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아시아 최고의 더비전. 두 팀 레전드 출신 사령탑의 첫 맞대결. 정대세-차두리의 만남. 끈질기게 이어져 온 징크스까지. 이 모든 것이 얽혀 90분짜리 반전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1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3 현대오일뱅크 K리그 6라운드에서 수원 블루윙즈와 FC서울의 K리그 클래식 '슈퍼매치'다.첫 87분은 서울의 시간이었다. 데얀이 슈퍼매치 8경기 만에 골 침묵을 깨뜨렸고, '깜짝 카드' 차두리는 데뷔전에서 기대 이상으로 맹활약했다. 전반 39분 정대세의 퇴장 역시 소용돌이를 몰고왔다. 마지막 3분을 남기고 명암은 뒤바뀌었다. 후반 42분 라돈치치의 머리에서 터진 동점골. 슈퍼매치 징크스는 반복됐다. 무승부에도 수원은 환호했고, 서울은 침묵했다. 수원의 서울전 연속 무패 기록은 9경기(7승2무)로 늘어났다.
▲'깜짝 선발' 차두리, 수원의 피지컬을 잠재우다이날 경기 전 최대 화두는 차두리의 선발 출장이었다. 지난 달 입단한 그는 이적 과정에서 수개월 공백을 보냈다. 몸 상태나 경기 감각이 100%가 아니었기에, 교체 출전 정도가 예상됐다. 최용수 서울 감독은 과감히 선발 명단에 차두리의 이름을 적었다. 그는 경기 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라고 운을 띄운 뒤 "이런 큰 경기에선 (차)두리의 풍부한 경험과 베테랑이 줄 수 있는 안정감이 중요하다"라고 얘기했다.그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했다. 계속된 질문에 이내 깊은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스테보·라돈치치 등을 막기에 고요한·최효진보다는 차두리가 신체적 조건에서 유리하다"라고 지적했다. 힘과 높이를 앞세운 수원의 선 굵은 축구에 맥없이 무너졌던 전례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어 "차두리에 막히면 아마 스테보는 틀림없이 김치우 쪽으로 도망갈 것"이라며 그 이후 대처까지도 대비했음을 암시했다.
승부수는 통했다. 오른쪽 수비수로 출전한 차두리는 특유 힘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견고한 수비를 펼쳤다. 특히 측면에서 맞선 스테보와의 싸움에서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스테보-서정진 양 날개는 수원 공격의 원동력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전반 내내 스테보는 차두리에 꽁꽁 묶였고, 반대편의 서정진마저 김치우에게 봉쇄됐다. 이렇다보니 최전방의 정대세마저 고립되고 말았다. 스테보는 최 감독의 예상대로 뒤늦게 차두리를 피해 반대쪽으로 이동했지만, 답답함을 못이긴 정대세가 돌출 행동으로 퇴장 당하는 변수까지 발생했다. 서울이 전반을 1-0으로 앞선 것은 치밀한 전략의 결과였다.▲징크스가 징크스를 낳다차두리 외에도 이날 최 감독의 도전적 선수 기용은 전반 내내 적중했다. 하대성-한태유의 중앙 미드필더는 기존 하대성-고명진 조합보다 공수 균형 면에서 한층 안정적이었다. 측면으로 자리를 바꾼 고명진-고요한 역시 과감한 돌파와 침투 플레이로 서울 공격에 힘을 더했다. 양쪽 풀백 차두리-김치우는 만점에 가까운 수비를 선보였고, 아디-김진규의 중앙수비는 탄탄했다. 공중볼에 대비해 김용대(189㎝) 대신 골키퍼 장갑을 낀 유상훈(194㎝)도 선방쇼를 펼쳤다. 3년 만에 선발에서 제외된 몰리나와 경고 누적 결장한 김주영의 공백은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전반전까지의 얘기란 점이다. 후반은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앞선 45분 동안 보여줬던 날카로움과 단단함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체력 소진도 한 이유였지만 가장 큰 원인은 집중력 저하였다. 한 골을 더 넣으려는 모습보단 한 골을 지키겠다는 태도가 역력했다. 평소의 서울답지 않은 모습. 수원전 무승 징크스를 깨고 싶은 간절함이 서울 선수들의 발목을 잡은 셈이었다.최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수적 우세가 오히려 독이 되지 않았나 싶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정대세 퇴장 이후 정상적으로 볼 점유율을 유지하며 우리만의 경기를 주문했는데, 선수들이 이기고 싶은 마음에 도리어 물러나는 모습이 보였다"라며 "좀 더 냉정하게 경기를 풀어가는 응집력이 필요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소극적 대처와 느슨해진 경기 운영이 다 잡았던 승리를 놓친 셈이다. 실점 장면은 이에 대한 가장 좋은 예였다. 서울은 페널티 박스 안에 무려 여섯 명의 선수가 있었지만, 모두 공을 잡은 스테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대편의 라돈치치와 김대경은 무인지경이었다. 뒤늦게 차두리가 라돈치치에 따라 붙었지만 신장에서 열세인 그가 위치 선정마저 늦었으니 헤딩에서 이길 재간은 없었다. ▲교체 카드 선택의 차이사실 이날 수원 역시 변칙 전술을 택했다. 기존 4-4-2를 버리고 4-5-1에 가까운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중원 싸움에 지지 않기 위해 조지훈 오장은 박현범 등 세 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동시에 투입한 것. 하지만 원톱 정대세가 퇴장당하며 전략 수정이 불가피했다. 서정원 수원 감독은 주저 없이 조지훈 대신 김대경을 투입하며 4-4-1로 변화를 꾀했다. 측면에서 뛰던 스테보가 최전방으로 올라섰다. 이 선택은 주효했다. 스테보는 엄청난 활동량과 끊임없는 배후 침투로 상대 수비진을 괴롭혔다. 수원이 수적 열세에 있으면서도 후반 공격을 주도한 원동력이었다. 그의 고군분투에 서울의 소극적 태도까지 더해져 측면의 서정진-김대경에게도 점차 기회가 찾아왔다. 이런 가운데 서 감독은 라돈치치 카드를 후반 37분에서야 꺼내들었다. 다소 늦은 타이밍도 의외였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공격수 스테보가 아닌 수비수 홍순학을 대신한 교체였다는 점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서 감독은 "수적 열세에 지고 있는 상황에 급한 마음에 라돈치치를 빨리 투입했다면 수비에 분명 문제가 생기고 추가골까지 내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10분 정도 남았을 때 히든카드로 승부수를 띄우려했다"라며 "수비수를 한 명 줄이고 공격수를 늘린 게 효과를 봤다"라고 자평했다.반면 최 감독의 교체는 지나치게 안정적이었다. 수원의 공세 수위가 높아지던 후반 37분 하대성을 빼고 최현태를 내보낸 것. 중원 수비를 두텁게 해 한 점을 지켜내겠다는 계산이었지만, 도리어 최태욱·최효진 등 발 빠른 자원을 활용해 공격에 치중한 상대 허점을 노리는 전략이 아쉬웠다. 막판 박희성의 투입도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수원이 수비 숫자를 줄인 직후가 아닌, 실점 이후 후반 추가시간에야 그를 내보냈다. 박희성이 무언가 보여주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전성호 기자 spree8@정재훈 사진기자 roz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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