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사장의 ‘재창업’ 스토리 | 김용문 선진모타테크 대표
ⓒ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잘 나가던 중소기업이 무리한 투자로 부도를 겪으며 날개가 꺾였다. 사업을 운영하던 남자는 폐업 후 오랫동안 신용불량자로 살았다. 8년 후, 그를 지켜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김용문은 달라” 남자의 이름은 김용문. 선진모타테크의 대표다. 포기를 모르고 끊을 놓지 않았던 그는 재기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불굴의 주인공이다.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사업 실패는 주홍글씨와도 같은 존재였다. 기업 빚 수천만원을 떠안으면서 찍힌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이 발목을 잡았다. “당신, 그 많은 채무를 다 어떻게 갚을 거야?” 부도기업인에게 꽂히는 의구심 가득한 주변의 눈초리는 가슴에 비수가 돼 날아왔다. 생계가 어려워진 가정, 갑자기 등 돌린 사람들… 일상생활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창업은 물론 취업도 신용의 벽에 가로막혔다.처음엔 금방 일어설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빛은 점점 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8년간의 암흑기. 절망의 늪에서, 세상의 패배자로 손가락질받던 김용문은 한 통의 이메일을 받고 중소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 인천지역본부의 문 앞에 섰다. 40대 후반을 넘어선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일, 막막한 가장의 마음은 복잡했다. ‘나는 이제 벼랑 끝에 섰다. 여기서 도망치면 더는 갈 곳이 없어.’ 문을 열고 들어섰다. 2010년 봄, 어느 날이었다.무리한 투자로 부도나고 신용불량자 낙인 엔지니어로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평소 관심 있던 산업용 모터 제조업체 창업에 나섰다. 패기 하나로 시작한 사업.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1995년 선진전자라는 사명을 내걸고 산업용 직류(DC)·교류(AC)모터와 컨트롤러를 개발, 생산해 OEM(주문자 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납품했다. 영업은 걱정할 게 없었고 기술력에 집중하기만 하면 됐다. 30여명의 직원으로 4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했다.성공이 계속되자 ‘새로운 제품 개발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하고 생각했다. 그때 김 대표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게 BLDC모터였다. BLDC모터는 기존의 직류(DC), 교류(AC)모터에 비해 에너지효율이 높고 수명이 길어 차세대 모터로 평가받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개발 시기가 너무 이르지 않느냐며 우려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잘 나갈 때 과감한 투자를 해야지 싶었다. 그는 이 새로운 아이템 개발에 15억원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무모한 도전이었을까. 투자의 결과는 혹독했다. 회사는 부도가 났고 BLDC모터 및 컨트롤러 개발을 완료하지 못한 채 결국 7년 만에 문을 닫아야만 했다. 보증기관 대출을 받으면서 보증을 서준 연대보증인이 사고로 주저앉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재기를 모색했으나 대출금 대위변제 채무로 인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신세가 됐다.“BLDC모터가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투자했는데 시기적으로 너무 빨랐나 봅니다. 또 과잉 투자를 한 무모함도 있었고요.” 그는 하루아침에 부도난 실패 기업인이자, 신용불량자라는 딱지를 달게 됐다. 8년을 이렇게 살았다. 누구도 그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다. 기술의 끈을 놓지 않고 연구계속, 중진공에 재기의 노크중진공 인천지역본부에 들어서던 그때 그에게는 ‘다시 BLDC모터를 만들어 팔 수 있을까’ 하는 기대는 크지 않았다. 우리나라 기업 환경에서 부도 기업인이 한순간에 신용불량자가 되면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재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따라서 재창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에겐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컸다.중진공의 재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알게 된 건 어쩌면 필연이었는지 모른다. 마음을 추스르고 관련 업계에서 엔지니어 프리랜서로 일하고 연구하며 밥벌이 생활을 이어갈 때였다. 비록 사업할 수 있는 처지는 안 됐지만 기존 연구 분야에 대한 관심을 놓치는 않았다.감각을 유지하니 땅에 떨어졌던 자신감도 향상됐다. 정부지원 기관의 홈페이지나 지원사업에 대한 정보를 온라인으로 검색하고 꾸준히 챙겨보던 중 중소기업청·중진공 홈페이지에서 재창업 자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그는 인근의 중진공 인천지역본부를 한달음에 달려갔다. 본부 관계자로부터 재창업자금은 실패한 중소 기업인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신용회복은 물론 자금도 함께 지원하는 제도라는 설명을 들었다. 친한 친구라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그의 입장에서는, 상담을 진행한 관계자가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현재 처한 상황, 폐업 전의 경영 상황, 기술 보유 여부 등 체크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상세히 알려줬다.“아! 이건 하늘이 준 기회다. 한 가닥 희망의 빛줄기가 보이더군요.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렸어요.” 