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짜고치는 고스톱 행태 여전- 예상질문 할당 등 시나리오- 몸싸움 대비 용역 고용까지[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처음으로 주주총회에 참석하는 투자자 A씨는 부푼 맘을 안고 주총장에 들어섰다 웃지 못할 광경을 접했다. "본 주주는 계약 체결 승인의 건을 회사가 제출한 원안대로 승인할 것을 정식으로 동의합니다", "재청합니다" 오고가는 대화가 대본을 읽는 듯 어색했기 때문. A씨는 "잘 짜여진 한 편의 연극을 보고 나온 것 같다"며 "중간중간 정해진 사람들이 '옳소!'라고 외칠 때는 직원들도 웃음을 억지로 참더라"고 전했다. #한 상장회사의 주주총회 현장. 이날 주주총회에서는 재무제표 승인의 건, 정관 일부 변경의 건, 이사 및 사외이사 선임의 건 그리고 감사위원 선임의 건, 올해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 등 의안이 모두 원안 그대로 통과됐다. 꽤 많은 안건이었지만 주총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약 20분만에 끝났다. 어떤 주주도 지난해 이 기업의 실적 악화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았다. 참석한 주주들의 대부분이 회사 직원들이라 형식적인 진행을 위해 단순히 자리만 채운 것. 의장이 안건에 대해서 설명하면 곧바로 직원들의 동의 및 제청이 이어졌고, 주주총회가 마무리되자 여기저기서 직원들끼리 서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말이 오갈 뿐이었다. 주주총회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기업들 사이에서 아직도 '짜고 치는 고스톱'을 일삼는 경우가 많다. 회사의 중요한 행사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하려는 기업들의 욕심이 이런 상황을 꾸준히 연출하고 있는 것. H상장사 주주총회 담당자는 "주총 시즌이 다가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시나리오 짜기'"라며 "돌발상황시 대처사항, 예상질문, 적재적소에 어떤 직원이 어떤 질문을 하고 동의하는지 등등을 다 짜놓는다"고 밝혔다. 담당자를 통해 입수한 주주총회 시나리오에는 '질문이 3가지 이상 나오면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며 "의장께서 이미 충분한 설명을 드렸고 여기오신 주주님들이 모두 바쁜데 표결에 부치자"고 주장하라는 멘트까지 일일이 정해져 있다. 아예 표결까지 생략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표결을 생략하고 찬성의 표시로 박수를 치자"는 멘트 뒤엔 '큰 박수와 함성 지속'이라는 주문사항까지 적혀 있어 실소를 머금게 한다. 담당자는 "기업의 1년 농사를 결정하는 사안인 만큼 꼼꼼히 준비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가끔은 이렇게 진행할거면 주주총회는 왜 필요한지,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낭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도 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몸싸움을 위한 용역을 준비해놓는 곳도 있다. 회사 관계자는 "주총장에 난입하는 일명 '뻗치기' 소액주주들의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한 코스닥기업 주주총회 참석자는 "용역 고용은 의안을 날치기 통과한 후에 소액주주들이 도망가는 대표를 못 따라오도록 로비를 봉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일로 인해 급기야는 주총장이 몸싸움과 욕설로 난무한 곳으로 변하기도 한다. 지난해 회사 분할을 실시한 한 상장사의 소액주주는 "경영진들과 소통하고, 평소 궁금하던 것을 물어보고 싶어 주주총회에 참석했는데 뒤쪽에서 날 보고 주총꾼이라며 따가운 시선을 보내더라"며 "어차피 기업 입장대로 진행할거면 왜 통지서를 보내 초대했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소액주주의 요구가 기업 발전에 저해가 된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소액주주와 기업의 불신은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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