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남자> vs <착한남자>│이 죽일 놈의 남자

멀게는 KBS <꼭지>부터 가까이는 SBS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에 이르기까지 이경희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의 중심에는 가난과 처절한 사랑이 있었다. 늘 죽음이 함께했고, 가난은 남자의 인생과 여자의 사랑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 표정과 욕망을 지워버린 KBS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이하 <착한남자>) 속 강마루(송중기)의 삶도 마찬가지다. 한 여자의 삶을 구했지만, 다른 여자들의 삶을 이용해 살아왔던 남자는 이제 다시 또 다른 여자의 삶을 움직인다. 하지만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이 남자 마루를 통해 이경희 작가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무엇인가. 윤희성 기자와 윤이나 평론가가 들여다봤다. /편집자주<div class="blockquote"><착한남자>의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가 아니다. 인물들은 무엇을 얻기 위해 위선으로 가장하며, 무엇을 잃지 않기 위해 위악으로 무장한다. 한재희(박시연)를 중심으로 인물들이 공유하는 가장 뚜렷한 감정은 의심이며, 이것은 인물들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이다. 그러나 정작 위장은 쉽게 들통 난다. 드라마는 서로를 속이는 인물들의 욕망을 팽팽하게 당겨 게임을 진행하는 대신 계속해서 새로운 국면을 던져 준다. 덕분에 이야기는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 나가지만, 인물들의 포즈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서 회장(김영철)의 옆자리에 앉아 있을 때나, 회장의 자격으로 사람들 앞에 나섰을 때나 재희가 가진 비밀과 거짓의 정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서 회장을 상대로 꾸며내던 가짜 가족극을 보다 많은 관객 앞에서 선보일 뿐이다. <h3>복원을 향한 마루의 욕망</h3>
제대로 배양되지 못한 재희의 욕망은 결국 강마루(송중기)의 역습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마루를 버린 대신 그녀가 선택한 높은 곳의 삶은 사실 그녀가 도망친 시궁창과 닮아 있었고, 그녀는 여전히 존재를 부정당하고 가능성을 소멸시키며 위협과 불안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리고 또다시 재희의 구조 신호에 반응한 마루는 물질 외에는 더 가진 것이 없는 그녀의 현재와 자신에게 각인된 피해자 재희의 오래전 모습이 겹쳐지는 순간 그녀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 재희를 열렬히 욕망한 적 없었던 마루에게 재희란 획득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자신에게 각인된 위치로 되돌려 놓아야 할 상징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재희가 존재하는 곳이 높은 곳의 시궁창이라면, 여전히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제 삶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것이라면, 마루에게 그녀는 더 이상 도발의 스위치가 되지 못한다. 심지어 높은 곳의 힘이 아니라 예전과 똑같이 재식(양익준)의 폭력에 시달리는 재희라면, 그녀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마루는 더 이상 지난 시간에 대한 피해의식에 붙들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마루가 기억을 잃은 서은기(문채원)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래서 재희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그녀의 대체물을 수용하는 과정이다. 은기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지 않는 마루를 움직이는 것은 위치를 잃고 피해자가 된 은기의 지위를 복원시키고자 하는 의지다. 비로소 재희와 마루가 정면에서 대립각을 세우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만남이 새로운 긴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마루가 일말의 욕망도 더하지 않은 은기의 대리인으로 출현했기 때문이다. 재희에게 발톱을 숨기지 않으며 직설화법으로 밀고 들어오는 마루의 모습은 은기의 재현이며, 그것은 재희에게 마루에 대한 감각이 아니라 은기를 향한 위기감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은기의 기억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마루에게 잠시 맡겨져 있을 뿐이며, 마루를 통해 완성되는 것은 그의 세상이 아니라 은기의 세계인 것이다. <h3>‘착한남자’의 역할이 문제인 이유</h3>그래서 마루는 ‘착한남자’라기보다는 ‘맹목적인 남자’에 가깝다. 그가 복원시키고자 하는 은기의 세계가 존속되어야 할 이유는 출생으로 얻어진 낙인으로밖에는 설명되지 않으며, 이것은 재희가 은기의 세계에서 거부되는 이유와도 일치하는 것이다. 심지어 은기는 기억상실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은폐함으로써 마루를 통해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도 세습된 왕좌를 돌려받는다.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투명한 강초코(이유비)와 은기의 대화가 가능해지면서 그녀는 사랑과 행복의 가능성을 부여받지만, 오히려 그것을 구체화하지 않고 물질의 회복으로 결론을 지으려는 것 역시 마루다. 결국, ‘착한남자’의 역할이란 자신에게 각인된 세상의 낙인을 제 위치로 돌려놓는 일이며, 이것은 본인의 욕망을 거세하는 것 뿐 아니라 타인의 욕망까지도 억누르는 강박적인 안정감으로 귀결된다. 드라마에서 가장 고루한 것은 문어체의 대사, 진부한 시퀀스의 나열이 아니라 바로 이 난처할 정도로 공고한 순응의 태도인 것이다. 마루가 결국 자신의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드라마의 멜로는 위장장치로 밖에 해석될 수 없다. 무엇도 전복시킬 수 없고,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는 감정의 파고를 사랑이라 부르기는 아무래도 어렵기 때문이다. 글 윤희성
