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강사에서 보이차 전문가로 변신한 김중경씨
[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후발효(後醱酵). 보이차의 진가는 이 후발효에서 나온다. 누군가는 발효를 썩는 현상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하지만 보이차에 있어선 시간이 부리는 마법이다. 발효는 그 물질이 고유의 특성을 잃어버리고 수명을 다한 마지막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새로운 물질로서 시작을 의미한다. 모양, 성분, 향, 맛까지 모두 달라지지만 그렇기 때문에 새로움이 가능하다. 보이차의 후발효와 인생 2막의 공통점이 여기에 있다. 은퇴 후 보이차를 판매하며 후발효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김중경(53) 성차사 진품보이차 대표를 만나 차향기 가득한 인생 후반전을 들어봤다. 햇살은 따사롭지만 응달에선 아직 겨울이 덜 물러간 듯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게 전형적인 초봄 날씨다. 머리카락이고 머플러고 봄바람 장난에 헝클어져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얄미운 바람을 맞으며 서울 제기동의 한 골목길에 들어섰다. 멀리 초록색 간판에 흰색으로 쓴 ‘보이차’라는 세 글자가 또렷이 눈에 들어온다. 김 대표가 전화로 일러준 대로다. 건물 1층에 위치한 상점은 정면이 투명유리로 이루어져 있어 진열대엔 다양한 형태와 종류의 다기와 보이차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복숭아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앗! 보이차 향인가보다’ 하고 좋아라 하고 있는데 “이건 보이차 향이 아니고 손님들이 오신다길래 방향제 좀 뿌렸습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순간 ‘푹’하며 웃음이 났다. ‘차에 대한 지식이 짧아 생긴 오해였다.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자리에 앉으니 김 대표가 차 한 잔을 권한다.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물이 뜨거워지자 첫 찻물을 우려내 그 물로 대접할 찻잔을 모두 씻는다. 모두 오른손으로 하는데 손놀림이 재빠르다. ‘봉황단총’이라는 오룡차라며 건넨다. 사진기자에게도 “향을 한번 찍어보실렵니까”하며 한 잔의 차를 권한다. 김 대표도 자신의 찻잔에 차를 따랐다. 역시 익숙한 손놀림이다. 찻잔을 코로 가져가 향을 맡더니 한 모금 마신다. 김 대표를 따라 함께 차를 마셨다. 찻잔을 들고 향을 맡았다. 오렌지 향이 나는 듯하다. 한 모금의 차를 맛봤다. 생각한대로 오렌지 맛은 아니었지만 입안에 새콤한 과일 주스를 머금은 듯 향긋했다. 목을 넘길때 차 특유의 떫은 맛과 풀냄새가 느껴졌다. “차에선 다섯 가지 맛이 난다고 합니다. 단맛, 쓴맛, 신맛, 떫은 맛, 호사가들이 말하는 ‘무미’까지. 차 속엔 사람을 기분좋게 하고 긴장감을 풀게 하는 성분들이 있어 차를 마시면 각박한 도시를 떠나 산속에서 즐기듯 삶의 여유를 맛볼 수 있답니다.”갑자기 찾아온 뇌출혈…한때 세상과 단절하기도김 대표는 몸이 불편하다. 10여 년 전 갑자기 쓰러진 후 신체의 왼쪽이 모두 마비됐기 때문이다. 거동은 할 수 있지만 오래 걸을 수 없고, 그때 건강이상의 여파로 왼쪽 팔과 손은 여전히 사용하기 불편하다. 심지어 목청도 손상돼 한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고생하기도 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하고 있는 보이차 판매도 그렇게 시작됐다.
서예에 일가견이있는 김중경 대표가 ‘다반향초’란 글씨를 직접 쓰고 있다.[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만 40세가 되던 2000년 2월 어느 날 불행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그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원인은 과로였다. 당시 그는 입시학원가에서 이름을 떨치던 국어강사였다. 학원에서 고등학생과 재수생들을 대상으로 입시 국어를 강의했다. 이 분야에서는 실력자로 알려져 교육관련 방송에 출연하는 한편 학원 행정업무도 맡아 보느라 휴일조차 반납하며 일해야 했다. 결국엔 만성피로와 스트레스 등이 겹쳐 병이 되고 만 것이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불행은 그를 끝없는 나락으로 몰아갔다. 일단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자연스럽게 이른 은퇴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변했다. 왜 이런 불행이 자신에게 찾아왔는지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마음이 생겼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느껴야 만족스러울 정도로 마음이 왜곡됐다. 우울해졌고 극단적인 생각도 종종하게 됐다.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 어려워졌다. 점점 세상과 단절되기 시작했다. 자신의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는 점점 고립됐다. 장애우와 여행다니다 우연히 보이차 접하고 창업그런 상태가 2년 정도 지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 부쩍부쩍 성장하는 어린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 둘째가 세 살 밖에 안됐다. 그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기 시작했다. 신체활동을 최소화 하면서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수단은 바로 인터넷이었다. 우연히 인터넷 공간에서 장애인들이 여행을 하는 카페를 알게 됐다.
