를 했다가 헤어지고 난 뒤 곤혹스러웠던 경험도 있다. #2.공공기관에서 일하는 30대 중반의 여직원 K씨는 최근 한 여성 동료로부터 "남직원 C씨가 팀 회식 자리에서 너랑 잤다고 이야기를 했고 그게 소문이 돌아서 사내 직원 상당수가 수군대고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K씨는 C의 얘기가 사실이 아니며 그동안 C는 지속적으로 술만 먹으면 전화를 걸어와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피해자는 자신인데 가십거리가 됐다는 사실에 K씨는 너무 불쾌했다. 그녀는 사내고충처리위원회에 성희롱 진정을 접수했는데 얼마 후 되레 C씨가 K씨와 동료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K씨는 C씨에게 맞고소로 대응할 생각이지만 직장 동료들의 수군거림을 견딜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여성의 사랑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큰 고민거리다. 남성들은 직장에서 자신의 연애를 당당하게 털어놓지만 여성들은 조심스러운 점이 많다. 대놓고 연애담을 이야기했다가는 삐딱한 시선을 견뎌야 하기 일쑤다. 여자들은 항상 조신하고 연애에 방어적이어야 한다는 고지식한 시각도 잔존한다. 증권가 찌라시에서 여자 연예인들의 열애설이 주된 내용인 것만 봐도 우리나라가 얼마나 보수적인지를 알 수 있다. ◆사내연애도 여성 직장인들에게는 큰 고민= 직장 남성 동료들의 적극적인 구애도 부담스럽다. 동료의 사랑 고백을 무심코 받아들이기가 조심스러운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자칫 헤어지기라도 하면 회사에서 얼굴 마주치기 민망할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남자보다 여자인 자신에게 더 쏠리게 될 것도 우려스럽다. 최근 한 포털사이트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내연애를 한다면 절대 공개하지 않겠다는 의견이 40%가 넘었다. 극소수 친한 이들에게만 알리겠다는 의견도 40%나 됐다. 사내연애 공개를 꺼리는 이유로는 '사귀다 헤어지면 같이 근무하기 힘들 것 같다'는 답과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도 상대방이 볼 수 있다'는 답이 주류를 이뤘다. 주목할 점은 사내연애를 하다가 헤어지게 된다면 직장을 옮기겠다고 답한 남성 직장인은 3%에 불과한 반면 여성 직장인은 6%를 기록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사내연애에 더 큰 부담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실제로 게임회사에 다니는 P씨는 얼마 전 사내연애를 시작했는데 하필 상대방 남자가 소문난 카사노바였다. P씨가 카사노바와 사귀게 되면서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참하고 성실한 애가 왜 저런 애를 사귀는지 모르겠다. 뒤로 호박씨 까고 다녔다", "아마 쟤(카사노바)보다 얘(P씨)가 더 날라리일거다". 결국 P씨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직장을 그만둘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국내 한 조선소에 근무하는 여직원 Y씨도 공개적으로 사내연애 중인데 직장상사가 유달리 본인한테만 짓궂은 농담을 던져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남자친구랑 끝까지 가봤냐"는 등 성희롱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그때마다 Y씨는 문제를 제기했지만 상사의 반응은 더욱 기가 막혔다. 자기는 아는 사람이 많아서 신고를 해도 상관없다는 둥 아빠 같은 마음에서 하는 말인데 무슨 성희롱이냐는 둥 갖가지 변명으로 맞받아치는 것이었다. Y씨는 이런 곳에서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자괴감에 빠져 있다. 여성 리더들은 이같은 시각이 시대착오적이라고 꼬집는다. 이길순 에어비타 대표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여러 사람들로부터 축복받아야 할 연애가 손가락질 받는 것은 시대 착오적 발상"이라며 "남녀가 동등한 입장에서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돌아온 싱글일수록 더 조심스러워= 이혼율이 높아지면서 주변에 돌아온 싱글들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1000명당 1.2쌍 정도였던 이혼율은 2000년대 들어 3쌍까지 늘었다. 재혼율도 높아지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2011년 전체 혼인건수 중 재혼 비중은 21.37%로 1990년 10.68%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직장 내에서도 이혼을 경험한 동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혼남과 이혼녀에 대한 편견은 여기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이혼남의 경우에는 직장 동료들이 큰 관심을 갖지 않지만 이혼녀에 대해서는 지나친 관심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이혼 경력이 승진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이혼 여성들은 직장에서 이혼 사실을 드러내지 않은 채 숨죽여 지내는 고통을 감수하고 있다. 돌싱녀인 30대 중반 B씨도 현재 직장에서 이혼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 전 직장에서 이혼 사실을 공개했는데 이후 자신이 업무상 실수를 하면 상사가 이혼 얘기까지 꺼내며서 인신공격성 발언을 쏟아내는 통에 얼굴이 화끈거렸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배우자의 외도로 인해 이혼한 사실도 가슴이 아픈데 직장에서 모욕을 당하자 더 이상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B씨는 새로 옮긴 직장에서는 이혼 사실을 숨기고 가정사도 되도록 말하지 않고 있다. 그녀는 "주변에 이혼한 사람이 있으면 회사에서는 절대 밝히지 말라고 조언하고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미혼모는 이혼녀보다 더 심한 차별대우를 받는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공적인 영역은 사라지고 사적인 호기심만 남는다. 온갖 소문들이 무성해지면서 사실상 일을 하기가 불가능해진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혼모의 95%가 "임신 이후 직장을 그만뒀다"고 답했다. 미혼모라는 이유로 채용 과정에서 받는 불이익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미혼모들은 답했다. 이은정 한국맥널티 대표는 "돌싱녀가 있으면 돌싱남도 있을텐데 돌싱녀만 금기시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라며 "임직원들부터 돌싱녀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없애야 전체 직원들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고 꼬집었다.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이정민 기자 ljm1011@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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