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시리즈(18)'충성 할아버지' 죽음의 재구성사망뒤 몇주만에 집에서 발견돼누나·여동생은 시신 인도 거부무연고 사망자 처리, 화장으로 마감전문가 "응급의료 차원 접근해야"
우리 사회에서 고독사(孤獨死)는, 눈에 띄는 사연이 없다면 사회면 1단짜리 기사도 되지 않습니다. 자신 외에는 아무도 그 죽음을 알지 못한 채 가는 마지막 길. 몇 개월 뒤에야 발견된 그 주검 앞에서도 우린 그저 또 한 사람의 비운을 무심하게 추가할 뿐입니다. 아시아경제 기획시리즈 '그 섬, 파고다'를 취재하면서, 익명의 섬처럼 떠돌다 소리없이 출근을 멈추는 노인들의 행방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 가뭇 없이 사라지는 섬을 주목한 우리는, 삭막한 세상이 만들어낸 그 추운 종말을 막아내려는 전 사회적인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10개월 전에 돌아가신 한 할아버지의 고독사를 재구성하고 그 삶과 죽음을 환기해보는 뜻은 거기에 있습니다.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바로잡고자 하는 거창한 주장보다는, 지금 거리를 활보하는 우리가 20년 뒤 혹은 30년 뒤에 맞을 수 있는, 임종에 대한 생생한 묵시록을 지면에 옮겨놓고자 함입니다. 대한민국 우리 중의 누구나 '사라지는 섬'일 수 있습니다. 파고다공원의 어느 오후, 고개 파묻은 한 노인의 뒷목에 내려앉는 햇살만큼이라도 우리가 따뜻해질 수 있을까요. 사진=백소아 기자 sharp2046@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주상돈 기자, 김보경 기자, 김민영 기자] "○씨? 몇 주째 안 보이던데." "이렇게 안 보이면 병원에 누워있거나 죽은 거지. 혼자 산다 그랬는데 누가 장례는 치러줬나 몰라." 지난달 파고다(탑골)에 매일 출근하는 할아버지 사례(본지 11월8일자 22~23면)를 찾던 중 매일 공원에 나오던 한 할아버지가 몇 주째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할아버지들의 추정일 뿐이지만 이 말이 맞다면 ○ 할아버지가 쓸쓸한 죽음을 맞았을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섬, 파고다'를 기획·연재하는 동안에도 전남 나주에서 고독사한 할아버지 주검이 건설폐기물 처리장에서 발견되는 등 최근 우리 사회에 고독사는 끊이지 않고 있다. 고독사는 파편화된 가족 해체가 낳은 극단의 결말이다. 가족, 이웃과 인연의 끈이 끊긴 삭막한 사회의 어둡고 불편한 단면인 것이다. 우리는 지난해 말 사망해 해를 넘겨 올해 초 시신이 발견된 박진욱(65·가명) 할아버지의 고독사 사례를 재구성해 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해당 주민센터와 구청, 경찰서, 특수 청소업체, 주민 등의 도움을 받았다.
축제 분위기에 물든 크리스마스에도, 보신각 종소리가 울려 퍼진 세밑과 새해 첫날에도 박 할아버지는 홀로 누워있었다. 몇 주째 박 할아버지가 전화를 받지 않자 지인이 박 할아버지 집을 찾았다. 청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철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신고를 하자 달려온 경찰과 함께 창문을 깼다. 깨진 창문을 통해 역한 냄새가 훅 밀려 나왔다. 이 같은 소란에도 박 할아버지는 전기장판을 켜 놓은 큰방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1월5일 오후 8시18분. 홀로 숨을 거둔 박 할아버지는 그렇게 발견됐다.박 할아버지 머리맡에 놓인 책장에는 흑백 사진 20여장이 들어있는 액자가 놓여 있었다. 사진 속에는 교복을 입은, 군복을 입은 박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이 담겨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충성"을 목청껏 외치는 박 할아버지를 '충성 아저씨'라고 불렀다. 군대에서 머리를 다쳐 정신이 온전치 않은 탓이다.서랍장 옆으론 목이 부러진 선풍기 두 개와 박하사탕이 들어있는 봉지가 발견됐다. 차곡차곡 쌓아 놓은 종이박스 위에는 박 할아버지가 생전에 입던 옷가지들이 어지럽게 올려져 있었다. 바닥에는 전기장판과 이불 3개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맞은편 작은방에는 1.8ℓ들이 담금소주통 10개와 낡은 라디오 카세트 등이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작은 방에 딸린 화장실에는 악취가 진동했다. 좌변기에는 각종 오물이 가득 차 있었다. 바닥엔 쓰러진 빨래건조대 옆으로 수건과 옷걸이가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수도는 끊겼는지 물이 나오지 않았다. 거실에 놓인 싱크대에는 냄비와 국자, 컵 등이 바짝 마른 분홍색 플라스틱 대야에 담겨 있었다. 냉장고 안에는 물통이 전부였다. 박 할아버지 집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기운은 담금소주통에서 자라고 있는 고구마가 유일했다.