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랙킹의 아버지 조지 미첼 94세로 영면

[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요즘 셰일석유와 가스가 전 세계 언론과 담론을지배하지만 정작 그것을 채굴하는 기술을 개발안 주역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그가 영면했지만 그를 아는 이는 드물다. 바로 수평굴착수압파쇄채굴법(Fracking)의 아버지 조지 미첼(George P. Mitchell)

프랙킹의 아버지 조지 미첼

28일 미국의 경제전문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Business Insider)와 포브스에 따르면, 미첼은 지난 26일(현지시간) 텍사스 자택에서 가족들이 둘러보는 가운데 영면했다.향년 94세였다. 유족으로는 자식 10명이 있다.부인 신시아 미첼은 2009년 알츠하이머로 먼저 하직했다.그는 독립 석유가스 회사인 ‘미첼 에너지개발회사’를 설립해 미국 포춘 선정 500대 기업으로 키운 자수성가형 기업가였다.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는 2013년도 그의 재산을 20억 달러로 추정해 미국 249위의 억만장자로 평가했다.1919년 그리스 이민자의 아들로 텍사스주 갈베스톤에서 태어난 미첼은 텍사스 A&M대학을 석유공학 최우등생으로 졸업했다. 그는 탐사시추공 1000개를 비롯, 약 1만 개의 유정 개발에 참여했다.그의 아버지 사바스 파라스케보스풀로스는 그리스에서 염소치기를 하다 1901년 이민와서 철로일을 구했다. 철로에서 임금을 지급하던 사람이 그의 그리스 이름을 적기 힘들어하자 그는 그 사람의 이름을 따서 마이크 미첼로 지었다.그는 갈베스톤에서 구두닦이방과 세탁소를 운영하다 결혼했지만 조지가 13살 때 세상을 떠났다.조지는 형 조니와 함께 17살때부터 유전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형제는 시카고 마권업자가 판 포트 워스 근처의 땅을 조금 샀는데 여기서 대박을 터뜨렸다. 13번 유정을 파서 연속으로 기름을 퍼낸 것이다.그가 성공을 거둔 발판은 오늘날 미국의 에너지 산업계 판도를 바꿔놓은 셰일가스와 석유를 개발하는 프랙킹 기술. 그는 텍사스주 포트워스 근처의 ‘바넷 유셰일유전’에서 프랭킹기술을 처음으로 사용했다.그의 회사는 1980년대와 90년대 천연가스 수평채굴이라는 신기술을 개발했고 이것을 1950년대부터 석유가스업계가 사용하고 있던 수압파쇄(hydraulic fractuting)법과 결합해 셰일암층에서 천연가스를 경제적으로 채굴하는 길을 열었다.미첼은 2002년 데본에너지에 35억 달러를 받고 회사를 팔았고 최근까지 최대 주주로 남아 있었다.프랙킹을 통한 천연가스와 석유생산은 비용이 높아 최근 유가가 오르기까지 채산성이 없었다. 그러나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으면서 채산성을 확보했고 거의 모든 회사들이 이 기술을 채택하면서 북미지역에서 ‘새로운 천연가스 붐’을 조성했다.이 기술은 현재 미국이외의 국가로도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미첼이 처음 프랙킹을 사용했을 때 미국 전체 석유가스생산의 극히 일부였지만 요즘은 90%에 이르는 것으로 포브스는 추정하고 있다.그러나 프랙킹의 대량 사용으로 미국의 석유생산이 급증하고 고용을 창출했으며 에너지 비용을 낮춰 물가안정에 기여했다는 찬성론도 있다. 반면, 셰일 석유와 가스 채굴은 지하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일인데다 지하수를 오염시킨다는 주장이 거세다. 지하에 투입한 고압의 물이 지진을 일으키고 지하수를 마신 동물들이 거세됐다는 주장도 있다.미첼은 살아생전 2012년 7월 포브스 인터뷰에서 프랙킹 규제를 찬성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포브스 인터뷰에서 “미국 에너지부는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 프랙킹은 골칫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미첼은 당시 “적절히 따르기만 하면 프랙킹을 안전하게 할 좋은 기술이 많다”면서 “그러나 독립 석유개발자들이 문제다. 그들을 규제하기란 힘들다”고 우려를 나타냈다.그는 오일맨 만으로만 남지 않았다. 그는 르네상스 사람이었다. 그는 천문학이라는 순수학문에 기부를 많이 했다. 그는 텍사스 A&M대학 천체 물리학과 건물 건립에 5000만 달러를 기부하고 암흑에너지 연구를 위한 맥도널드 연구소에 200만 달러를 기부했으며 허블 천체 망원경을 대체하는 지상기반 망원경인 자이언트 마젤란의 건설비용으로 3000만 달러를 기부했다.그는 또 도시계획과 건축에도 심취했다. 그는 휴스턴에서 30분 거리에 2만7000에이커의 계획도시 우드랜즈를 조성했고 갈베스톤 보존에도 헌신했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박희준 기자 jacklondon@<ⓒ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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