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기업 옥죄는 지체상금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방위사업청이 방산품 납품지연 등을 이유로 방산기업에 부과하는 벌금(지체상금)의 면제기준이 '고무줄'이다. 심사를 담당하는 개인의 결정에 따라 면제 규모가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 면제를 받지 못해 납품수익보다 더 많은 벌금을 무는 기업도 있다. 방사청의 일부 실무자는 내부감사나 감사원 지적을 피하기 위해, 일단 벌금을 부과하고 보자는 식이어서, 지체상금의 부과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9일 방산업계와 군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한해동안 방위사업청이 400여개 방산기업에 부과한 지체상금은 총 166억원에 달한다. 지체상금(遲滯償金)이란 방산기업이 납품기한을 지키지 못할 경우 방위사업청에서 부과하는 일종의 벌금이다. 지체상금 부과기준은 지연납품액×지체일수×지체상금률이다. 업체별로는 지난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45억 8500만원, 삼성 SDS 21억 600만원, 크라크 인터내셔날 10억 9800만원, 풍산 7억 6700만원, 현대위아(주) 5억 1700만원, 성도기공(주) 3억4300만원, 보잉 3억 1400만원, 이오시스템 2억 4400만원순이다.지체상금 부과기준은 명확하나 면제를 받을 수 있는 기준은 모호하다. 방산기업의 면제사유를 명시한 국가계약법 26조에는 천재지변, 정부시책, 수출국의 파업.화재.전쟁, 국가의 사유로 발견치 못한 기술보완, 규격변경 등이다. 면제기준이 '코에 붙이면 코걸이, 귀에 붙이면 귀걸이' 식이다. 지체상금이 부과될 경우 방산기업은 면제신청서를 제출하고, 해당 계약팀장이 심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계약팀장의 입장에서는 내부 감사나 감사원의 지적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 군수조달분과위원회로 결정권을 넘긴다. 군수조달분과위도 판단이 애매모호하고 비자발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3일은 KAI의 1800여억 지체상금 면제심사를 하기로 했지만 분과위원 19명중 5명은 불참했다. 또 이날 면제기준 14개항목 중 7개항목은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9일로 미뤄졌다. KAI는 노후화된 미국 항공기 동체를 들여와 성능을 개량하는 해상초계기 P-3CK사업이 지난해 말 전력화했다. 이 사업은 1~2호기는 미국의 L3COM사가 성능 개량 후 납품하고 나머지 8호기까지는 이후 KAI가 기술을 이전받아 국내에서 개발한 사업이다. 하지만 1~2호기가 납품이 지연되면서 전체 전력화 일정이 7개월가량 늦춰졌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주계약자인 KAI는 전체 사업비에 육박하는 1,800여억 원을 지체상금으로 방사청에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사업규모는 총 4914억으로 L-3사가 2965억원, KAI가 1949억을 투자했다. KAI의 투자액과 벌금액이 비슷해진 것이다.국내 방산업체에 대한 역차별의 문제도 있다. 국내 업체는 지체상금 한도액이 없지만 외국업체는 납품 금액의 10%를 한도액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KAI '해상초계기 P-3CK사업'의 경우 국내방산기업의 지체상금은 1800여억원이지만 외국방산기업인 L-3사의 지체상금은 296억 원에 불과하다. 중소 방산기업의 경우 지체상금의 타격은 더 크다. 이오시스템은 지난해 지체상금이 2억 4400만원이 부과됐다. 하지만 납품하기로 한 K11복합소총의 조준경에 결함이 발견되면서 올해 추가로 30억원에 가까운 지체상금을 물어야 한다. 이오시스템의 지난해 매출 750억원이며 순이익은 10억원으로 순익의 3배를 벌금으로 물어야 한다. 방위산업기업의 한 관계자는 "감사원이 방산비리감사를 강화하면서 방사청 담당자들은 일단 벌금을 매기고 보자는 식의 보신주의가 횡행하고 있다"며 "일부 방산기업들은 납품이익보다 벌금형식인 지체상금이 더 많아 사업을 포기해야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방사청 관계자는 "지체상금을 결정해야할 사람들이 진급을 눈에 두고 있다면 재량권을 행사하기 보다는 엄격하게 지체상금을 부과하는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낙규 기자 if@<ⓒ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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