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황동규의 '풍장(風葬).1' 중에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섭섭하지 않게/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손목에 달아놓고/아주 춥지는 않게/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군산에 가서/검색이 심하면/곰소 쯤에 가서/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샤갈의 그림들을 봤다. 그가 그린 사람들은 허공에 떠있었다. 어떤 비행기구를 사용하지도 않고 또 날개를 달지도 않은 채 그냥 편안하게 떠 있었다. 현실에서 사람이 그렇게 떠있지 않은 것은, 말하자면 샤갈이 우리를 그렇게 그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억지스러울까. 샤갈의 부인(浮人)들은 그림 속에서 꿈을 꾸고 있거나 사랑을 하고 있거나 편안히 누워있거나 했지만 죽은 사람들은 아닌 듯 보였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사람이 저렇게 죽는다면? 가벼움은 삶과 죽음 사이에 드리워진 단절의 옹벽을 넘나드는 부드러움의 힘이다. 자유로움은 시인의 영혼이 거처하고 싶은 주소이다. 세상은 그를 자유롭게 놔두진 않았다. 늘 자유를 꿈꾸었지만 질곡에 안주하고 형식에 슬쩍 엉덩이를 붙인 채 살아야 했다. 이제 바람에 묻었으니 드디어 완전한 자유가 아니겠는가. 풍장은 소멸이 아니라, 자유를 완전히 쟁취한 존재의 성채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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