경찰은 박 할아버지의 시신에 외상이 없고 외부 침입 흔적이 없어 부검은 하지 않았다. '사망시간 장시간 경과로 인한 전신 부패 및 악취와 변색이 발생했다'는 짧은 검안 소견이 전부였다. 결국 박 할아버지의 사인도 사망일시도 '미상'으로 남았다.쓸쓸히 죽음을 맞은 박 할아버지는 사망 이후에도 혼자였다. 시신이 발견되고 닷새가 지나서야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후 간신히 연락이 닿은 배다른 누나도 사촌 여동생도 경제적 이유로 사체 인도를 포기했다. 박 할아버지는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돼 화장을 거쳐 서울시의 무연고납골당에 안치됐다. 시신이 발견되고 13일 만이었다.박 할아버지의 사후 처리가 늦어지는 동안 부패한 시신이 남긴 시취는 깨진 창문을 타고 골목 전체로 퍼져 나갔다. 약 20m 떨어진 골목 입구까지 시신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인근 한 주민에게 당시 상황을 묻자 아직도 냄새가 난다는 듯 코를 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50평생 송장 썩은 냄새 처음 맡았는데 똥 냄새보다, 하수구 냄새보다 시체 썩은 냄새가 지독하다더니 그때 알았어요. 사후 처리를 안 해서 송장을 치운 다음에도 한 달 넘게 냄새가 나더라고요. 골목에만 들어서면 코를 잡았죠."결국 인근에 살고 있던 주민이 시청에 민원을 넣고서야 사후 처리가 진행됐다. 시취 민원을 받은 구청에서 특수 청소업체를 불렀다. 박 할아버지의 시신이 발견된 지 한 달이 지나서였다. 지난 2월6일 오후 2시에 시작한 청소는 꼬박 하루가 걸려 다음 날 오후 4시에야 끝났다. 당시 청소를 담당한 특수 청소업체에 따르면 시체 부패물이 박 할아버지가 깔고 있던 전기장판 아래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이렇게 사후 처리가 늦어진 것은 집주인과의 전세금 합의가 늦어진 때문이었다. 사촌 여동생은 할아버지의 전세보증금 1500만원에서 집 정리 비용 100여만원을 부담하고는 나머지는 가져갔다.박 할아버지는 2003년 80대 노모와 함께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3년 뒤 앞집으로 이사 온 가족에게 박 할아버지는 앨범을 보여주며 군대시절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하고 철도 공무원으로 일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단다. 하지만 2010년 노모(당시 87세)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 박 할아버지는 주변 사람들과 스스로 담을 쌓았다. "할머니도 나이가 많으면서 아들 몸보신 시킨다고 성남 모란시장까지 가서 오리도 사와서 고아주고 그랬는데 할머니가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나서는 변변히 뭘 드시지 못했을 거예요. 김치라도 담가다 드릴걸. 지금도 그게 마음에 걸려요." 건너편 집에 사는 김모(49·여)씨는 박 할아버지 얘기를 꺼내자 “나라도 챙겼어야 하는데”라는 말을 반복했다.생전 박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 주변으로 운동을 다닐 만큼 건강했다. 인근 부동산을 운영하는 곽모씨는 '눈이 부리부리하고 씩씩한 사람'으로 박 할아버지를 기억했다. 박 할아버지는 정신장애가 있었으나 장애인 등록은 안 되어 있었다. 2010년 12월16일부터는 기초생활 수급비도 끊겼다. 근로능력이 없다는 진단서를 받아 재신청을 해야 했지만 박 할아버지는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아 이후 수급 대상으로 원복되지 못했다. 대신 '비수급 저소득 틈새 특별 구호 대상자'에게 주는 구호비 20만원으로 한 달을 났다.통계청의 '2013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노인은 613만7702명으로 전체 인구의 12.2%다. 이 중 독거노인은 올해 125만2012명으로 65세 이상 인구의 20.4%에 달한다. 통계청은 독거노인이 2020년 174만4830명(21.6%)으로 늘고 2030년에는 282만212명(22.2%)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2030년 1269만명)과 독거노인 모두 현재의 2배가 넘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박 할아버지와 같은 처지에 노출된 잠재적 고독사 위험군이 늘고 있는 것이다.물론 고독사 예방을 위한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노인 돌봄 기본서비스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요양서비스가 필요하지 않은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주기적인 방문(주 1회)과 안부전화(주 2~3회)를 통해 안전 확인 및 말벗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또 월 2회 이상 보건·복지·문화 등에 대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고 지역 내 민간 복지서비스 기관과의 연계도 지원한다.
