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완득이>에서 지지리도 재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담담히 받아들일 줄 아는 완득(유아인)이를 보며 저도 모르게 ‘고 녀석 참 기특하네’ 했답니다. 제가 워낙 징징대는 타입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유아인 씨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마따나 완득이가 어른이 바라는 착한 정서를 따르는 아이이기 때문일 거예요. 물론 겉으로야 공부 못하고 주먹 좀 쓰는 거친 아이로 보이나 실은 불행 중에도 큰 일탈 없이 아버지에게, 선생님에게 순응하며 사는 아이니까요. 하지만 늘 태연자약하니 무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다고 속앓이를 안했을 리가 있나요. 옥탑방에 사는 가난한 처지에 척추 장애인 아버지와 필리핀 출신의, 역시나 가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어머니까지. 그처럼 이중, 삼중의 불행이 겹쳤으니 애는 속이 제 속이 아니겠건만 어른의 시선으로 슬퍼도 울지 않고 투정 하나 안 부린다며 칭찬을 하고 있는 거였어요. 무조건 마음 아파해주기부터 했어야 옳은데 어른 티나 내고 있은 꼴이니 어찌나 미안한지 모르겠습니다.<H3>그건 어른들이 바라는 아이들이라구요</H3>
홀로된 아버지를 걱정하는 다름(왼쪽)이보다는 피터지게 싸우는 크리스탈-종석 남매가 더 실제와 가깝죠.
사실 TV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른들이 바라는 아이가 태반이죠. 현실적인 아이 모습이 아니라 어른들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아이들 말이에요. MBC <애정만만세>에 나오는 법률사무소 남대문(안상태) 사무장의 어린 딸 다름(김유빈)이만 봐도 그래요. 아무리 드라마라고 하지만 유치원 다니는 어린애가 떼를 쓸 줄을 아나 울기를 하나, 늘 방긋방긋 웃으며 혼자 잘 지내다 못해 급기야 짝 없이 홀로 지내는 아빠 걱정에 새엄마 자리 물색에 나선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고요. 물론 오정심(윤현숙) 씨가 사진 속의 엄마와 꼭 빼어 닮았다고는 하나 남녀 사이에 오작교 노릇을 하기엔 아이가 너무 어리지 않나요? 오히려 되바라졌다는 느낌을 주긴 해도 변주리(변정수)네 딸 세라(박하영)가 요즘 애들 쪽에 가깝겠죠. 허나 시청자 입장에서는 두 아이 중 다름이 쪽에, 비현실적인 인형 같은 아이 쪽에 훨씬 정이 가기 마련이잖아요. 우리 애가 쟤처럼 속 깊고 사랑스러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나이에 그렇게 속이 깊고 철이 들었다면 그게 애겠어요? 어른이지.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버르장머리 없는 오누이 종석(이종석)이와 수정(크리스탈)이를 두고 요즘 말들이 많지만 솔직히 꾹꾹 눌러 참는 완득이보다는 다락방이며 중고 노트북을 가지고 치고받고 대차게 싸우는 그 아이들이 훨씬 사실적이긴 합니다. 그렇게 뭘 얻겠다고, 뭘 사달라고 피나게 졸라야 아이잖아요? 종석이와 같은 나이임에도 완득이는 조르기는커녕 어머니에게 신발을 사줍니다. 핏덩이인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어머니와의 첫 대면 때 추레한 어머니의 신발을 눈여겨보았던 거죠. 보통 그 또래 남자아이라면 폭풍 같은 감정에 휩싸여 이도 저도 눈에 안 들어올 순간이었지 싶은데 완득이는 참 엽렵하기도 하지요. <H3>어쩜 그리 완득이는 속이 깊을까요</H3>
완득이가 더도 덜도 아닌 동주 선생님 같은 어른으로 성장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범하게 부모님 그늘에서 편히 자란 아이들도 어른들의 왜곡된 잣대에 상처를 입을 적이 많거늘 완득이처럼 불행 한 복판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오죽 억울하고 속 답답한 일들이 많겠습니까. 완득이가 단 한번이라도 어른에게 뭘 바랐던 적이 있으면 이렇게 짠하지는 않겠어요. 선생님을 죽여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긴 하지만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뭘 바라진 않았어요. 아, 딱 한번 아버지에게 청을 한 적이 있긴 하네요. 킥복싱을 하게 허락해달라고 했었죠. 그나마 완득이 곁에 어른의 시선이 아닌, 완득이에게 눈높이를 맞춰주는 동주(김윤석) 선생님이 계셨으니 다행이었죠. 이 자리를 빌려 완득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 전하고 싶어요. 부디 우리 완득이가 더도 덜도 아닌 동주 선생님 같은 어른으로 성장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바람조차도 어른의 시선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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