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달중 기자] 뚜렷한 색채는 없지만 그의 주변엔 항상 사람이 따른다. 정계와 학계에 형성된 인맥이 풍성해 '마당발'로 통하기도 한다.한때 그는 서울대 시절 시국사범으로 전국에 현상금이 붙기도 했다. 이후 영국으로 유학 길에 올라 옥스퍼드대 정치학 박사를 받은 뒤 서강대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그때 교수와 제자 신분으로 맺은 연으로 지금까지 그와 함께 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그가 정계에 진출한 것은 1996년 광명시 보궐선거다. 이후 탄탄대로를 달렸다. 다음해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된 후 한약분쟁을 마무리 지었다.일 년 뒤인 98년에는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출마했으나 임창렬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 재수 끝에 지금의 차기 대권 주자의 발판을 마련한 경기지사가 됐다.07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을 탈당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해 또 다시 고배를 마셨다.대선 참패 이후 무너진 당의 기초를 추스르기 위해 대통합민주신당의 당 대표 추대를 수락해 구 민주계와 화학적 통합을 시도하기 위해 대통합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꿨다.그는 18대 총선을 이끌었으나 공천 후유증으로 당은 혼돈에 빠졌고 선거 결과는 참패로 끝냈다.2008년 7.6 전당대회에서 정세균 전 대표에게 당권을 물려 준 뒤 2년 동안 강원도에 칩거생활을 하면서 여의도를 떠났다.이후 침거생활 동안 각종 선거에서 유세지원을 통해 당내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비마다 그의 앞길에 암초가 됐던 한나라당 탈당 경력은 10.3 전대에서 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떨쳐버릴 수 있게 됐다.▲서울 광명(47) ▲서울대 정치학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학 박사 ▲인하대 교수 ▲서강대 교수 ▲경기도지사 ▲보건복지부 장관 ▲14, 15, 16대 국회의원 ▲통합민주당 대표김달중 기자 dal@<ⓒ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정치경제부 김달중 기자 dal@ⓒ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