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진기자
[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보편적 복지 개념이 정책으로 구체화된 사례가 무상보육이다. 정치권이 선거를 앞두고 내놓은 ‘무상보육’ 정책이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부모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장기적인 계획으로 국민의 출산과 양육, 교육 그리고 경제활동참여 행위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보편적 ‘아동수당’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만 0~2세 전체 영유아를 대상으로 보육료(어린이집에 가는 아동에 대한 지원금)를 지원하는 무상보육 정책에 적신호가 켜졌다. 지난 3월 시행된 지 불과 넉 달 만이다. 지방 자치단체들은 예산 부족을 호소하고, 어린이집 보육료가 전 계층에 지원되다 보니 굳이 안 보내도 되는 애들까지 어린이집으로 나오는 ‘과수요’가 발생하고 있다. 지원 못 받는 무상보육 ‘사각지대’에 빠진 서민층도 생겨났다. 무상보육 무엇이 문제인가서울 서초구는 예산 부족으로 인해 지자체 가운데 가장 먼저 무상보육 중단을 선언했다. 지난해 12월 20일 올해 보육예산으로 85억원을 확정했으나 이 돈은 지난달 10일 이미 다 바닥났다. 서초구의 지원 대상 아동이 1600여명에서 올해 5100여명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7월치 부족분은 서울시에서 임시로 빌려줬다. 이달에도 무상보육 예산이 부족해 오는 25일까지 정부 지원이 없으면 보건복지부 정보개발원의 협조를 구해 카드사에 예탁금 대납을 요청하기로 했다. 9월은 아직 뚜렷한 대책이 없다. 서울 대부분의 자치구가 예산 고갈로 내달 무상보육을 중단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이 같은 현상은 정부가 작년 12월 소득 하위 70%의 가정에 지원하던 만 0~2세 보육료를 전 계층으로 확대, 서울 전체 무상보육 대상 아동이 6만6840명, 예산은 약 7000억원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자체는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국회가 무상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데 따른 혼란인 것이다. 25개 구청장으로 이뤄진 서울시구청장협의회는 오는 9월 중순쯤 무상보육 예산이 바닥날 것으로 내다봤다. 무상보육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올해에만 2500억원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서울 25개 자치구 구청장들은 무상보육 중단 위기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며 조속히 추가 소요예산을 지원할 것을 촉구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도 재원이 없어 더 이상 무상보육을 하지 못하겠다고 연이어 선언하고 나섰다. 전면 무상보육으로 지자체가 추가로 부담하는 돈은 7250억원. 이 신규재원을 지방정부가 마련해야 하는 것인데 재정난에 허덕이는 지방정부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자체들의 얘기다. 지자체에서 현실적인 곤란을 토로하지만 정부는 대책 마련에 소극적이다. 오히려 소득에 관계없이 보육비를 지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아예 무상보육 대상을 축소할 움직임까지 보인다. 이 때문에 어린이집과 학부모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시행한지 채 5개월도 안 돼 전면 무상 보육이 중단 위기를 맞게 됨에 따라 정책의 일관성이 없는 졸속행정이라는 비난은 면하기 어렵게 됐다. 재정 문제뿐만이 아니다. 만 0~2세 영유아에 대한 전면 무상보육이 시작되면서 어린이집에 대한 수요가 넘쳐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4월 펴낸 ‘영유아보육 및 유아교육 사업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어린이집 평균대기 아동 수는 91명이며, 대기 아동 200명 이상 보육시설이 10.7%다. 어린이집을 보내야 정부보조금을 받을 수 있으니, 엄마들 사이에서 ‘어린이집 안 보내는 사람만 손해’라는 심리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민간어린이집보다는 상대적으로 시설이 나은 국공립어린이집에 부모들이 몰리고 있다. 부모들의 국공립어린이집 선호도는 높지만 숫자는 턱없이 적다. 족히 2~3년은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 허다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모들 사이에서 시설보육의 질과 기회 형평성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들은 국공립어린이집 등 질 높은 공공보육시설을 빨리 확대해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반면 획일적인 시설보육을 하는 게 능사가 아니란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차일드케어그룹 정용민 대표는 “아이들은 각자 특수성을 가지고 있어 아이에게 맞는 다양한 양육과 보육 방식이 필요하다”며 “부모에게 보육 선택권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무상보육 ‘사각지대’도 존재했다. 현재 양육수당(집에서 키우는 아동 지원금)은 차상위계층 이하 가정의 만 0~2세 아동에게만 지원되고 있다. 월 소득(재산의 소득환산액 포함)이 최저생계비의 120%(4인 가구 기준 약 180만원)를 넘지 않는 가정이다. 이 기준을 넘는 경우 집에서 키우는 영유아는 양육수당을 받지 못하는 상황인 셈이다. 지원 금액도 0세는 20만원으로 보육료(약 40만원)의 절반가량이다. 양육보조금은 그대로 둔 채 어린이집 보육료를 전 계층에게 지원하는 정책을 먼저 시행한 것이나, 만 3~4세보다 0~2세 무상보육을 우선 택한 정책에 대한 비판이 만만찮다. 2세 이하 영유아들은 시설이 아닌 가정에서 보육을 하라는 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고사항이다. 정서적으로 밀접한 사람과 교류를 하며 자랄 수 있어 뇌 발달에 좋고 행복감도 누리는 가정교육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 발간한 ‘영유아·유아교육 사업의 추진체계 개선 필요’ 보고서에서 “2세 이하 영아는 어린이집 이용 여부나 부모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지원하는 아동수당제도 도입을 검토하거나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부모의 자녀양육비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아동수당 도입이 해법이다“아동수당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국회발(發) 무상보육’ 파장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보육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높다. 시민단체나 인터넷 카페에서도 아동수당 도입을 주장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민간단체인 홍익희망포럼과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지난달 13일 보편적 복지를 위한 ‘복지국가의병’ 출범식을 통해 “5세 이하 모든 아동에게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을 지급도록 하는 내용의 아동수당 관련법의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넷 카페 ‘유아교육평등지원’의 회원 ‘워니짱’은 “어린이집을 보내야만 (무상보육) 혜택을 볼 수 있다니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했고 카페지기와 ‘주바라기’도 “공감한다, 아동수당 제도가 빨리 시행되기를 기대한다”고 표현했다. ‘아동수당’이란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을 중심으로 정부의 보육료 지원이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보육 대상 아동 수에 따라 지원되는 보육료를 현금의 형태로 직접 부모들에게 지원하는 제도다. 아동수당제도의 정책적 효과는 출산율 제고, 아동권리 향상, 소득 재분배, 사회통합 등 다양한 방면에서 거론된다. 아동수당이 도입될 경우 소외 계층에 대한 추가적인 지원과 함께 그동안 양육수당 지원에서 제외됐지만 자녀 양육비 부담이 큰 계층까지 복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아동수당제를 찬성하는 전문가들의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