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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특파원칼럼]세계최강대국의 흔들리는 신뢰
최종수정 2019.08.13 11:01기사입력 2019.08.13 11:01

[아시아경제 뉴욕=김봉수 특파원] "세계 경제ㆍ외교사에서 보기 드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손성원 미국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교수는 최근 뉴욕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중국이 미국을 향해 "신뢰를 잃었다"고 비난하는 일이 잦아졌다며 이같이 평가했다. 실제 이달 초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미국을 향해 '신뢰 상실'을 대놓고 거론하기도 했다.


발단은 미국이 제공했다. 지난 1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3000억달러(약 365조7000억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9월부터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지난 6월 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휴전 합의'를 일방적으로 깬 조치였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것도 미국이 스스로 정한 기준ㆍ절차조차 무시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미 교역촉진법이 규정한 환율조작국 조건은 ▲1년간 200억달러 이상의 대미 무역흑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초과 경상수지 흑자 ▲지속적인 외환시장 개입 등 3가지다. 이 중 중국은 무역흑자 조항에만 해당한다. 앞서 미 재무부도 상반기 환율 정책 보고서에서 중국을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을 뿐이다. 제프리 색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가 CNN 기고에서 "내부 가이드라인도 어긴 임의적 조치"라고 비판했을 정도다.

사실 산차이(山寨ㆍ위조품) 경제로 성장한 중국이 미국을 향해 '신뢰도' 문제로 비난하는 일은 낯선 풍경이다. 중국은 14억 인구의 내수시장을 무기로 외국 기업들의 기술과 콘텐츠를 약탈해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데다 각종 특혜와 보조금 지원을 통해 국영 기업의 덩치를 키워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무리수에도 세계 각국이 은근히 중국의 버릇을 고쳐줬으면 하고 바라는 분위기도 형성돼 있다.


각국이 미국의 중국 견제에는 동조하고 있지만 미국의 신뢰도 역시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초강대국으로 대접받는 것은 강력한 군사ㆍ경제력 덕분이다. 동시에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높은 대외적 신뢰도를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은 이미 문명이 구축된 각기 다른 대륙ㆍ국가에서 몰려든 이민자들이 기존 국가ㆍ사회 시스템과 체제들의 과오를 반성해 만들어낸 '아메리칸드림'의 나라다. 그동안 국제 질서를 주도하면서 스스로도 민주주의의 힘을 바탕으로 자유, 공정, 관용, 인권, 개방성 등을 전 세계에 보급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특정 인물ㆍ집단보다는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 나라이다 보니 변동성이 작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만큼 세계는 글로벌 리더로서의 미국을 신뢰해왔다.


최근 미국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것은 시스템이 아닌 사람이 정책 결정을 좌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정점엔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 미ㆍ중 무역 협상뿐인가. 취임 후 이란핵협정(JCPOAㆍ포괄적공동행동계획)ㆍ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등으로 국제사회에 혼란을 일으켰다. 장기적ㆍ전략적 이익보다는 눈앞의 금전만 추구하면서 동맹국의 신뢰마저 잃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인종차별적 발언, 이민자 사회에 대한 공격, 통화 정책 개입 시도 등으로 기존 가치를 흔들고 있다.


정부 시스템도 혼란스럽다. 최근 미 행정부의 가장 핵심적인 정책 소통 창구는 백악관이나 각 부처 대변인이 아닌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이다. 그는 트윗을 통해 인사는 물론 주요 정책까지 '독점' 발표하고 있다. 반면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3월 이후 언론 대상 공개 브리핑을 하지 않고 있다.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을 경제 참모 대부분의 반대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독단으로 밀어붙였다는 후문은 미국의 의사결정 시스템의 위기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물론 국제사회의 신뢰를 외면하면서도 당당히 미국만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밑바탕에는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이 자리 잡고 있다. 더욱이 절반에 가까운 미국인이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지난달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워싱턴DC 상공에 'B-2 스텔스 폭격기'가 등장하자 행사 참석자들이 '유에스에이(USA)'를 연호한 장면이 이를 상징한다. 그들이 외치는 '미국'에는 더 이상 과거의 '신뢰'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뉴욕=김봉수 특파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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