<div class="blockquote">강마루(송중기)가 자신을 배신한 한재희(박시연)에게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재희가 그것이 복수냐고 물을 때마다 마루는 같은 대답을 한다.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 그렇다면 재희의 제자리란 어디일까. 재희는 그 답을 들을 때마다 폭력과 가난에 시달려야 했던 산동네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을 다짐하지만, 마루가 말하는 ‘제자리’는 그 곳이 아니다. 마루가 아직 재희에게 “등신같은 미련”을 가지고 있었던 때까지 재희의 제자리는 마루의 옆자리였고, 마루가 서은기(문채원)를 사랑하게 된 뒤에는 “태산의 주인”으로서의 은기의 자리가 아닌 곳이 재희의 자리다. 마루가 원하는 것이 복수라면, 그녀의 자리는 파멸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재희의 자리가 마루에 의해 계속 바뀌고 있는 이유는 마루를 움직이게 하는 감정이 복수가 아닌 사랑이기 때문이다. <H3>믿음을 배신하며 연민을 얻는 이경희의 남자들</H3>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착한남자> 속에서 마루가 느끼는 감정은 분명하게 표현되지 않는다. 그는 오래도록 사랑해온 재희에게 고백하는 순간에도 무심하게 말을 던지고, 은기에 대한 마음이 사랑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할 때도 조용하게 반문할 뿐이다. 일본에서 마루가 은기의 손을 잡았을 때 흘러나온 내레이션은 재희의 손을 놓지 않겠다는 맹세였다. 그때 마루가 마음에 품고 있는 게 누구였는지는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처리된다. 이전 이경희 작가의 작품들 속 남자주인공들이 위악적으로 구는 방식으로 나쁜 남자가 되었던 것과는 달리, 강마루는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욕망을 숨기려하지 않고 외모와 연기력으로 자신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던 때의 마루와 주변의 남자들을 이용하는 재희와는 정반대의 방법이다. 그래서 <착한남자>는 마성의 남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비록 동생의 치료비 명목이라고는 하나 제비짓을 하며 여자들의 돈을 “등쳐먹”거나, 사기를 쳐서 돈을 버는 마루의 현실은 정당화될 수 없다. 재희가 자신의 외모를 무기로 욕망을 휘두르듯, 마루 역시 자신의 필요에 의해 외모와 뛰어난 두뇌를 이용해 사람들의 믿음을 배신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재희처럼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또 자신이 현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숨기고 냉소하는 것으로 다른 이들의 연민과 마음을 산다. 그의 이런 태도는 상대로 하여금 “내가 사랑한 강마루”라는 존재가 있었다고 믿게 한다. 마루와 재희의 관계를 알고 난 뒤의 은기에게도 그렇고, 심지어 재길(이광수)이 같은 친구와 동생인 초코(이은비)에게까지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사실 마루가 ‘착한 남자’라고 믿을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를 믿을 때,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이며 마성의 남자로서 강마루가 이 드라마의 모든 상황을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H3>사랑했던 기억은 무엇을 움직이는가</H3>이경희 작가는 운명 같은 사랑에 대해서 말하는 작가라고 할 수 없다. 도리어 끝도 없이 잔인한 운명을 거스르면서까지 지켜내는 사랑이, 이경희 작가가 그려 온 ‘이 죽일 놈의 사랑’이다. 하지만 그 사랑의 비극은 8년 전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이미 완결되었다. <착한남자>에서 예고되어 있는 비극도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결말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진짜 비극은 이경희 작가가 그리 견고하지 않은 세계 속에 모든 인물을 극단적인 굴레에 옴짝달싹할 수 없게 묶어둔 채로 “사랑을 죽을 만큼 한 적 있”는지를 묻는 데에만 머무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안에서는 미래에 대한 어떤 기대도 없이 “내일이라도 당장 죽을 사람처럼” 살고 있는 강마루만이 유일한 변수다. 나락에 떨어진 악녀와 기억을 잃어버린 여인 사이에서 그는 어떤 방식으로 비틀어진 운명을 제자리로 돌려놓을까. 죽음도 불사하는 사랑의 결말보다, 신도 운명도 어쩌면 사랑도 믿지 않을 아름다운 한 존재의 보이지 않는 미래가 더 궁금해지는 것. 이게 바로 <착한남자>의 남겨진 이야기들을 지켜볼만 한, 혹은 지켜보지 않아도 될 이유다. 글 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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