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기자
오혜원 제일기획 상무<br /> ▲1972년 서울 출생 ▲1994년 한국외대 영어영문학 학사 ▲1994년 제일기획 제작팀 입사 ▲2002년 AP팀 담당 간부 ▲2003년 크리에이티브 그룹 담당 간부 ▲2004년 애니콜 제작 CD ▲2007년 오혜원 CD(팀장) ▲2008년 더 사우스 제작 그룹 디렉터 ▲2010년 국내 제작 그룹 디렉터 ▲2011년 콘텐츠본부 E. CD(상무)
[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노란 스커트 어디 있어? 그 직원 당장 데려와요."사장의 난데없는 호통에 임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회의를 하다 말고 노란 스커트를 입었던 여직원을 찾아오라니…. 황당할 만도 했다.긴장한 기색은 역력했지만 제 할 말을 다 했던 한 여직원의 당돌한 눈빛을 사장은 잊지 않았던 모양이다. 질문에 대한 답변이 꽤나 명쾌했고 아이디어가 번뜩였다고 생각했기에 다시 한 번 시험하고픈 마음이 아니었을까.수소문 끝에 찾아낸 노란 스커트의 주인공이 지금의 오혜원 제일기획 상무(40)다. 될 성 부른 나무의 떡잎을 알아본 사장은, 현역에서 물러난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둘의 인연은 '애니콜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삼성이 배출한 대졸 공채 출신 여성 1호 임원인 오 상무는 올해로 제일기획 입사 18년째다. 대졸 공채 기수로는 2기다. 지난 연말 동기 중에 가장 빨리 임원이 됐다.제일기획 본사 2층에 마련된 임직원의 휴식 공간, 아이스파(i-spaㆍ아이디어가 샘솟는 공간)에서 안마 의자에 누워 만화책과 잡지를 보면서 오 상무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쿵쾅쿵쾅 발소리를 내며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댕그란 눈에 친근한 인상을 지닌 오 상무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같은 말을 꺼냈다. "이름이 같아선지 뵙고 싶었어요."새로운 광고 제작 일로 경기도 화성에 있는 에쓰오일 주유소에 갔다가 한남동 본사로 내달렸다지만 그는 결국 지각했다. 짧은 만남, 긴 여운. 대화를 더 나누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오 상무처럼 바쁜 인터뷰이는 처음. 전화기는 1시간 내내 쉴 새 없이 울렸다. 그렇다고 전화를 꺼둘 수도, 안 받을 수도 없다. '광고쟁이'에 있어 목숨과 같은 클라이언트(광고주)와의 약속 탓이다.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인터뷰어의 혼을 빼놓을 정도였달까. 그런데 희한했다. 짧은 만남이지만 어느 누구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초 단위 광고를 만드는 '직업병'과 관련이 있었던 것일까.오 상무의 다음 스케줄까지 허락된 시간은 약 1시간. 못 다한 이야기는 수십 차례에 걸쳐 서면과 문자 대화로 대신했다. "초 단위로 일정이 잡히는 데다 변수가 자주 생기기 때문에 개인적인 약속은 잘 안 잡는 편"이라는 그의 말이 공감됐다. 타이핑하는 손이 그의 말을 따라가지 못 할 정도로 숨 가쁘게 진행된 오 상무와의 이야기를 이제부터 전달한다. 흥미진진 그 자체다.◆친구 따라 제일기획 갔다가 "헤드라인이 뭐죠?"카피라이터로 시작했다. 그것도 우연한 기회에 친구 따라 입사 지원을 했고 덜컥 합격이 됐다. 그렇게 1994년 초 삼성의 대졸 여성 공채 2기로, 제일기획과 첫 인연을 맺었다. 대학 시절 무작정 광고에 매력을 느끼긴 했지만 전문적 지식은 없던 문외한 시절이었다. 시험장에서 면접관에게 "헤드라인이 뭐죠?"라고 되물을 만큼 당돌한 20대 여성일 뿐.큰 기대 없이 시작한 사회생활이어선지 남보다 에너지 발산이 더 잘 됐던 것 같다고 오 상무는 말했다. 