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성기자
Rubens - The Rape of the Daughters of Leucippus, 1618, Oil on canvas, 88x82.875in, 224x210.5cm, Alte Pinakothek, Munich
그림에 등장인물을 자세히 보면 여느 인간들의 형상과 좀 다른 느낌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 이들은 인간이 아닌 그리스신화 속 신들의 모습이다. 재미난 것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한 신들은 인간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희노애락을 그대로 겪는다. 또한 인간처럼 실수도 종종 저지른다. 간통도 비일비재하고, 심지어 강간까지. 한마디로 골칫덩어리 신들인 셈이다. 그림 속 장면도 제우스의 아들 카스토르(Castor)와 폴룩스(Pollux)가 말을 타고 나타나 레우키포스의 두 딸을 강제로 납치(혹은 강간)하는 그리스신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레우키포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메세네의 왕으로, 그의 딸 힐라이라와 포이베는 제우스의 아들들에게 납치되어 각각 그들의 아내가 된다. 그림에는 여인들의 금발머리와 분홍빛 얼굴, 풍만한 육체 등이 매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갑자기 놀라 앞발을 높이 쳐들고 뛰어오르는 회색 말과 여인들을 납치하는 두 남성의 모습에서 생동감과 함께 넘치는 힘이 확연히 느껴진다. 만약 이런 장면이 사진으로 표현된다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이 정도의 덩치를 가진 여성모델을 구하기조차 힘들었으리라. 그림을 다시 보면, 말에서 뛰어내려 두 여인을 한꺼번에 말에 태우려는 남자와 말 위에 탄 채 한 여인을 끌어올리는 남자의 난폭한 힘의 표현은 동물적인 힘과 남성의 원시적 폭력성을 암시하는 동시에 나약한 여인의 모습을 대치시켜 오히려 여성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인물을 대각선과 수직선으로 배치하고, 여인들의 밝은 살결과 남성들의 구릿빛 피부색으로 풍부한 색채의 대조를 이뤄 빼어난 조형미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놀라 날뛰고 있는 회색 말과는 달리 여유 있게 서 있는 밤색 말의 옆에는 에로스(로마신화의 큐피드)가 매달려 있는 것은 작가의 애교로 봐줄만하다. 지난 수세기 동안 여성의 나체에 대한 접근은 이처럼 사진, 그림, 조각 등 장르적 관행에 따라 발전을 거듭해왔고, 사람들에게 특유의 예술적 감수성을 자극시키는 데 적지 않은 일조를 해왔던 것이다. 이규성 기자 bobos@asiae.co.kr<ⓒ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