서울시도 저소득층 독거노인의 가정을 방문해 청소와 세탁, 목욕, 말벗, 급식, 병원동행 등 '재가 노인 지원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또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는 화상통화가 가능한 '안심폰' 서비스와 결식 우려가 있는 노인에게는 매일 한 끼 식사를 배달하며 안부를 묻는 서비스 등을 실시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는 통장들이 직접 독거노인 가정을 방문해 안부를 살피는 '통장복지사' 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경기도는 우편집배원을 통해 불편한 독거노인의 불편사항을 접수하는 '행복배달 빨간자전거' 사업을 시작했다. 경기도 일부와 경남 의령군에서는 독거노인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동거주제'를 운영하고 있다.하지만 이 제도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 위주인 탓에 차상위계층을 비롯한 상당수 노인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125만의 독거노인 중 노인 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는 노인은 올해 30여만명에 불과하다. 이번에 홀로 세상을 떠난 박 할아버지도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라 지자체의 관리 대상에서 제외된 경우였던 것이다.서대문구청은 박 할아버지의 고독사 이후 마을 장례지원단인 '두레'를 구성했다.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마을 장례를 치러주고 사후 원활한 행정처리 지원을 위해 '임종노트' 운동도 시작했다. 임종노트에는 '꼭 연락해야 할 사람, 각종 신분증의 위치, 유언' 등을 적게 했다.전문가들은 고독사의 근본적인 원인을 핵가족화에 따른 가족 해체로 분석하고 독거노인 중 고독사 위험군을 정기적으로 순회하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독사 예방에 대한 접근법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송기민 한양대학교 고령사회연구원 교수는 "독거노인들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면 고독사 이전에 막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며 "가족 해체를 완화시키는 정책도 이를 보완하는 사회적 정책도 미비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송 교수는 "고독사의 대부분은 빨리 발견하면 살릴 수 있는 경우가 많다"며 "고독사 예방에 대한 접근을 무관심과 외로움 등 감정적인 부분에서만 할 것이 아니라 응급의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인수 한서대학교 노인복지학과 교수도 "노인 고독사 중에는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는 경우가 많은데, 예산상의 문제로 돌봄 범위를 확대하기 어렵다면 노인 돌보미가 한곳에 체류하는 시간을 줄여서, 단 5분이라도 주기적으로 독거노인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div class="break_mod">◆죽음의 흔적을 지워 드립니다"긴 해외 출장을 다녀온 사이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어머니를 아버지가 돌보고 계셨는데 지친 아버지가 먼저 쓰러져 돌아가시자 거동할 수 없었던 어머니도 식사를 못 챙겨 결국 아버지를 따라 가신 것 같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돌아가셨는데 부모님 집을 수습해 줄 수 있겠느냐."
김석훈 바이오해저드 대표
2007년 10월 김석훈 바이오해저드 대표(39)에게 한 40대 남성으로부터 온 인터넷 쪽지 내용이다. 바로 얼마 전 장례식장에서 의뢰를 받아 시신이 부패한 현장을 청소한 뒤 김 대표가 블로그에 남긴 글을 보고 연락이 온 것이다. 당시 김 대표는 12년째 장례지도사로 일하고 있었다. "직접 부모님 집을 정리하는 것이 자식 된 도리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집에만 가면 부모님을 모시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가슴을 죄어온다"는 의뢰인의 말에 이 현장을 맡았다고 한다.이 일을 계기로 김 대표는 2008년 6월 특수 청소업체 바이오해저드를 열었다. 이때만 해도 고독사, 자살, 살인사건 등이 남긴 혈흔과 시취를 제거해주는 업체가 없었다. 김 대표는 "지금은 건설폐기물이나 생활쓰레기 등을 처리하던 업체까지 유품정리 일에 뛰어들고 있지만 시신 부패물이나 시취를 전문적으로 제거하는 업체는 지금도 몇 곳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바이오해저드가 맡은 현장은 800여건. 이 중 250여건이 65세 이상의 고독사 현장이었다.이 회사 외에도 키퍼스코리아·바이오에코·천국향·제이콥 등 10여개 업체가 유품 정리 및 특수 청소를 하고 있다. 이들은 고독사로 늦게 발견돼 시신이 심하게 부패했거나 범죄현장 등 혈흔이 남은 현장을 주로 맡는다.김 대표는 이 일을 하면서 시취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그는 "현장에 나가면 '왜 우리 집 앞으로 지나 다니느냐' '우리 집 앞에 왜 차를 대놨느냐'는 등 항의를 한다"며 "시취에 대한 혐오감과 무서움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럴 땐 정말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주상돈 기자 don@asiae.co.kr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