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현역 영관급 장교 4명이 10여 년 전에 북한에 납치됐다는 제보가 있었다는 북한 전문가의 법정 증언이 나오면서 북한의 피랍에 대한 의혹이 일고 있다. 군당국은 일단 사실을 부정했다.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납치됐다든지, 4명이라든지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안보와 북한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씨는 “(19일 증언한 것으로 알려진) 대부분 내용은 변호인이 얘기한 것이고, 나는 당시 그런 말을 들었다고 했을 뿐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진술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서울고법에 따르면 군사기밀을 북한에 넘겨준 혐의로 기소된 `흑금성' 박모 씨(57세)의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전직 북한전문기자 정모 씨는 19일 `한국의 합동참모본부 중령이 1999년 중국 국경에서 납치되고 이모 대령이 북한에 체포됐으며 또 다른 이모 대령과 박모 대령이 북한에서 납치ㆍ체포된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변호인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그는 당시 소속 신문사에서 이 내용의 취재가 중단됐는데 이는 보도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라고 부연했다.박씨 변호인은 공판에서 북한이 납치한 우리 측 장교를 통해 2000년대 초반 이미 우리 군의 ‘작전계획 5027’을 입수했고, 2004년에는 이런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작전계획 5027’은 북한의 선제공격과 도발 등 유사시를 대비한 한미연합사의 공동 군 운용 계획으로, 1급 군사기밀이다. 한 군사 전문가는 “지난 1999년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놓고 벌어진 ‘연평해전’으로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을 시기였다”면서 “당시 우리 군 장교들의 잇단 납치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일반에 공개될 경우 정권에 상당히 부담이 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10년판 ‘군사정전위원회 편람’(제8집)을 기초로 작성한 ‘휴전 이후 북한 주요 도발 내용 현황’에 따르면 북한의 민간 도발 행위 가운데 가장 많은 유형이 어선·어민 납치다. 어부들이 해안에서 조업하다 기관고장이나 실수로 북방한계선(NLL)을 월선하거나 공해상에서 조업 중에 북한 경비정에 나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 북한은 ‘자진월북’ 또는 ‘간첩행위자’로 몰아 송환을 거부하곤 했다. 납북 어부는 55년 5월 28일 대성호 선원 10명이 피랍된 것을 시작으로 61~66년 사이에는 매년 한두 척의 어선들이 나포되곤 했다. 그러다 남북 간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67년에 어선 67척과 어부 352명이 무더기로 납북되기 시작, 68년에는 어선 100척과 어부 805명이 납북됐다. 어선 피랍사건은 서해안보다 동해안에서 더 많이 발생했으며, 최근까지 약 37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직 428명(2008년 현재)이 송환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민간인이 탑승한 항공기를 납치하고 폭파하기도 했다. 58년 2월 15일 부산 수영비행장을 떠나 서울로 향하던 KNA(창랑호)가 평택 상공에서 북한 무장공작원들에 의해 납치돼 평양 순안공항에 강제착륙당했다. 민항기에 대한 첫 번째 도발로서 우리 국회가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는 메시지를 6·25참전 16개국에 보내는 등 강력히 항의하자 탑승자 26명 전원을 돌려보냈다.69년 12월 11일에는 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 등 51명을 태우고 강릉을 출발해 서울로 오던 KAL(YS-11)기가 대관령 상공에서 납치돼 원산으로 기수를 돌렸다. 납치 66일 만인 70년 2월 14일 탑승자 중 승객 39명만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고 승무원·승객 12명(납치범 포함)의 송환은 이뤄지지 않았다.북한의 도발 중에는 국내로 침투한 간첩이 민간인을 납치하거나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되는 사례도 있다. 77년 8월 전남 홍도에서 이민교(당시 18세)·최승민(17세) 군이, 78년 8월 10일 역시 홍도에서 이명우·홍건표(이상 당시 17세) 군이, 8월 15일 군산 선유도에서 김영남(당시 16세) 군이 고교생 신분으로 북한의 공작선에 의해 해안가에서 납치된 바 있다. 이 중 김영남 군의 경우는 80년 6월 충남 보령으로 해상 침투 중 검거된 간첩 김광현에 의해 확인됐다. 또 홍건표·이명우 군은 95년에 검거된 간첩에 의해 북한에서 홍 교관 등으로 불리며 활동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해외에서 납치된 예는 71년 서독에서 납치된 유성근 씨 일가족 4명이 첫 번째로 꼽힌다. 78년 4월 13일에는 노르웨이에서 고상문 씨가, 87년 7월 20일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이재환 씨가 납치됐다. 중국과의 교류가 늘어난 후인 95년 7월 9일에는 안승운 목사, 99년 9월 7일에는 무역업자 장세철 씨, 2000년 1월에는 옌지에서 김동식 목사 등이 납치됐다.지난 2007년 7월 12일, 관광객으로 북한 금강산을 찾은 주부 박왕자 씨가 북한군의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숨졌다. 박씨가 금지구역에 들어갔다는 것이 북한군이 내세운 총격 이유로서 금강산 관광 이후 첫 민간인 피살사건으로 기록된다.양낙규 기자 if@<ⓒ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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