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오서 '행복한 스케이터 되자'던 그들의 꿈은?

아름다운 시작과 막장의 끝..그들이 함께 한 4년

[아시아경제 조범자 기자]2006년 4월. 서울 목동에서 열린 아이스쇼에 열여섯살의 앳된 김연아(고려대)가 등장했다. 김연아에게 세계 피겨스타들이 총출동한 '아이스쇼'는 첫 무대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또다른 첫 만남이 있었다. 바로 캐나다 피겨스타 브라이언 오서 코치였다. 1984년, 1988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낸 오서 코치는 선수 시절 ‘미스터 트리플 악셀’로 불릴 정도로 트리플 악셀을 잘 구사했다. 또 예술성이 높은 안무와 표현력으로도 유명했다. 아이스쇼에서 '느낌'이 온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 씨는 곧바로 캐나다 토론토 크리켓클럽 빙상장으로 날아가 오서 코치에게 김연아의 전담코치가 되어 줄 것을 요청했다. 남자 선수 가운데 점프 기술과 표현력에서 최고로 꼽히는 오서. 시니어 데뷔를 앞둔 김연아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오서는 기술 면에서도 많은 것을 가르쳤지만 무엇보다 김연아의 표현력을 세계 최고로 끌어올린 일등공신이었다. "처음엔 연아가 화가 난 줄 알았다"고 할만큼 김연아는 무표정에 가까웠다. 하지만 오서는 김연아를 “행복한 스케이터"로 만들고 싶어했고 김연아를 웃게 했다. 그리고 김연아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끌어냈다.오서-김연아 콤비는 시니어 첫 무대인 2006년 11월 초 그랑프리 캐나다에서 3위에 올랐고 11월 중순 그랑프리 에릭 봉파르에서 첫 금메달을 안으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2007년 세계선수권 3위,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으로 시니어 첫 시즌을 대성공으로 마친 후 오서 코치는 2007년 4월 캐나디언 스타스 온 아이스 투어를 고별무대로 프로스케이터의 직업을 버리고 "앞으로는 김연아를 전담 지도하겠다"고 선언한다.이후로 승승장구. 2007~2008시즌 그랑프리파이널 우승, 2009년 세계선수권 우승, 2009-2010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금메달 등 수많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오서 코치는 TV 중계 때 김연아의 점프가 성공할 때마다 만세를 부르 듯 주먹쥔 손을 번쩍 들어올리거나 아이처럼 껑충껑충 뛰며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눈길을 모았다. 특히 밴쿠버올림픽 경기 전, 그 자신도 따내지 못한 금메달에 도전하는 제자를 바라보는 '아빠의 미소'로 네티즌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이에 힘입어 오서는 김연아와 함께 가전제품 CF를 촬영하고 지난 7월엔 자서전 '한번의 비상을 위한 천번의 점프'를 출간하기도 했다. 김연아도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올림픽 금메달을 딴 후 오서 코치가 ‘자신을 믿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날 밤 정말 많이 울었다. 국적이 다른데 너무 고마웠다”며 녹화 도중 눈물을 펑펑 쏟을 정도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올림픽 후 김연아의 소속사가 IB스포츠에서 박미희씨가 대표로 취임한 올댓스포츠로 바뀌면서 오서 코치와 관계 지속에 대한 불안한 시선이 쏟아졌다.게다가 이 시기 오서 코치가 김연아의 라이벌인 아사다 마오의 코치직을 제안받았다는 소문과 보도가 나왔다. 오서는 "코치 제의는 받았지만 내게 1순위는 여전히 김연아다"며 제안을 뿌리쳤지만 둘 사이는 더 이상 가까워지지 못했다. 고양에서 열린 올댓스포츠 아이스쇼에 오서가 불참하면서 불화설은 더 커졌다.그리고 마침내 지난 24일 오서 코치가 IMG를 통해 일방적 결별 통보를 주장하면서 둘 사이 남아있던 마지막 믿음은 깨졌다. '행복한 스케이터'를 만들겠다던 이들의 순수한 꿈은 더이상 남아 있지 않는 듯 하다. 진실공방과 폭로전으로 서로를 할퀸 채 4년간의 아름다운 동행을 '막장드라마'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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