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서정주 '일요일이 오거든' 중에서

일요일이 오거든/친구여/인제는 우리 눈 아주 다 깨어서/찾다가 놓아둔/우리 아직 못찾은/마지막 골목길을 찾아가 볼까?//거기 잊혀져 걸려있는 사진이/오래오래 사랑하고 살던/또 다른 사진들도 찾아가 볼까//일요일이 오거든/친구여/인제는 우리 눈 아주 다 깨어서/차라리 맑은 모랫벌 위에/피어있는 해당화꽃 같이 될까(……)■ 일요일이란 일주일에 한번씩 오는 흔한 날인데, 미당은 평생에 한번 오는 휴일처럼 엄청 벼르는 기색을 보인다. 그 일요일날 그는 혼자 어디 다니려는 게 아니라 친구를 부른다. 친구라니, 그저 편안한 대상 모두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미당이 슬쩍 윙크하며 "그건 바로 너였어"라고 말할 어떤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 나는 그가 일요일날 하고싶은 것들 중에서 이 대목이 마음에 든다. "거기 잊혀져 걸려 있는 사진이/오래오래 사랑하고 살던/또 다른 사진들도 찾아가 볼까" 사진이 사진을 사랑한다. 우린 모두 하나의 사진이 된다. 우리의 사랑은 하나의 사진을 사랑하는 빛바랜 다른 사진의 표정일 뿐이다. 사람은 늙고 존재는 사라져도 저렇듯 기록이 남아 사랑을 증거한다. 하나하나의 사진은 저토록 나름대로는 길고 깊었던 사랑이 있었던 것을.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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