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한 마리 보았다/용은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드나들며/눈부시게 빛나는 푸른 비늘을 자랑하고 있었다/용 주변에는 전갈이나/코브라같은 맹독류들이 눈을 부릅뜬 채/한증막의 폭염을 견뎌내고 있었는데/그것들은 제가 떠나온 사막을 그리워하는 것처럼/가끔씩 어푸어푸 가쁜 숨을 내쉬기도 하였다/일심(一心)과/화살 꽂힌 심장과/착하게 살고 싶은 욕망은/벌겋게 달아오른 몸으로 샤워기 앞에 서서/오래오래 비누칠을 하였다//(......)//비쩍 마른 반바지 사내가 들어와/두 팔을 허리에 척 걸치고 용을 불렀다/마침 온탕에 들어앉아 나른하게 졸고 있던 용이/눈을 번쩍 뜨며 쪼르륵 달려와/반바지 사내 앞에 넙죽 엎드리는 것이었다 문신의 '힘의 균형' 중에서 ■ 읽다가 그만 실없이 킥 웃고 말았다. 전설의 동물인 용과, 용 문신을 온몸에 그린 조폭의 이미지가 꽤 능청스럽게 긴장을 유지하며 꿈틀거리던 초반의 '스토리'가 막판에 어이없는 반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목욕탕에서 만난 조폭사내의 근육 위에 위압적으로 그려진 용 문신을 눈앞에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살려낸다. 냉탕, 온탕을 옮겨다니는 용, 한증막의 폭염을 견디는 코브라. '일심(一心)', 큐피드의 화살이 지나간 하트마크, 그리고 '차카게 살자'가 몸의 구석구석마다 그려져 있다. 이 환상적인 미술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반바지 입은 사내의 출현이다. 아마도 '윗대가리'일 것 같은 그가 부르자, 천하를 주름잡던 용은 갑자기 깨갱하며 뱀꼬리로 변한다. "네, 형님"하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용을 부리는 사내가 대단해보이는 게 아니라, 급전직하한 용의 같잖은 꼴이 희화적인 여운을 남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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