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기자
고(故) 현암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 회장이 한국화약을 방문한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회사를 소개하고 있다.
이후 현암은 화학 국산화를 위해 강력한 다이너마이트를 제조하는 데 인력과 설비를 집중하는 총력전을 펼쳤다.1957년 5월 29일. 인천화약공장 초화공실을 높게 에워 싼 토제 위로 대형의 직각 삼각형의 적색 깃발이 올라 다이너마이트 시험 생산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초화공실의 적색 깃발은 초화 작업 중임을 알리는 신호였다.글리세린 350g을 초화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약 50분. 이 시간을 위해 3명의 숙련공들은 맹물로만 수십 차례의 모형 실습을 반복하며 호흡을 맞췄다. 작업 개시 오전 11시를 알리자 인천공장은 깊은 정적에 휩싸였다. 1분, 2분, 가슴을 졸이며 기다리다 마침내 50분이 됐다. 제조 책임자인 신현기 과장으로부터 토제 위의 깃발을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고 밖으로 나갔던 제조과 직원이 아직 깃발이 날리고 있다는 보고를 했다. 예정 시간이 훨씬 지나도록 작업이 끝나지 않자 초화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시계가 오후 1시 30분에 이르자 더 기다릴 수 없던 신 과장은 사무실을 뛰쳐나와 초화공실로 달려갔다. 바로 그때 "우리가 해 냈다!"고 외치는 소리와 함께 토제 위의 깃발이 보이지 않던 것. 실로 한국의 화약 산업사에 신기원을 이루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다이너마이트를 생산하는 국가가 됐다는 감격에 한화인은 모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