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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이론을 무시한 정책이 성공한 사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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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이론을 무시한 정책이 성공한 사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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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여름 미국 뉴욕에 간 적이 있다. 당시는 한 세기가 끝나가는 때로,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뉴욕시립도서관에서 20세기를 빛낸 도서들이라는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포함해 쟁쟁한 책이 많았는데 경제학 서적으로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일반이론'과 밀턴 프리드먼의 '소비함수론' 두 권이 전시됐다. 참고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로는 당연히 케인스와 미국의 세 경제학자 어빙 피셔, 프리드먼, 로버트 루커스 네 사람을 꼽는다. 모두 거시경제학자다.


케인스의 일반이론은 1936년에 출간됐다. 그러나 그 전부터 케인스는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개입해 정부지출을 통해 유효수요를 증가시켜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 사람이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다.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케인스의 권고에 따라 방대한 토목 사업이 시행됐으며 금융, 복지, 사회안전망이 대대적으로 정비됐다. 그럼에도 1930년대 미국의 실업률은 10%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1938년 다시 찾아온 불황 때는 20%까지 치솟기도 했다.


앞에서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경제학자 네 명이 모두 거시경제학자임을 언급했듯이 지난 세기는 거시경제학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세기 후반 거시경제학은 경제를 더 잘 이해하고 문제가 생길 때 적절한 처방을 낼 수 있는 정도로까지 발전했다. 예를 들어 2007~2008년 발생한 세계 금융 위기를 대불황이라고 일컫는데, 지금과 같은 거시경제의 이해가 없었다면 1930년대와 같이 대공황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다음 시행되고 있는 거시경제 정책들에 대해 적지 않은 논란이 존재한다. 그 핵심에는 소득 주도 성장,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법인세 인상, 재정의 남용 등이 있다. 소득 주도 성장이라고 명명된 이론의 원조는 케인스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경제성장을 위해 제시된 것이 아니고 1930년대 대공황을 타개하는 방법의 하나로 가능성을 말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공황은 유효수요의 부족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수요를 증대시킬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 방법의 하나로 케인스는 소득이 높은 소비자에게서 낮은 소비자에게로 소득을 이전해주는 것을 제안했다.


즉 소득이 낮은 소비자는 한계소비성향이 높고, 소득이 높은 소비자는 한계소비성향이 낮기 때문에 소득이 낮은 소비자에게 소득이 이전되면 소비가 증가하고 소득 또한 증가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 소득의 증가는 완전고용 수준의 잠재소득이 증가하는 게 아니라 잠재소득보다 30%나 아래 있던 실제 소득이 잠재소득 수준의 방향으로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소득의 재분배가 소비 수요를 증대해 유효수요를 증가시킬 수 있는 것은 대공황과 같이 실업률이 매우 높고 소득이 잠재소득에서 크게 낮아져 있을 때다. 지금 대한민국과 같이 완전고용 수준에 거의 근접해 있는 선진 경제에서는 실효성이 없는 정책이다.


경제 정책은 상황과 경제 발전 단계에 따라 다르게 사용돼야만 한다.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과 발전 단계에서 소득 주도 성장은 이론적인 배경이 없거나 허약하다고 할 수 있다. 기초가 탄탄한 경우에도 쉽지 않은데 근거가 허약한 가설을 한 나라의 경제 운용 이론으로 삼다니 이것을 용기라고 해야 하나, 만용이라고 해야 하나. 이론을 무시한 정책이 성공한 사례가 없음을 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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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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