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이범수는 영화 '킹콩을 들다'에서 전직 역도 국가대표 선수이자 시골 중학교 역도 코치인 이지봉으로 출연한다. 킹콩은 위세를 과시하거나 분노를 표현할 때 가슴을 두드리지만, 이지봉은 통증 때문에 가슴을 두드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킹콩'이라 부른다.
"시나리오를 처음 보는 순간 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역도선수로 좌절을 겪고 코치로 제2의 삶을 살게 된 뒤 역도 소녀들에게 모든 걸 퍼주고 희생하는 이지봉이라는 인물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죠. 제가 역도선수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시나리오를 처음 보는 순간 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범수의 집요함은 영화 도입부에 바로 드러난다. "역도 국가대표 선수로 올림픽에서 역기를 드는 모습이 진짜 같지 않으면 관객을 끌고 갈 수 없다"는 생각에 닭가슴살과 바나나만 먹으며 매일 8시간씩 3개월간 훈련을 받았다. 염동철 국가대표 역도코치로부터 실전 같은 훈련을 받으며 그는 조금씩 선수로 변해갔다. 그래서인지 '킹콩을 들다'의 이지봉은 근육의 모양도, 역기를 드는 자세도 정말 선수처럼 보인다.
"후배 배우들은 살을 찌워야 해서 푸짐한 등심을 먹는데 저는 차에 가서 바나나를 먹어야 했어요. 그 마음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겁니다. 굶는 건 둘째치고 역도선수 같은 자세가 나와야 했어요. 선수 같은 자세가 제일 중요했죠. 그런데 한번은 벨트를 매지 않고 역기를 들다가 허리를 삐끗했어요.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4번 요추가 안 좋다고 하더라고요. 촬영이 코앞이라 미룰 수 없었어요. 정신력으로 연기했죠."
'킹콩을 들다'에서 이범수는 그간 쌓아온 연기 경험을 집약시켜 한 인물의 희로애락을 표현한다. 그 결과 이범수는 '킹콩을 들다' 시사 후 주위의 동료 배우들부터 많은 칭찬을 받고 있다. 예의상 하는 빈말이 아니다. 강약을 조절하고 웃음과 눈물 사이를 순발력 있게 오가는 이범수의 연기를 칭찬하지 않기란 힘들다.
"흥행 여부에 관계 없이 '킹콩을 들다'가 제 대표작이 될 것 같습니다. 이지봉 역에는 희로애락이 다 녹아있기 때문에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어요. 관객이 그런 인물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상태에서 영화를 끌고 가야 했죠. 제 의도가 잘 표현된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배우가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보고 흠뻑 젖어들기가 쉽지 않잖아요. 민망하죠. 그런데 '킹콩을 들다'를 처음 볼 때는 하나하나 새록새록 떠오르며 푹 빠져들게 되더군요."
이범수는 좋은 연기를 위해서는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품, 인물,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어야 관객들이 거부감 없이 순수하게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다. 연기에 대한 그의 깊은 고민은 학구열로 이어지고 있다.
이범수는 최근 현장에서 십수년간 공부한 연기를 이론으로 연결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과정에 합격한 것이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중대 예술대학원에서 공연예술학을 공부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실기와 이론을 접목시켜 보고 싶습니다. 영화예술에 있어서 배우의 미학적인 역할이 있는 거니까요. 그런 게 진심으로 궁금했어요. 연기에 대한 실험정신이 강한 것처럼 연기에 대한 이론적인 궁금증이 있어요. 스무 살 학창시절 때부터 관심을 가져온 분야이기 때문에 언제나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연기에 대한 이범수의 애정과 집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고경석 기자 kave@asiae.co.kr
사진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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