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나의 캐디편지] '너무 느려서 숨 넘어 가요~'

'1, 2, 3, 4, 5, 6, 7…' 속으로 세어봅니다.그리고 고객님의 백스윙 시작과 동시에 "굿 샷~"이라고 크게 외쳤지만 제 입이 너무 민망합니다. 진짜 공을 치신 게 아니고 연습 스윙을 하셨기 때문이죠. 다시 어드레스를 잡으십니다. 저는 또 세어봅니다. '1, 2, 3, 4, 5, 6, 7, 8, 9, 10, 휴…'하고 긴 한숨이 나오고 그제서야 공을 치시는 고객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드레스가 긴 고객님께는 좀 서둘러 달라는 부탁을 드리지 못합니다. 이미 오랜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 어드레스 10초 가운데 단 1초만 빼도 이내 샷이 망가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18홀 내내 뛰어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제 행동이라도 빨라야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으니까요. 다른 동반자 분들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모두들 저와 같은 마음이신지 다소 서두르는 행동으로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고객님께서 샷을 하실 때마다 옆에 서서 "굿, 굿, 굿~"만 여러 차례, 샷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연거푸 '굿'만 외치다 끝이 납니다. 근데 고객님께서 제게 말씀하십니다. "언니가 자꾸 빨리 가자고 하니까 스윙을 제대로 못하겠어." "엥?" 저는 말도 못하고 속만 태우고 있었는데 빨리 가자고 그랬다니요. 고객님께서는 제가 옆에 바짝 붙어 고객님을 째려보는 눈빛을 느끼셨는지 제가 자꾸 서두른다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셨습니다. 고객님의 점점 더 길어지는 어드레스에 숨이 넘어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차라리 고객님을 안 보는 게 낫겠다 싶어 애써 외면하면 "내 공 좀 봐줘" 하시며 또 제 인내심을 테스트하십니다. 저는 참다 참다 용기를 내 말했습니다. "고객님, 다음에 오실 때는 베개랑 이불 좀 가져오세요." 그러자 고객님께서는 "왜?"라고 물어보십니다. "고객님 어드레스 하실 때 한숨 자려고요."스카이72 캐디 goldhanna@hanmail.net<ⓒ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골프팀 손은정 기자 ejso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