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들의 사생활-9장 어둠 속의 두 그림자(164)

운학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당신은 나를 바보로 알고 있구먼. 천만에 난 바보가 아니야! 설사 바보라 해도 연적의 냄새를 맡지 못할 만큼 바보는 아니지. 아침에 당신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칠 때부터 알았어. 당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과 그녀를 바라보는 당신의 눈빛 말이야. 아침에 당신은 동네 사람들 앞에 백기사처럼 나타나 말했지. 그녀에겐 죄가 없어요, 하고..... 그때 난 알았어! 당신의 둘 사이에 은밀히 흐르고 있는 그 무언가를..... 그리고 저녁에 그녀가 당신 화실로 들어갔지. 그토록 도도한 여자가 혼자 있는 사내의 거처로.....”하림은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운학은 아침에 난리가 벌어졌을 때부터 그들 사이를 의심하고 있다가 그녀가 하림이 있는 화실로 찾아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창 밖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고, 하림이 그녀를 바래다주러 나왔을 때,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둑길을 따라 그들의 뒤를 미행해서 따라왔다는 뜻이었다. 하림은 갑자기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불쾌한 정도가 아니라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도둑고양이처럼 남의 집 창문을 기웃거리고 미행했던 작자가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다는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난 이장님이 바보든 바보가 아니든 관심이 없어요!”하림은 약간 목소리를 높여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그리고 굳지 변명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이장님 자유니까. 하지만 남의 뒤를 그렇게 도둑고양이처럼 따라 다니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어요. 여긴 엄연히 대한민국 땅이고, 비록 외지인이라고 하지만 내게도 퍼라이버시를 지킬 권리가 있으니까요.”“뭐라구? 도둑고양이....?”운학은 외마디를 질렀다.“그래요. 그게 도둑고양이의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이건 엄연히 법에도 걸리는 짓이라구요!”말이 나온 김에 하림은 아예 말뚝이라도 박아두자는 심정으로 큰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남경희 그녀에 대해서도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설사 내가 그녀를 좋아한다 하여 안 될 것도 없죠. 연상이긴 하지만 이장님 말대로 나도 아직 미혼이고 그녀 역시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누구에게나 감정의 자유는 있으니까.”하림은 일부러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그렇다고 이장님이 나를 감시하거나 미행할 권리는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아니야! 그럴 순 없어! 그러도록 내가 내버려둘 것 같은가? 누구든 그녀 가까이 가는 놈은 죽여버릴거야!”운학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외쳤다.하림은 그쯤에서 끝을 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그를 구석으로 몰아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안심하세요. 아까도 말했지만 난 그녀에 대해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으니까요. 단지 그녀가 아침에 동네 사람 속에서 하얗게 질려있길래 도와주고 싶었던 마음이 일어났을 뿐이예요. 그녀가 화실에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갔는지, 그리고 둑길을 걸어 집으로 가는 동안 무슨 이야길 했는지는 만일 엿들었다면 다 알고 있을 것 아니예요? 정말이지 내겐 추호도 그녀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없어요!”하림은 마치 맹세라도 하듯 소리를 질렀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김영현 기자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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