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더 걷으면 돼' 무책임한 공약이 나라 망쳐

경제, 문제는 정치다<상> 브레이크 없는 포퓰리즘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국회가 역량에 비해 권한이 너무 강하다"(청와대 고위관계자)"의회권력은 입법과 예산심의라는 강력한 수단으로 스스로를 확대 재생산한다. 의원의 역할이 커지고 국회사무처, 입법조사처, 예산정책처 등 지원기관이 비대해진다. 그에 걸맞는 책임은 반대로 줄어들어보인다. 최후의 보루인 재정건전성을 해치는 입법이 늘어 걱정이다"(현직 장관급 인사)"현재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권한은 의회가 4분의 3, 정부가 4분의 1을 나눠 갖고 있다. 정부가 가진 4분의 1 권한도 과거 경제기획원 같은 정책 컨트롤타워가 없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장 김광림 의원, 5월 서강대 오피니언리더스클럽 주최 토론회) 요즘 정부부처와 재계, 지자체들은 하반기와 내년도 사업계획을 짜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7개국)의 재정위기가 예상보다 장기화조짐을 보이면서 G2(주요 2개국) 미국 중국의 경기가 위축돼 국내 경기에도 직격탄이 돼서다. 재정건전성을 지키려는 정부는 정치권이 총선에 이어 대선공약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초긴장모드다. 재정부가 지난 4월 총선때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내놓은 266개 복지공약을 모두 시행한다는 전제로 계산하면 향후 5년간 최소 268조원이 필요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이 보다 많은 5년간 각각 281조원(연평균 56조원)과 572조원(연평균 114조원)을 추산했다. 지난 4월 각 정당에서 자체적으로 발표한 복지비용(5년간 새누리당 총 75조3000억원, 민주통합당 총 164조7000억원)보다 높은 수준이다. 정부와 공공부문의 부채가 800조원에 근접한 것을 감안하면 소위 국회가 나라곳간을 털려고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경제관료출신의 새누리당 초선의원은 "관료시절 간혹 의원들이 찾아와 '어차피 세금이 더 걷히는 데 필요한 곳이 좀더 쓰자'고 했다"면서 "그리스, 스페인을 봐도 재정건전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로존 위기의 불을 지피고 있는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모두 정치적 혼란에 이어 경기침체가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다. ◆유로존 진앙지 그리스, 정치혼란-경기침체 악순환=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원장은 그리스에 대해 '정치적혼란→불확실성 증대→경기침체 가속화→정치적혼란'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진단했다. 현 원장은 이탈리아에 대해서는 "재정적자가 작고 부동산 거품이 문제되지는 않으나, 수년간 경기침체가 지속됐다"며 "정치적 안정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비정치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마리오 몬티 현 정부의 구조개혁 노력이 지체되고 9개월 후에 시행될 차기 총선의 결과에 대한 불안감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로 대변되는 '무상'과 '반값','민생'의 함정에 빠져있다고 경고한다. 만 5세 이하 모든 어린이에 공짜로 보육원에 보내준다는 무상보육은 지방자지체단체의 재정위기로 돌아왔다. 국회가 예산을 심사하며 5세 이하 전 계층으로 확대하고 정부가 시행할 수 밖에 없었다. 중앙-지방이 재정을 분담을 했지만 소득계층에 관계없이 보육원에 가는 어린이들이 급증하면서 지자체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 보육료 지원중단사태가 빠르면 8월, 늦어도 10월에는 대부분 발생될 전망이다. 정책 제공자와 정책 수혜자, 재정부담자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정책결정 과정에서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다.민주당이 내놓은 '반값등록금'은 초중고생 후배들에 갈 교부금(연간 34조원)의 3분의 1을 대학생을 위한 교부금을 따로 만들어 여기에 쓰자는 것이다. 현재 대학을 제외하고 초중고 교육을 위해 지자체에 내려주는 교부금의 일부를 떼어내 대학등록금을 낮추는 데 쓰자는 안이다. 정치권의 민생안정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권의 민생은 일반 국민이 아니라 소득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서민과 사회취약계층을 말하고 이들에 대한 복지를 외치고 있다"면서 "민생안정의 핵심은 복지가 아니라 일자리와 소득이며 여기에 맞는 경제정책을 정부, 정치권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제도 바꾸고.. 재정건전성 강제화해야=전문가들은 재정방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권의 인식변화와 함께 무분별한 입법을 막는 장치와 의회제도의 변화를 주문한다. 가상준 단국대 교수는 국회가 개원을 하지 않아도 상임위원회를 활성화하고 상설소위원회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대화와 타협,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라는 의미다. 무분별한 의원발의 방지를 위해서는 사전규제의 필요성에 제기되나. 국회법에서는 '예산, 기금상의 조치를 수반하는 의안을 발의하는 경우 예상비용에 대한 추계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적혀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의원은 극히 드물다. 실제로 지난해 5월 재정부가 당시 기준으로 의원발의된 법률안의 2011∼2014년 재정소요 추계액(비용추계서 기준)을 전부 합산해보니 800조원이나 됐다. 비용추계서를 첨부하지 않는 70%의 법률안을 뺀 것이니 이를 포함하면 1000조가 넘어선다. 재정건전성과 관련,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국가재정운용계획, 국가채무관리계획 등 재정건전화를 위한 중기 재정계획들은 그 대상기간이 5년에 불과하고 이행강제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대상기간을 5년에서 10년 이상으로 확대하고, 지출상한 등 재정목표치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 이를 강제 이행하는 수단을 도입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재용 서울대 교수는 한국경제연구원 기고문에서 "복지위주의 경제정책은 중장기적으로 경제의 성장잠재력에 큰 타격을 준다"면서 "정치권의 복지공약을 실현하려면 경제의 활력을 죽일 정도의 과도한 증세로 이어지거나 윗돌 빼서 아랫돌을 고이는 형태로 다른 예산을 빼서 복지에 집중적으로 넣어야만 겨우 충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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