그해 7월, 그는 서류 심사에 응했고 재창업자금 지원을 위한 평가가 진행되는 동안 부도어음 회수에 나섰다. 10여년전의 어음을 회수한다는 것이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신용회복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절차였다. 60여장, 금액으로는 4억~5억원에 달하는 어음을 회수했고 회수 불가능한 3장은 신문 광고를 통해 마무리지었다.원금은 신용회복위원회로부터 9년에 걸쳐 갚기로 했다. 부도어음을 회수하느라 꽤 애를 먹기는 했지만 잘한 것 같단다. 폐업 이후에도 BLDC모터 등 관련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연구 활동을 해왔다는 점, 최근 BLDC모터 및 컨트롤러 시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점에서 큰 점수를 받아 그는 재창업 지원기업 대상자에 선정됐다.“평범한 사람으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었어요. 그동안 비주류로 살아왔으니까요. 폐업하고서 하고 싶은 걸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은행 근처에도 못 가봤거든요. 재창업자금 지원대상에 선정되고 나서부터 신용 회복이 되니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 기업인이 된 겁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급상승했죠.”그는 운전자금과 시설자금으로 9800만원을 지원받아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시화공단에 150평 규모의 작업장을 마련했다. 이렇게 해서 2010년 11월 선진모타테크를 창업했다. “여기 있는 기계들, 제게는 생명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기계 소리를 다시 듣던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올라요. 제가 다시 이 소리를 듣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첫 주문이 들어왔을 때의 감격도 회고했다. 1000만원 어치에 불과했지만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 인생의 제2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므로. 지난해 2억8000만원 매출… 이젠 부도상처 다 아물어인고의 시간 끝에 재기할 수 있었던 그는 끊임없이 노력했다.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활발한 재기의 몸부림을 통해 자신의 살아있음을 스스로 각인시키고 싶었다. 직원 3명과 똘똘 뭉쳤다. 김 대표는 BLDC모터 및 컨트롤러가 차별화된 기술인 만큼 국내에서 최초로 유해물질이 발생하지 않는 가정용 자동문 BLDC 컨트롤러를 연구개발, 생산하기 시작했다. 식물공장 자동화 시스템 부분에도 공을 들였다. 하루 8시간 일하는데 점심 먹고 차를 마시는 10여 분을 제외하고는 회사에 ‘올인’한다. 이 같은 열정과 성과에 힘입어 선진모타테크는 벤처기업인증도 받고 재창업자금을 1억원 추가로 더 지원받았다. 지난해 2억8000만원의 매출을 올렸고 중국 수출 실적도 2000만원을 달성했다. 처음치고는 괜찮은 성적표라는 게 김 대표의 평가다. 부채는 아직 남아있다. 하지만 8~9년간 착실히 갚아 나가면 되므로 큰 부담은 없단다. 올해는 성장 가속도가 한층 빨라져 7억~8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처음부터 다시 죽는 순간까지 자기 자신과의 경쟁을 마다하지 않을 작정이다. 업무를 마치고 작업장을 바라보면 ‘그래, 오늘도 나와의 싸움을 이겨냈구나’ 하는 마음뿐이다. “그래, 김용문, 잘 견뎌냈어” 현재의 그가 과거의 그에게 남기는 한마디다.To 재기에 나서는 중소기업 사장님들누구나 한번은 실수를 합니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는 사람과 그대로 주저앉는 사람에겐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넘어졌다면 빨리 털고 일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처음엔 물론 정신적인 타격이 심하겠죠. 제 경우는 폐업 후에도 내가 가지고 있던 기술을 묵히지 않고 계속 연구하며 관련 분야의 감각을 유지함으로써 자신감을 키웠습니다. 그래야 기회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예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그 노력이 결국 성공에 가깝게 다가가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암흑 같았던 그 8년의 세월이 오히려 내 삶을 한층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된 것 같습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하잖아요. 중진공의 재창업자금 지원 프로그램은 제겐 재기할 유일한 기회로 다가왔습니다. 재기를 원하는 기업인들을 돕는 정부기관 등의 프로그램을 적극 이용할 것을 권합니다. 재창업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현재의 내 모습을 창피해하지 않고 가감 없이 솔직하게 보여줬고, 중진공 측에서는 제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 오히려 재창업자금 지원 대상으로 선정될 수 있었죠.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은 건 건강입니다. 부도나고 정신적 충격을 감당하지 못해 6개월간 술에 절어 살았더니 몸 곳곳에 마비가 오더군요. 몸이 너무 망가지면서 이러다가 재기도 못 해보고 죽는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벌떡 정신 차리고 아침마다 1시간 정도 산행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을 다졌죠. 산 정상에서 마음의 응어리를 소리 질러 풀어버리세요. 답답함이 좀 뚫리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세상이 끝난 건 아니에요. 절대 실망하지 마세요. From 김용문 이코노믹 리뷰 전희진 기자 hsmile@<ⓒ 이코노믹 리뷰(er.asiae.co.kr) -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사경제주간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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