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F1 D-3] 32세에 요절한 F1드라이버를 위해

◆ 캐나다 몬트리올, 질 빌르너브 서킷F1 캐나다 그랑프리는 퀘벡주 몬트리올의 질 빌르너브 서킷(4.361km)에서 펼쳐진다. 이 서킷은 76년, 몬트리올을 흐르는 세인트 로렌스강의 인공섬인 노트르담에 만들어지면서 ‘노트르담’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 서킷에서 F1 그랑프리가 처음 개최된 것은 78년이다. 서킷의 명칭이 바뀐 것은 퀘벡 출신으로 캐나다의 국민적인 영웅 질 빌르너브(1900~1901)가 82년 5월 8일 벨기에 그랑프리 예선 중 사고로 숨을 거두자 그를 기리기 위한 것. 지금도 스타트 라인에는 그랑프리 개최에 맞춰 ‘Salut Gilles(질을 추모하며)’이라는 문장이 선명하게 새겨진다. 78년부터 87년을 제외하고 매년 F1 캐나다 GP가 열렸지만 2008년 10월 세계모터스포츠평의회(WMSC)의 결정에 따라 작년 캘린더에서 제외됐다. 이후 FOM과 몬트리올시 당국의 극적인 협의로 2014년까지 계약을 해 올해부터 다시 이름을 올렸다. 전체적인 코스 레이아웃은 직선을 시케인과 헤어핀으로 이어놓은 ‘스톱&고’의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때문에 코너에서부터 트랙션이나 톱 스피드를 낼 수 있는 엔진의 파워가 레이스의 승부를 결정짓는 요인으로 작용, F1 캘린더에 속한 서킷 중 가장 브레이크가 어려운 곳으로 꼽힌다. 출발과 결승선은 그리고 피트가 처음에는 코스의 왼쪽에 있었지만 그 후 반대쪽으로 옮겼다. 안전을 고려한 레이아웃으로 첫 고속 S코너도 거의 직선에 가까운 완만한 커브로 방향을 틀었다. 좁은 코스에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부분도 많아 코스를 벗어나면 충돌사고로 연결되어 세이프티 카가 출동하는 장면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각 팀들은 1, 2회 정도 세이프티 카가 투입될 상황을 고려해 레이스 전략을 세운다. 질 빌르너브 서킷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는 가장 긴 직선로와 만나는 마지막 시케인이다. 감속에 실패하면 머신이 연석을 타고 튀어 콘크리트 월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99년에는 월드 챔피언 데이먼 힐(영국·96년), 미하엘 슈마허(독일·94~95년), 자크 빌르너브(캐나다·97년) 등이 잇따라 이 벽(이 때문에 치욕의 벽으로 불린다)을 들이받았다. 하지만 여기서 살아남은 당시 현역 월드 챔피언 미카 하키넨(핀란드·98~99년)이 우승컵을 안으면서 ‘챔피언의 벽’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최종 시케인의 한쪽 벽에는 ‘어서 오십시오 퀘벡주에...’라는 프랑스어 간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코스 공략은 출발과 동시에 세나 코너로 달려든 F1 머신이 시속132km에서 첫 브레이크를 밟은 후 시속102km로 2번 코너를 돈다. 이후 속도를 올려 시속254km로 3번 코너로 진입하고 연이은 4번은 시속183km로 감속한다. 5번을 지난 첫 타임을 측정하는 6번 코너 앞까지 걸린 시간은 20.4초. 7번 코너를 시속200km로 빠져 나온 머신의 속도는 시속300km를 넘긴다. 8~9번 코너를 시속2010km로 탈출하고 최종 헤어핀을 앞둔 시점에서 시속295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헤어핀의 통과 속도는 시속56km로 급감속을 해야 하기에 적절하게 제어하지 못하면 보호벽을 들이받을 가능성이 크다. 헤어핀을 벗어나면서 머신은 가속도가 붙어 13번 코너에서 시속316km에 이른다. 이어 메인 스트리트를 질주하면서 다시 만나는 첫 코너의 브레이크 포인트는 시속302km, 이렇게 70랩을 소화해야만 캐나다 그랑프리의 주인공이 결정된다.
◆캐나다의 F1 영웅 ‘질 빌르너브’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 근교에서 1950년 1월 18일 프랑스계 캐나다인으로 출생한 질 빌르너브는 스노모빌 경기 선수로 활동하다 73년부터 자동차경주로 전향해 포뮬러 포드, 포뮬러 아틀랜틱의 챔피언이 됐다. 제임스 헌트의 추천으로 맥라렌과 계약, 77년 7월 17일 열린 F1 제10전 영국 GP에서 데뷔전을 치른다. 이때 그를 지켜 본 엔초 페라리의 눈에 들어 제16전 캐나다 GP부터 페라리 유니폼을 입게 됐다. 하지만 최종전 일본 GP(후지 스피드웨이)에서 티렐 경주차와 추돌, 빌르너브의 페라리가 출입 금지구역에 있던 관중들을 덮치면서 2명이 사망하고 9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빌르너브는 업무상 과실치사죄가 적용돼 사실상 일본에서 영구 추방됐고, 일부 이 여파로 인해 일본은 10년 동안 F1을 개최하지 않았다. 78년, 질 빌르너브는 캐나다 GP(당시 첫 개최된 노트르담 서킷)에서 예선 3위로 출발해 첫 우승컵을 안으며 일약 영웅으로 떠올랐다. 79년에는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챔피언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다.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펼친 질은 82년 F1 제5전 벨기에 GP 예선 2일째(1982년 5월 8일)를, 타임 어택을 시도하는 중 앞 차의 뒷바퀴를 타는 사고로 큰 부상을 당해 그날 밤 9시를 지나면서 32세의 생을 마감했다. 당시의 카메라에 생생하게 잡혀 1983년 ‘위닝 런’, 1987년 ‘굿바이 히어로’등의 영화로 소개되었다. 또 사후 캐나다인으로 거둔 업적을 기려 노트르담 서킷은 질 빌르너브 서킷으로 이름을 바꿔 해마다 F1 캐나다 GP의 무대가 되고 있다. 빌르너브는 F1에서 폴 포지션 2회, 패스테스트 랩 8회, 6승을 거뒀다. 한편 부인 조안과의 사이에 둔 장남 자크도 아버지 뒤를 이어 F1 드라이버가 됐고 97년 월드 챔피언에 올라 부친이 못다 이룬 꿈을 실현했다. 지선호 기자 likemor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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