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발 '종합악재세트'… 하반기 '경제킬러' 다가온다

유로 위기에 美·中 성장위축… 대외의존도 높은 한국에 치명타

[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오래가는 독감 정도로 여겼던 유로존 재정위기가 폐렴으로 번질 태세다. 전염성도 강하다. 유럽 시장에서 재미를 봤던 중국이 강펀치를 맞았고, 미국 경제의 회복세도 주춤해졌다. 금융시장의 화살표는 날마다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세계 3대 시장이 풀 죽었는데 한국만 무탈할리 없다. 수출은 석 달째 마이너스, 내수도 기를 못 편다. 가계 대출 연체율은 5년 새 최고치다.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은 안하겠다'던 정부도 급기야 기금을 풀어 성장률 방어에 나서겠다고 한다. 우리 경제는 지금 어떤 지점에 와 있는 걸까.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31일(현지시간) "현 상태로는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7개국)이 지속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드라기 총재는 이날 유럽 의회에서 "ECB의 주요 업무는 물가안정을 유지하는 것일 뿐 스페인의 방키아 은행 등 유로존 은행권 부실 문제를 해결할 권한과 책임은 각 국 정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결자해지(結者解之)하라는 요구다. '고해'에 가까운 드라기 총재의 발언은 요사이 유로존 상황이 어느 지경에 다다랐는지 보여준다. 그리스는 막대한 재정적자를 지고도 배짱을 부리는 중이다. EU와 국제통화기금(IMF)이 내건 구제금융 지원 조건을 수용할지 6월 17일 2차 총선에서 판가름이 난다. 여기서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집권한다면 구제금융 지원 조건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자금 지원이 끊어져 국가 부도(디폴트) 상황이 오면 중앙은행의 발권력(돈을 찍어내는 권한)에 기대 경기를 부양할 수 밖에 없다. 유로존에서 탈퇴해 종전 화폐 드라크마화를 찍어내는 시나리오다. 유로존의 4위 경제대국 스페인이 휘청이는 건 더 큰 문제다. 국채 금리가 투기 등급 수준인 7%선에 가까이 갔고, 1분기에만 1100억 유로가 빠져나갔다. 스페인 경제는 남미 경제권과도 긴밀히 엮여 있어 도미노처럼 위기가 번질 수 있다. 유럽의 위기는 세계경제를 흔들어놨다. 2010년 10% 안팎에서 움직이던 중국의 분기별 성장률이 지난해 4분기에는 8.9%까지 하락했고, 올해 1분기 성장률은 8.1%로 위축됐다. 세계은행(WB)은 올해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8.4%에서 8.2%로 내려잡았지만 경기 부양책이 나오지 않으면 7.5%를 밑돌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중국 시장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24.2%에 이르는 한국에 대형 악재다.
미국 경제에도 불안심리가 퍼지고 있다. 고용과 소비가 선순환을 이뤄 경기를 살릴 것이라던 예상이 빗나가고 있다. 5월 미국의 신규 취업자 수는 시장의 예상치(158만명)를 크게 밑도는 전월비 6만9000명에 그쳤다. 2011년 5월 이후 최저치다. 반면 실업률 하락세엔 제동이 걸려 5월 실업률이 9.2%로 집계됐다. 시장 전망을 웃도는 수치다. 주요 시장이 허덕이면서 개방도 높은 우리 경제도 유탄을 맞았다. 1년 전과 비교한 1분기 수출 성적은 걱정스러운 수준이다. 지난 1월 -7.3%까지 급락했던 수출 증가율은 2월 들어 20.5%로 반짝 회복됐지만, 3월(-1.4%) 이후 5월(-0.4%)까지 석 달 연속 마이너스 딱지를 붙였다. 우리 경제의 심장 노릇을 하는 수출이 주춤해 소비 여력은 더 줄었다. 내수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자동차 판매는 5월까지 고작 0.8% 늘었다. 그나마 지난해 파업에 따른 기저효과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백화점 매출도 신통지 않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해도 두자릿 수 성장세를 보였던 백화점 매출이 올해는 1~3% 늘어나는 데 그쳤다. 4월에는 불황을 비켜간다는 명품 매출도 26개월만에 처음으로 줄었다. 백화점에서는 신상품을 80%까지 세일해 파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허리띠를 조였지만 살림살이는 팍팍하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4월 가계대출 연체율은 0.89%로 5년 2개월 사이 최고치까지 치솟았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집단대출 연체율이 올라갔고, 카드 대금을 제 때 못 내는 사람이 많아졌다. 향후 경제 상황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은 엇갈리지만, 비관론이 우세하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유럽의 재정위기가 파국을 맞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면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대유럽 수출이 20% 급감했는데 이런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변 실장은 "하반기에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수봉 대한상공회의소 조사 1본부장도 "지난해 우리의 경제 성장률이 세계 평균을 조금 밑돌았고 올해도 그럴 것 같다"면서 "유럽 사태가 급격히 악화될 가능성에 대비해 성장동력이 꺼지지 않게 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신동석 삼성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실물경제의 유럽 의존도가 낮아도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무시할 수 없다"면서 "유럽 변수에 영향을 받은 미국의 고용 관련 지표 등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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