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셔츠 브랜드 'MADE BY'를 만든 광고업체 이노션의 신입사원 설지환, 민병문, 전유제, 최유진, 장재희(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이현익 인턴기자] 하루 수백 명의 손님이 몰리는 대형 SPA 브랜드 매장. 유행에 민감한 '패션족'들과 할인행사에 맞춰 저렴하게 옷을 사려는 '알뜰족'들로 북적인다. 그런데 이들 중 옷감을 직접 재단하고 꿰매는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광고업체 이노션의 신입사원들이 만든 티셔츠 브랜드 'MADE BY'는 이러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지난 4월 발생한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붕괴사고가 '젊은 피'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사내 프로젝트를 통해 'MADE BY'를 탄생시킨 신입사원들의 목소리로 '올바른 티셔츠 만들기'에 대해 들어봤다.◆"브랜드에 숨은 '옷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지난 6월, 이노션 공채 8기 신입사원들은 회사로부터 미션 하나를 받았다. 특유의 젊음과 패기로 해외 프로젝트를 기획해 진행해보라는 주문이었다. 3개 조로 나뉜 29명의 신입사원들은 저마다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골몰했다. 프로젝트의 주제는 '용기'. 최유진(27)씨는 국내외 기사를 검색하던 도중 방글라데시 의류 제조공장이 무너져 수많은 근로자들이 목숨을 잃은 사고를 접하고 'MADE BY'를 착안하게 됐다고 전했다.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엄청난 주문량을 수용하기 위해 건물을 불법으로 증축했기 때문이었어요. 옷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쉴 새 없이 일해야 하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의 어두운 이면이 드러난 거죠. 의류 산업의 고강도 노동과 저임금 문제를 대중에게 알려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용기'를 주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이들은 직접 디자인한 500장의 티셔츠를 인도네시아 의류 공장에 주문하는 일부터 홍보와 배송까지 도맡았다. 다소 평범해 보이는 티셔츠에는 특별함이 숨어있다. 티셔츠 라벨에 옷을 제작한 인도네시아 현지 노동자의 서명을 넣은 것이다. 보통 티셔츠의 라벨은 'made in 국가명'으로 목 뒤에 있지만, 팀은 'MADE BY 서명'이 쓰인 라벨을 티셔츠 앞면에 큼지막하게 박았다.설지환(26)씨는 "누가 옷을 만들었고, 그들이 어떤 삶을 사는 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어요. 그래서 옷을 만든 사람들의 서명을 이용한 상표를 만들고, 상표값으로 판매가의 3%를 돌려주자는 아이디어를 냈죠"라고 말했다. 즉 'MADE BY'는 옷을 만든 노동자 7명의 친필 서명을 통해 브랜드 뒤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알리고, 서명에 대한 대가를 '공정임금'으로 지급해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문제도 완화하자는 취지다.
인도네시아 의류 생산 노동자가 직접 만든 'MADE BY' 티셔츠를 들고 사진을 찍는 모습.
◆인도네시아 공장과 계약하기까지…'난관의 연속'=당초 팀은 붕괴사고가 있었던 방글라데시에 있는 공장을 섭외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고의 여파로 현지 정부가 외국인들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눈길을 돌린 곳이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는 방글라데시 다음으로 다국적 의류업체들의 생산 기지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지난해 기준 인도네시아 발리 지역의 월 평균 임금은 96만7500루피아(한화로 약 9만1200원). 방글라데시 못지않게 척박한 노동환경이다.공정임금이라는 취지에 대해 공감하는 인도네시아 공장을 찾는 일도 녹록지 않았다. 이들의 취지를 이해해주고 공장 촬영까지 허락해 줄 공장주를 찾기란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전유제(26)씨는 "지인, 한인회 등 온갖 수단을 통해 현지 공장 500군데 이상에 문의했지만 거절하거나 답변이 없었다. 아마도 공장주들도 공정임금 측면에서 떳떳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발리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한 사장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이 왔다. 팀은 지난달 인도네시아 현장을 방문하기까지 SNS와 화상채팅으로 얼굴을 트고 신뢰도 쌓았다. 공장에서 직접 디자인한 티셔츠 견본품을 입어본 날 또다시 팀은 난관에 부딪쳤다. 민병문(27)씨는 "의류 제작 경험이 없었던 우리가 디자인한 티셔츠의 수치와 핏이 엉망이었던 것"이라며 "현지 사장이 '이대로는 못 판다'며 다시 디자인해줬다. 이 과정에서 '함께 옷을 만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했다.그렇게 제작된 'MADE BY' 5종 티셔츠는 지난 5일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카페에 열린 팝업스토어를 통해 오프라인 론칭을 했다. 설씨는 "행사를 진행했던 4시간동안 티셔츠가 70장 넘게 팔리는 등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현재 티셔츠는 페이스북 계정(www.facebook.com/madeby2013)을 통해 온라인 판매 중이다.
◆판매 수익금은 방글라데시 사고 피해자에 기부=4개월에 걸친 프로젝트와 회사 업무를 병행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배운 점도 많고 보람도 컸다. 장재희(24)씨는 "현지 노동자들에게 3% 인센티브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도미노 피자를 먹고 싶다', 'KFC에 가고 싶다'는 소박한 대답이 돌아왔다"며 "관광객들을 위한 패스트푸드 식당은 많았지만 정작 주머니 사정이 열악한 자국민들은 엄두도 못 냈던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고 전했다. 장씨는 "광고업체 직원은 으레 광고주의 의뢰를 받아 주어진 일을 하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디어 기획부터 결과물을 내놓기까지 모두 주도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에 소중한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다"고 했다. 또한 민씨는 "우리의 작은 시도가 유니클로, 자라 같은 기존 대형 의류 업체들이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팀은 'MADE BY' 판매 수익금 일부를 방글라데시 공장 붕괴 사고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민씨는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이달 말 끝나지만 회사에 제안해 'MADE BY'가 계속 운영될 수 있도록 추진해볼 계획"이라며 "내년 공채들이 입사하면 'MADE BY 시즌2'를 함께 기획해 그때는 바지를 만들어볼까 생각 중"이라고 답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이현익 인턴기자 gish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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