보이차는 오래묵을수록 가치가 높아지고 맛과 향도 좋아진다. 김 대표가 직접 중국에서 들여온 보이차.[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이후 카페에 가입하고 가족들과 함께 곳곳을 누비며 여행을 다녔다. 그 곳에서 그는 수많은 장애인과 그들의 가족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장애라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시선을 더 이상 의식하지 않게 된 것이다. 여행을 통해 세상에 나가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대학시절 철학공부를 하면서 배웠던 헤겔의 변증법의 교훈을 그는 마음깊이 새기고 있다. 시련이 있으면 성공도 있는 법, 언젠가 그는 다시 좋아질 거란 생각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후 그는 공부방을 차렸다. 15년 정도 가르치던 일을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입시학원과 동네 공부방은 분위기와 교수법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공부방을 운영하며 생활비는 마련할 수 있었지만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오랫동안 꾸준히 해나갈 일이 필요했다. 특히 몸도 불편하고 나이도 마흔을 넘겼기 때문에 어디에 취직을 하는 것도 어려웠다. 좀 더 장기적이면서 갑자기 자신에게 닥친 변화에 걸맞은 직업으로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보이차를 그 무렵 알게 됐다. 우연히 여행간 곳에서 지인이 가져온 보이차를 맛보게 됐다. 보이차를 보는 순간 그는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거무스름한 찻잎을 보면서 그는 이것이야 말로 자신의 미래를 밝혀줄 경제수단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고 한다.그는 곧바로 보이 차에 대한 자료검색부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한자와 한문학을 공부했고 대학시절엔 철학과에 진학해 동양철학에 심취했던 그는 중국어와 중국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적었다. 보이차에 대한 문헌과 자료를 찾는 것은 물론 맛있는 보이차가 있다는 곳은 모두 찾아가 봤다. 각종 보이차를 맛보고 만지고 재배, 채취, 가공, 보관 등 차가 만들어지는 과정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2007년 인터넷 쇼핑몰을 창업했다. 인터넷몰을 운영하며 그는 그동안 관찰하고 시음하면서 터득한 보이차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업데이트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그는 수 년 동안 보이차를 마시고 실험하면서 다 마신 찻잎을 보고 차의 이력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잔에 담긴 젖은 찻잎만 봐도 언제, 어디서, 어떤 공정과 보관을 통해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동안 차를 마시고 올라오는 후기들은 주로 차를 마셨더니 기분이 좋더라 식의 내용들이었는데 제가 찻잎을 보고 분석하며 품평을 올리면서부터는 다른 분들도 그런 식으로 품평기를 쓰기 시작해 이제는 하나의 관행이 됐습니다.”“고객들과 차 마시고 얘기하는 내 인생은 부자”보이차의 어떤 점이 좋은 지 물었다. 차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두 눈에서 빛이 났다.“차엔 카데킨이라는 폴리페놀 성분이 있습니다. 항산화 물질로 노화방지는 물론 고혈압, 당뇨도 예방합니다. 그런데 특히 보이차는 카데킨이란 성분이 다른 차에 비해 월등히 더 많이 들어 있습니다. 제 건강도 매일 보이차를 마시면서 더욱 좋아졌습니다.” 그가 이번엔 보이차를 꺼내들었다. “이 차도 한잔 맛 보셔야죠? 진짜 귀한 차입니다.”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물을 데우고 잔을 씻는다. “보이차는 ‘푸얼’차라고도 하죠. 중국의 운남성 보이현이라는 지역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지요. 전 1년에 한 번씩은 그곳에 가서 현지 차밭을 둘러보고 따로 가공과정까지 지켜보고 돌아옵니다.”서예에도 조예가 깊은 그는 차를 팔고 차를 마시면서 글씨를 쓴다. 그는 2007년 인사동 갤러리에서 작품 100여점을 전시하기도 했다. 그는 가끔 의뢰가 들어오면 글씨를 쓴다. 종종 차를 마시는 공간에 걸어둘만한 글씨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는데 그럴 때면 그는 ‘다반향초’(茶半香初)를 쓴다. ‘다반향초’는 차를 마신지 반나절이나 됐으나 그 향은 처음과 같다는 뜻으로 늘 한결같은 마음과 자세를 강조할 때 쓰는 말이다. ‘초지일관’(初志一貫)과도 같은 말로 사용한다. 그는 보이차를 팔면서 항상 일관되게 지키는 원칙이 하나 있다. 바로 ‘장사는 신뢰에서 비롯된다’는 생각과 그로인한 행동들이다. 차를 팔 때 자신이 판단했을 때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절대 판매하지 않는 것도 그런 원칙에서 기인한 행동이다. 이런 생각 덕분에 그는 그간 꽤 많은 단골을 만들 수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그간 벌어들인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 묻자 그저 가족이 불편함 없이 생활할 만큼 생활비를 버는 정도라고 말했다. 대신 사업초기비용이 적게 들어 그때에 비하면 사업규모는 크게 확장됐다. 이젠 버젓이 오프라인 점포도 마련해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곳에서 품질 좋은 보이차를 찾는 고객들을 맞이하며 함께 차를 마시고 차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으로도 충분히 부자가 됐다는 생각이다.“적성에 딱 맞는 일을 찾았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시련에 인생이 끝나는 것 아닌가 하고 좌절도 했는데 저에겐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가 된 것 같아요.”보이차는 후발효로 더욱 향이 진해지고 풍미도 좋아지는 차이다. 후발효는 겉으론 남들이 코를 막고 피하는 일종의 부패 과정으로 끝이라고 생각될 수 있으나 속으론 더욱 그윽한 향을 품는 공정이다. 월진월향(越陳越香·시간이 지날수록 맛과 향이 더 좋아진다)이라고도 표현되는 보이차는 잘 발효되면 순하면서도 살짝 단맛이 도는데 그 때문에 오래 묵을수록 이 차의 값어치는 덩달아 높아진다. 인생도 그런 보이차와 같은게 아닐까. 김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삶이 보이차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후발효로 인해 더욱 그윽해지는 보이차의 향기처럼 이 남자의 삶도 더욱 향기로운 삶이되길 기원해본다.이코노믹 리뷰 김은경 기자 kekisa@<ⓒ 이코노믹 리뷰(er.asiae.co.kr) -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사경제주간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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