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라지는 동네 서점, 붕괴된 도서유통구조 '인터넷 할인이 '정가제 서점'을 죽였다'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올해는 정부에서 지정한 '독서의 해'다. 그러나 국민들의 독서량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출판생태계는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는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다. 책 읽지 않는 사회, 말라 죽어가는 출판시장과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무관심한 정부 등 '독서의 해'라는 수사가 무색할 만큼 현재 한국의 출판계는 붕괴 직전의 위기상황이다. 도서유통구조가 파괴되면서 나타난 동네서점의 몰락, 불황의 늪에 빠진 출판사와 출판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보고, 출판 생태계 복원을 위한 대책을 찾아본다.
긴급 진단 시리즈 <1>사라지는 동네서점, 붕괴된 도서유통구조 <2>불황의 늪 빠진 출판사, 돌파구는 도서정가제 <3>알맹이 없는 정부의 출판정책, 대안은 없나 <4>출판생태계 복원의 열쇠는 '독자'가 쥐고 있다 "지난 47년간 안양시 서점계의 상징이자 문화적 명물의 하나였던 대동문고가 끝내 풍전등화의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존폐의 위기를 맞은 대동문고를 살리고자 평소 대동문고를 아끼는 사람들이 모임을 결성하고, 시민 여러분께 한 권의 책이라도 대동문고에서 사주시기를 간곡히 호소합니다" '대동문고'가 지난 2008년 11월 28일자로 부도처리되자 대동문고를 살리고자 하는 지역시민들이 신문에 실은 호소문이다. 올해로 부도 사태를 겪은 지 5년째를 맞았지만 대동문고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서점문을 닫지 않았다. 다만 지하 1~2층으로 운영하던 1000여평 넓이의 매장은 반으로 줄었고, 부도 직전 57명에 이르던 종업원도 현재 3명만 남았다. 지난 24일 만난 대동문고의 창업주 진영선(72)회장은 "서점영업으로는 운영비도 대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책방을 믿고 찾아주는 고객들이 있어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서점의 역사 한눈에 보여주는 대동문고= 대동문고의 역사는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63년 안양에 정착한 진씨는 안양여고 맞은편 셋방에서 '대동서점'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서점영업을 시작했다. 그는 앉아서 오는 손님에게만 책을 파는 게 아니라 책을 쉽게 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동서점을 운영하며 독자들을 찾아갔다. 당시 금성방직, 태평방직, 동국물산 등 공장 앞에서 출퇴근 시간에 맞춰 노점을 열곤 했다. 진씨는 "책 한권이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책방을 운영하는 것은 교육사업과도 같다는 신념으로 일해왔다"고 말했다. 하루 20시간씩 일하는 노력 끝에 '대동문고'는 날로 번창했고, 7평짜리 매장에서 시작해 8층 건물로 확장·증축하는 성과도 이뤄냈다. 그러나 50여년 간 지역주민들의 사랑으로 성장한 ' 대동문고'도 2008년 '부도'라는 뼈아픈 경험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인터넷서점의 출현과 대형 서점의 진출로 존폐 위기에 처한 것이다. 진씨는 "당시 상황은 말 그대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며 "서점에 인생을 걸고 한 평생 열심히 일해왔는데도 실패를 겪고 말았다"며 한숨지었다.
51년간 지역의 대표서점으로 자리잡은 안양의 대동문고는 지난 2008년 부도처리된 이후에도 적자를 감수하며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서점의 위기'는 비단 대동문고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1994년 5600여개를 헤아리던 국내 서점 수는 가파른 하향곡선을 그리며 2011년 1700여개로 줄어들었다. 불과 20년의 세월이 흐르기도 전에 서점 3분의 1이 사라진 셈이다. 동네서점뿐만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지역의 중추 서점 역할을 해온 중형서점들도 줄줄이 문을 닫고 있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적자를 감수하며 버티는 대동문고도 있지만 부산의 동보서적, 청주의 성안길 문고, 포항의 예지서점 등은 이미 문을 닫았다. ◇할인판매 이후 붕괴된 출판유통구조= 과거 우리나라 도서 유통 경로는 출판사에서 '도매 또는 총판'을 거쳐 소매서점에서 독자로 이어지는 단선적인 구조였다. 그러나 1997년부터 인터넷 서점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2002년 개정된 '출판 및 인쇄산업 진흥법'을 통해 도서할인 판매가 가능해지면서 인터넷서점을 중심으로 출판시장이 급격하게 재편됐다. 2008년 이후 복합쇼핑몰인 11번가와 G마켓, 옥션 등 오픈마켓이 파격적인 가격 할인을 무기로 등장하면서 인터넷 서점 간의 가격할인경쟁도 치열해졌다. 출판인회의의 '도서유통 판매 채널별 현황 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인터넷 서점의 시장점유율은 2008년 26.5%에서 2011년 36.8%로 10%포인트 이상 늘었으나 대형서점과 도매서점은 각각 2.8%, 4.5%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짧은 시간 내에 인터넷 서점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도서 할인 정책'이 있다. 현재 법 조항에 따르면 발행일로부터 18개월 미만의 신간 도서의 실질 할인율은 19%에 이른다. 대부분의 인터넷 서점은 신간도서의 경우, 10% 할인과 10%마일리지 적립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 18개월이 지난 도서의 경우 무제한 할인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오픈마켓의 '특가도서'코너에 많게는 50~70%까지 할인 판매하는 책들이 수두룩하다. 동일한 책이면 전국 어디서나 같은 가격에 판매한다는 '도서정가제'의 취지와는 달리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책값이 달라지면서 시장의 가격질서는 붕괴되고 말았다.
치열한 '가격할인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영세한 규모의 서점과 출판사의 몰락은 이미 10년 전부터 계속되는 현상이다. 인터넷 서점 역시 무리한 '할인경쟁'으로 인해 2010년부터 성장률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2009년 전년대비 18.86%에 육박하던 인터넷 서점의 성장률은 2011년 4%대로 떨어졌다. ◇할인 경쟁으로 왜곡된 출판시장= 고영은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가격할인경쟁의 가장 큰 문제는 언젠가부터 책이 가치로 평가되기보다는 가격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고 회장은 "현재 잘 팔리는 책들을 보면 초대형 베스트셀러 아니면 반값할인상품 "이라며 "오로지 할인 폭이 큰 책과 일부 베스트셀러의 판매만 늘어나고 있어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구간에 비해 할인 폭에 제한이 있는 신간의 판매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특히 오프라인에 기반한 서점의 신간 판매 비중은 거의 변화가 없거나 미세하게 낮아진 반면 , 온라인 서점은 신간판매 비중이 큰 폭으로 낮아졌다. 고 회장은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구간과 신간도서의 구분이 무의미한 만큼 상대적으로 할인이 많이 되는 구간도서를 선택하게 되고, 신간도서는 구매에서 배제되거나 할인 폭이 커지는 시기까지 구매를 늦추는 경향도 있다"고 분석했다. 신간 판매 부수가 줄어들수록 출간되는 신간종수도 매년 줄고 있다. 출판인회의에서 분석한 신간도서 판매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8년 3229종에 이르던 신간도서는 2011년 2473종으로 줄어 2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 회장은 "신간이 다양하게 나와야 독자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고, 출판생태계의 '종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신간의 전반적인 감소는 출판시장을 축소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고 회장은 "책은 단순한 교환재가 아니라 공공재의 성격도 갖고 있다"며 "책의 내용을 보기보다는 얼마나 할인하는지를 먼저 보게 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결국 전체 출판시장의 붕괴는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미 기자 ysm125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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