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눈]1등이 아니어서 장하다

시민들의 저녁시간이 모처럼 즐겁다. 바쁜 일상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올림픽 중계를 시청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나라 선수가 출전하는 종목엔 단연 관심이 집중된다. 올림픽엔 개인 성취도 중요하지만 국가 간 경쟁이라는 거대서사가 숨어 있다. 이상화 선수가 금메달을 땄을 때, 대한민국이 개최국 러시아나 동계 스포츠 강국 네덜란드를 이긴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 착각은 시상식장에서 보다 극적으로 확인된다. 금메달 선수의 국기와 국가(國歌)가 유독 주목받는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태극기가 게양되며 이상화 선수가 감격스러운 눈물을 흘리면 모두가 집단최면에 걸린 듯 승리의 감격을 체험한다. 그 순간엔 맥주도 치킨도 더 맛있다. 하지만 금메달을 향한 열광만이 올림픽 정신은 아니다. 모든 참가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자신을 실현한다. 1등이 아니어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숭고하다. 박승희 선수는 4명이 출전한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승전에서 꼴찌를 기록했다. 그녀는 짧은 레이스에서 두 번이나 넘어졌다. 선두로 달리는 중에 뒤에서 파고들어오는 영국선수가 미끄러지면서 건드리는 바람에 억울하게 금메달을 놓쳤다. 그녀는 두 번이나 넘어졌어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다시 전력으로 달렸다. 영국 선수의 반칙이 인정되어 그녀는 동메달을 수상했다. 그녀의 메달은 값지다. 그러나 그녀의 분투 과정은 더욱 값지다. 다른 선수에 의해 억울하게 넘어지게 되었는데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것도 실력이라고 했다. 넘어졌을 땐 빨리 일어나 오로지 달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는 인터뷰는 또 다른 감동이다. 성숙하고 기품 있는 스포츠맨십은 결과만 중시하는 풍토에 경종을 울린다. 어떠한 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선택은 아름답다. 1등이 아니어도 장하고 자랑스럽다. 역설적으로, 1등이 아니어서 더 큰 박수를 받아야 한다. 1등은 과정보다 결과가 주목받지만 1등이 아닌 경우는 최선을 다 한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이 올림픽 정신이고 세계 시민 모두가 스포츠로부터 배울 수 있는 보편규범이다. 이 세계는 1등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윤재웅(동국대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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