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상복 터진 제자와 불운했던 스승

모든 종목에서 한 번밖에 도전의 기회가 없는 상이 있다. 신인왕(Rookie of The Year)이다. 스스로의 노력 여하에 따라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여러 차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최우수선수(Most Valuable Player)보다 선정되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 미국 프로 야구 메이저리그에서는 1940년부터 신인왕을 선정했다. 첫 수상자는 루 브룩이다. 한국 프로야구는 1983년부터 신인왕을 뽑았는데 OB 베어스 박종훈이 1호의 영광을 누렸다. 프로 야구 원년인 1982년에는 모든 선수가 신인이라는 이유로 신인왕을 선정하지 않았다. 680만 관중을 동원하며 출범 이후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프로 야구 2011년 시즌 신인왕의 영예는 삼성 라이온즈 외야수 배영섭이 차지했다. 배영섭은 지난 7일 열린 프로 야구 기자단 투표에서 91표 가운데 65표를 얻어 26표에 그친 LG 트윈스의 고졸 새내기 임찬규를 따돌렸다. '순수 신인' 임찬규는 신인왕 경쟁에서 졌지만 9승(6패 7세이브)의 좋은 성적을 데뷔 첫 해 기록했다. 1988년 MBC 청룡의 이용철은 7승(11패)으로 신인왕이 되기도 했다. 배영섭은 '순수 신인'이 아니다. 언론에서 쓰는 표현으로 '중고 신인'이다. 수원 유신고등학교와 동국대를 나와 2009년 삼성에 입단한 배영섭은 프로 데뷔 3년째에 신인왕이 됐다. 프로 첫해에는 어깨를 다쳐 경기를 뛰지 못했고 지난해 11경기에 출전해 24타수 7안타 타율 2할9푼2리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그리고 올해 340타수 100안타 타율 2할9푼4리에 24타점 그리고 도루 33개(3위)로 삼성의 '뛰는 야구'를 앞장서 이끌었다. 그런데 어떻게 프로 3년째인 선수가 신인왕이 될 수 있었을까. 프로 야구를 관장하는 한국야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데뷔 5시즌 이내 선수로 투수는 30이닝 이내, 타자는 50타석 이내 출전한 선수면 신인왕 후보가 될 수 있다. 배영섭은 데뷔한 뒤 2시즌 동안 26타석을 기록, 올해 신인왕 후보가 될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 같았으면 배영섭에게는 기회가 없었다. 메이저리그에선 데뷔한 해에만 신인왕이 될 수 있다. 국내 프로 야구에서 이런 규정을 둔 까닭은 일생에 단 한번 뿐인 신인왕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보다 많은 선수들에게 주기 위해서다. 지난 10일 전국적으로 일제히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 같은 경우도 그렇지만 운동선수들도 실수 또는 컨디션 부진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승엽과 고 장효조 삼성 2군 감독(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이런 규정에 따라 최근 국내 프로 야구에서는 '중고 신인' 신인왕이 줄지어 나오고 있다. 1989년 태평양 돌핑스 박정현과 1995년 삼성 라이온스 이동수가 프로 2년생으로 신인왕을 받은 이후 주춤했던 '중고 신인' 신인왕은 2000년대 들어 2003년 현대 유니콘스 이동학에 이어 2008년 삼성 최형우, 2009년 이용찬, 지난해 양의지(이상 두산 베어스) 등 최근 3년 연속 나오고 있다. 신인왕도 그렇고 최우수선수도 그렇고 '상복(賞福)'이 있게 마련이다. 지난 9월 타계한 장효조는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아마추어와 달리 프로에서는 상복이 참 없었다. 공교롭게도 그는 프로에 갓 입문한 배영섭의 스승이었다. 출발은 신인왕 선정 과정으로 거슬러올라간다. 1982년 서울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출전 문제로 이듬해 프로에 데뷔한 장효조는 1983년 시즌 타율과 출루율 1위, 홈런과 타점 3위 등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도 박종훈에게 밀렸다. '중고 신인'으로 참신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굳이 따지자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장효조는 아마추어 실업 야구 포철에서 최고의 왼손 타자로 맹활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왠지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 장효조는 2년 뒤인 1985년 다시 한 번 상복에 운다. 삼성이 전, 후기 리그 1위를 휩쓸어 한국시리즈를 없애고 통합 우승을 차지한 그해 장효조는 타율과 출루율 1위, 타점 3위에 올랐다. 우승 구단 주력 타자로 시즌 MVP 후보로 손색없는 성적이었다. 그러나 홈런 공동 1위, 타율 3위, 타점 2위인 해태 타이거즈 김성한에게 밀렸다. 다승 1위인 김시진과 홈런 공동 1위인 이만수가 집안싸움을 한 까닭일 수도 있지만 결과는 신인왕 때와 마찬가지로 석연찮았다. 1983년 해태가 우승할 때 이만수가 MVP가 된데 이어 프로 야구 4시즌 사이에 두 번이나 우승 구단이 아닌 구단에서 시즌 MVP가 나왔다. 전례도 있어 장효조의 시즌 MVP 탈락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보는 팬들도 있었지만 상당수의 팬들은 장효조가 "상복이 없어도 정말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아시아경제 & 재밌는 뉴스, 즐거운 하루 "스포츠투데이(stoo.com)">

대중문화부 이종길 기자 leemea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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