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킬', '홍바고'가 되다! - '닥터 지바고'로 돌아오는 '뮤지컬 스타' 홍광호 인터뷰

[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어둠 속에 숨은 삐뚤어진 천재음악가(팬텀), 두 자아 사이에서 파멸하는 의사(지킬). 뮤지컬 사상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잇달아 도맡아온 뮤지컬 스타 홍광호(31)가 러시아 혁명기의 거대한 흐름에 몸을 맡겼다.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원작 소설과 동명의 영화로 잘 알려진 뮤지컬 '닥터 지바고'(제작_오디뮤지컬컴퍼니)의 유리 지바고 역이다.개막을 열흘 앞두고 만난 홍광호는 예전보다 다소 수척해 보였다. 연기 변신도 변신이지만 동료 주역배우의 갑작스러운 하차로 당분간 혼자 공연을 짊어져야 하는 부담이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케 했다.('유리' 역으로 더블 캐스팅됐던 주지훈이 '성대결절'을 이유로 역에서 빠지고, '지킬 앤 하이드' '조로'의 조승우가 새롭게 투입됐다) 홍광호는 "부담감이 큰 건 사실"이라고 하면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도 다 운명인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지난해 '지킬 앤 하이드'를 마친 홍광호가 차기작으로 '닥터 지바고'를 택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주로 비현실적이고 강렬한 역에서 매력을 최대로 발산했던 홍광호에게 지바고의 이미지는 잘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택을 망설였던 것은 홍광호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처럼 '러시아 혁명기'라는 낯선 배경과 장대하기 이를 데 없는 내러티브 탓이다. "원작 소설이나 영화는 솔직히 지루한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제안을 받고 유튜브로 호주 초연작 음악을 들어봤는데, '와, 이거 좋다' 하는 생각이 단번에 들더라구요." 출연 결정에 쐐기를 박은 것은 대본이었다. "전개 속도가 빨라요. 소설이나 영화가 멀리 돌아 상황을 보여준다면 뮤지컬은 직접적으로 보여주죠."일명 '축복받은 성대'로 강한 카리스마를 발휘했던 홍광호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 무기를 잠시 내려놓아야 했다. 지바고가 시대에 휩쓸리면서 운명에 이끌려가는 인물인 만큼 드라마에 잘 녹아드는 게 관건이어서다. 이런 탓에 그가 노래하는 지바고의 넘버도 이제까지와는 달리 차분히 가라앉은 느낌이다. 팬텀이나 지킬처럼 스스로 사건을 일으키고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주도적인 캐릭터를 소화해온 그로서는 처음 맡는 인물형인 셈이다.
장점도 있다. 이제껏 해온 것 중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라는 점이다. "팬텀이나 지킬에 비하면 지바고는 제 실제 모습과 가장 가깝습니다(웃음). 그래서인지 공감도 아주 잘 되고 있어요." 홍광호는 시인이자 의사였던 지바고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요즘 시도 쓰고 의사인 친구에게 이야기를 듣고 있다. 러시아 혁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역시 모든 면에서 이번 작품은 홍광호에게 하나의 도전이 될 전망이다. "그동안 해온 작품들이 뮤지컬의 극적인 특성을 최대화한 것이었다면, 이 작품은 상대적으로 연극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노래가 연기나 대사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거죠." 그래서 소위 '홍광호식' 연기와 노래를 아는 관객뿐만 아니라 홍광호 자신에게도 이번 공연은 배우로서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된다.'홍광호' 하면 노래가 떠오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홍광호의 춤도 등장한다. 그는 "왈츠 장면이 있는데, 내가 참… 춤을 못추더라"며 자신의 굳은 몸을 원망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아크로바틱 동작도 배워 몸이 유연했다는 그는 "언젠가 신나는 춤이 나오는 작품으로 춤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의 팬들은 이런 변화와 관계없이 이번 작품에 대해 기대와 지지를 나타내고 있다. '홍라울' '홍팬텀' '홍지킬' 등 그는 유독 성(姓)과 캐릭터를 합성한 별명으로 사랑받는 배우 중 하나다. 아직 공연 개막 전인데도 인터넷에서는 벌써부터 '홍바고' 신드롬의 전조가 보인다. 배우나 제작사로서는 이런 팬들의 강한 충성도가 든든할 법도 하다.그러나 홍광호는 "내가 이런 과분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스스로 되묻게 된다"고 말한다. 뮤지컬배우라면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작품들을 20대에 모두 섭렵한 배우로서는 겸손한 고민이다. "얼마 전 교회에서 '교만'에 대한 설교를 듣다가 얼굴이 빨개졌다"고 털어놓은 그는 "올해는 반성과 함께 '내려놓는' 해로 만들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이는 스타보다는 배우의 자세로 돌아가겠다는 결의다. 김규종 협력연출, 원미솔 음악감독 등 제작진을 비롯해 김지우, 전미도, 강필석 등 동료배우들을 극찬하며 "나는 그저 숟가락 하나 얹은 것뿐"이라고 손사래를 치는 모습이 공치사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이런 결의에서 비롯된다. 30대에 접어들어 연기인생 2막을 열고 있는 그의 관심사는 이처럼 테크닉이 아닌 진정성에 관한 것이다. "스스로 믿는 게 가장 힘들다고 하잖아요. 뻔한 말 같지만 진정성을 가지고 캐릭터에 몰입한다면 관객도 자연스럽게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을까요." 배우로서의 평가는 무대 위에서의 모습으로 족하다는 그는, 그래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도 할 줄 모르는 아날로그 배우다. 하지만 그의 그런 우직한 촌스러움이 지난 세기의 인물을 무대 위에 되살리는 새로운 무기가 되고 있다. 그 무기는 이번에도 '홍바고' 신드롬을 재현할 수 있을까. 그 여부는 27일 샤롯데씨어터에서 공개된다.
송준호(공연칼럼니스트)·태상준 기자 birdcage@·사진_이준구(ARC)<ⓒ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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