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출판계에 '정도전' 열풍이 거세다. 소설, 인문학적 연구서 등이 속속 등장해 '정도전 읽기'를 더욱 부추기는 분위기다. 독자층도 장년층에서 젊은 층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책 중에는 새롭게 선보인 소설부터 절판됐다가 복간된 인문서까지 천차만별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제연구소장의 '정도전과 그의 시대'(옥당 출간)와 소설가 김탁환의 작품 '혁명-광활한 인간 정도전'(전 2권, 민음사 출간)을 꼽을 수 있다. 두 작품은 각각 소설류와 역사인문서 분야에서 '정도전 읽기'를 선도하고 있다.
이 소장의 '정도전과 그의 시대'는 기존 역사서와는 달리 강의를 하듯 쉽게 서술하고 있다. 당초 이 소장의 저서는 드라마 방영 전 제작진에게 강연했던 내용을 토대로 삼고 있다. 이 책은 다양한 자료를 통해 조선 개국과정, 백성들의 피폐한 생활상, 토지 문제, 사대부와 성리학이라는 학문적 배경, 이상 국가 건설 방안 등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특히 조선 개국이 신진사대부세력과 위화도 회군세력의 결탁이 아닌, 성리학 이념과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는 시대적 열망에서 비롯됐음을 설명하고 있다.
김탁환 소설 '혁명-광활한 인간'은 작가가 조선왕조 500년 전체를 소설로 재구성하려는 ‘조선왕조실록’ 시리즈의 첫 편이다. 소설은 정도전의 생애 중 한 부분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김탁환 특유의 작법이 그대로 드러난다. 내용은 이성계가 황해도 해주에서 낙마한 시점부터 정몽주가 암살당하는 순간까지 18일간의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풀어낸다. 소설 속 화자는 정도전 자신으로, 혁명과정에서의 인간적 고뇌를 담고 있다. '정도전과 그의 시대'는 1월 출간 이후 인터파크에서만 400여권 판매됐다. 정통 인문서라는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만한 기록이다. '광활한 인간 정도전'은 지난달 출간 이후 인터파크도서(book.interpark.com)에서 800여권 판매됐으며 지난달 마지막 주 소설 분야 주간 랭킹에서는 1권과 2권 각각 12위, 16위에 오를 정도로 판매량이 높았다. 2010년에 출간된 이수광 '정도전' e북도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이외에 조유식 알라딘 대표의 '정도전에 대한 변명'(휴머니스트 출간)은 1997년 출간, 절판된 것을 최근 수정 보완해 내놓은 책이다. 임종일의 소설 '정도전'(인문서원 출간)도 1998년 5권에서 3권으로 축약, 재출간됐으며 각종 연구서가 대거 선보이고 있다. 독서붐을 일으키고 있는 '정도전 현상'에 대해 출판계의 의견은 다소 엇갈린다. 우선 현 시대 환경이 '정도전 부활'을 불러 일으켰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이어 드라마의 영향으로 보는 '드라마셀러'라는 견해도 있다. 이덕일 소장은 "조선의 설계자인 정도전의 혁명적 사상과 실천은 현재 우리 사회가 모색하는 방향과 매우 흡사하다"며 "정도전은 변화에 대한 갈망을 반영하면서도 단순히 이론에 그치지 않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도전을 연기하고 있는 배우 조재현도 이 점에 동의한다. 조재현은 "양극화, 실업난 등 고려말의 시대 환경이 지금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며 "특수한 사회적 배경이 정도전이라는 인물을 부활케 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대답했다. 일부 드라마에 편승한 일시적 현상을 보는 의견도 있다. 이미 베스트셀러에 대한 드라마, 영화 등 영상매체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베스트셀러를 '드라마셀러, 스크린셀러'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유다. 실례로 최근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의 열풍이 서점가를 강타하면서 '스크린셀러'의 위력을 새삼 실감케 했다. '겨울왕국 무비 스토리북'와 더불어 영문 대사를 옮긴 외국어 도서는 물론 그림책, 스티커북, 놀이북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이 출간돼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지난달 SBS 인기 수목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등장한 케이트 디카밀로의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이 1위를 기록하는 등 영상매체의 영향력을 증명하기도 했다. 안현주 클라우드 나인 대표는 "정도전 읽기 열풍이 독자들의 인문학적 욕구에 크게 부합한다고 인정하더라도 영상매체의 영향력을 무시 못 한다"며 "영상매체에 대한 의존성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도전 현상이 드라마로 별개로 진행됐다면 현재와 갈은 분위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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