그는 "하루하루, 매년 해를 거듭할수록 (광고) 일이 재미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정말 정신없이 지냈다"면서 "쉬면서 잡지책을 보거나 넋 놓고 TV를 보면 주위에서 '쟤 또 아이디어 내려고 공부한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나를 알아주는 커피가 있다(맥스웰하우스 캔커피)' '내 삶의 반올림(포스코더샵)' '가로본능(애니콜)' '세상은 자란다(네이버)' 'TV의 기적이 시작된다(삼성 스마트TV)'.누구나 한 번은 접했을 광고 문구(카피)가 모두 오 상무의 손을 거쳤다. 말 그대로, '대박' 히트작이다. 한 눈에 봐도 덤벙거리고 직설적이고 즉흥적인 성격의 오 상무는 오기 하나는 끝내주는 독종이었단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제일기획 내부는 물론 광고계에서도 거장으로 통하는 최인아 부사장과의 에피소드 하나. 오 상무는 "여태껏 혼자만 간직하던 비밀"이라며 최초 공개라고 강조했다. 최 부사장조차 모르는 일을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최 부사장 밑에서 여러 번 카피라이터로 일했어요. 저는 대리였죠. 한 번은 카피 컨펌을 받는데 열 번을 써도 '아직 아니다, 다시!'라고 하시는 거예요. 오기가 생겼죠. 그러다 새벽이 됐어요. 부사장은 기다리다 못 해 '내일 아침에 보자'며 퇴근했는데 벌겋게 동이 틀 때까지 머리를 쥐어짜다보니 저도 화가 나더라고요. 홧김에 캐비닛을 확 잡아당겼는데 부사장이 미리 써놓은 카피가 들어 있더라고요. 역시나 싶었어요. 그날 조금 많이 참고해서 완성한 뒤에 무사히 컨펌 받았답니다."◆"노란 스커트 어디 있어? 당장 찾아 와!"좌충우돌의 카피라이터 시절, 톡톡 튀는 카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오 상무(당시 차장)에게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입사 10여년이 지난 시점이다. 그에겐 잊을 수 없는 '노란 스커트' 사건이다.삼성의 휴대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애니콜'이다. 애니콜은 또 '가로본능'과 '이효리의 섹시 댄스'를 연상케 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가로본능 휴대폰과 애니콜 광고의 중심에 오 상무가 있다. 우선 '가로본능'이란 카피를 생산한 주인공이 바로 그다. 애니콜 광고 시리즈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한 살아 있는 증인이기도 하다.애니콜 광고 제작을 맡게 된 일련의 에피소드는 한 편의 단행본이다. '애니콜의 신화'로 불리는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당시 사장)과의 인연으로 거슬러 오른다.애니콜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던 어느 날, 이 사장을 비롯한 최고 경영진에게 광고 시안을 보고하는 자리에 배석하게 됐다. 마침 오 상무에게 우연찮은 발언 기회가 주어졌다. "자리가 너무 무섭기도 했고 긴장해서 어떤 질문인지 잘 기억이 안 나요. 다만 생각하고 있던 답은 잘 이야기 한 것 같아요."이후 오 상무가 빠진 또 한 번의 광고 제작 회의에서 이 사장은 "보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지난 번) 노란 스커트를 데려오라"고 직접 지시를 했다. 당시 함께 있던 임원들은 "노란 스커트가 도대체 누구냐"면서 수소문을 했고, 오 상무가 첫 번째 보고 자리에서 노란색 치마를 입고 갔던 사실을 알게 됐다. 오 상무는 다시 이 사장을 만나게 됐고 처음으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애니콜 광고 제작 업무를 맡게 됐다. 다른 사람보다 5년여 빠른 시점이었다. 오 상무는 이렇게 기억한다."애니콜 신화라는 말이 있을 만큼 제품도 광고도 급속히 성장하는 시기를 함께 했어요. 정말 다사다난했다는 표현이 딱 맞는 많은 일이 있었죠. 특히 10분 길이의 뮤직비디오 형식의 애니모션 시리즈는 최초의 엔터테인먼트 마케팅이라 불리면서 유명세를 치렀어요. 호주와 브라질까지 가서 촬영을 했죠. 영화 한 편 찍는 것 못지않은 땀과 노력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