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1000조 시대의 아우성-일용직/장애아 가정, 생계형 대출받은 취약계층 등-불법추심에 시달리며 파산신청/개인회생도 어려워-급여 압류/추심회사 직원 신고제 등 법제도망 한계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 빚진 사람들의 절규가 높아지고 있다. 법과 제도도 이들의 절박한 상황을 살피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데는 많은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공격적인 대출영업을 펼치던 금융기관의 친절한 태도는 빚을 지자마자 불법 채권추심이라는 협박으로 바뀐다. 특히 열심히 일을 해도 빚을 갚을 능력이 안 되는 이들에게는 '모럴 해저드'란 사회적 낙인까지 겹치면서 회생의 기회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 30대 중반 전업주부인 A씨는 남편의 회사 부도로 임금이 체불됐다. 더구나 남편은 산재장해 10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인데다 건강이 악화돼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어 소득이 일정치 않다. 여기에 세 자녀 중 막내 아이가 과민성 대장증후군인 대장허증으로 13회나 수술을 받는 등 어려움에 처해 있다. A씨는 남편과 아이들의 뒷바라지로 아르바이트 외에는 다른 일자리도 구할 수 없는 딱한 실정이다. 하는 수 없이 그동안 A씨는 생활비와 아이의 치료비를 지불하기 위해 5개의 카드돌려막기로 버텨왔다. 그래서 쌓인 부채만 총 2400만원. A씨는 지금 직장과 집, 본인 뿐 아니라 가족들에게 뻗쳐오는 채권 추심원들의 전화, 문자메시지로 채무상환 독촉에 시달리고 있어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고 있다. # 1998년 IMF사태 이후 부도난 친구의 전세자금 대출에 연대보증을 선 B씨(50대 남). 친구의 채권은 주택금융공사에서 나라신용정보, 이어 IBK신용정보로 관리회사가 바뀌었다. 최근에는 상환독촉과 법적절차 예고장을 받았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B씨는 경기불황으로 사업도 부진해져 살던 아파트를 팔고, 부모님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 소득보다 생활비가 더 많이 나가지만 개인회생이나 파산신청도 불가능하다. 이유는 가게의 임대보증금 1억원 때문. 채무보다 자산이 많거나 재산이 있으면 개인회생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다. B씨는 자녀들의 교육비와 생활비를 책임져야 해 가게를 접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대학가에서 고시텔을 18년간 운영해왔던 C씨(40대 여). 한때 많은 수익을 올리기도 했던 C씨는 최근 매출 부진으로 고시텔을 매각하면서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 5억원을 부과받았다. 세금을 납부하면서부터는 자금사정이 악화된 데다 과거 대출을 받아 투자용으로 사 두었던 아파트 2개와 시골 토지 등의 원리금 상환이 어려움을 겪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시어머니와 함께 여섯 가족이 살기위해 구입해뒀던 80평형 빌라는 법원경매까지 진행됐다. C씨는 지나친 부동산에 대한 맹신으로 대출로 투자용 부동산을 매입한 것이 파탄의 원인임을 이제야 알게 됐지만 소유 부동산의 매매는 어렵고 대출금의 원리금과 생활비를 위해 카드대출까지 받아 점점 힘든 상황이다. 이처럼 주택담보대출로 빚쟁이가 된 '하우스 푸어', 경기침체로 인해 사업자금 대출을 받아 상황이 더 악화된 자영업자와 생계형 대출을 받은 취약계층들은 헤어나기 힘든 '채무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채권 추심원들의 채권회수 방법도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송주홍 에듀머니 금융복지상담사는 "밤 시각에 빚독촉을 하는 등 노골적으로 불법 추심을 하지 않더라도, 주변사람들에게까지 전화 협박을 가하면서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다"며 "특히 채권 추심원들은 주로 계약직 위탁 대리인으로, 자영업자로 신고하며 이들끼리의 채권회수 경쟁이 치열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8월 여의도 칼부림 사건도 실적경쟁에 내몰린 신용정보회사 추심원이 저질렀다. 법적인 허술함도 지적된다. 원칙적으로 150만원 이하의 급여는 압류가 금지되지만 은행계좌로 이체가 되면 급여가 아닌 현금으로 해석돼 급여를 압류할 수가 있다. 채무자는 법원에 압류명령을 취소토록 신청할 수 있지만 법적 조치가 까다롭고 기간도 많이 걸려 현실성이 없다. 특히 추심회사의 직원의 자격도 엉성하다. 신고제로 돼 교육 몇 시간만 받고 취직해 실적 위주로 인센티브를 받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이 구조는 보험설계사들의 업무행태와 비슷하다. 이에따라 추심회사와 직원의 자격검사를 강화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변경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 채무자 대리인을 선임해 체무위임제도를 도입해, 채권회수 대리자와 채무자 대리인이 조율토록 하는 조정기구도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송주홍 상담사는 "민간채무조정기관이나 지자체가 나서서 채무자와 채권자간의 객관적인 조율을 중재하는 곳이 필요하다"면서 "70원만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100원을 갚으라는 무리한 요구는 금융기관에게도 채무자에게도 궁극적으로는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오진희 기자 valer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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