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화 시점·대상 여전히 안갯속
부처 간 조기 도입 vs 기업 수용성
"정책 신뢰 훼손" 우려도
당초 이달 초 발표 예정이었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로드맵이 관계 부처 간 이견으로 연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기후위기 대응을 담당하는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조기 도입에 무게를 두는 반면 산업통상부와 금융위원회는 기업의 수용 가능성을 고려해 충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3일 기후부와 한국거래소 등 관계 기관 취재를 종합하면, 금융위는 당초 이달 초 ESG 공시 로드맵을 공개할 계획이었으나 부처 간 조율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발표 시점을 늦추기로 했다. 정확한 로드맵 발표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금융위는 올해 1분기 중 로드맵 발표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해당 내용은 지난해 12월 진행된 대통령 업무보고에도 포함됐다. 기후부 관계자는 "2월 초 발표를 목표로 했던 일정이 변경됐다"며 "금융위가 산업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하며 로드맵에 담길 세부 내용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금융위는 2021년 ESG 공시 로드맵을 통해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ESG 공시를 의무화하겠다고 예고했다. 그러나 2023년 10월 주요국 ESG 공시 일정 등을 고려해 의무화 시점을 2026년 이후로 연기하되, 구체적인 시행 시기는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를 위해 금융위는 2024년 5월부터 8월까지 재계와 기관투자가 등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 기업들은 기후 공시의 필요성에는 대체로 공감했지만 공시 대상 범위와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수준, 공시 부담 증가, 공시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소송 리스크 등에 우려를 표했다.
ESG 공시 의무화 시점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같은 배경에는 부처 간 이견이 자리하고 있다. 기후부는 기후위기 대응과 국제 공조 차원에서 공시 제도의 조기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반면 산업부와 금융위는 기업들이 공시 체계를 충분히 정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재계는 기업들이 내부 데이터 관리 체계와 공시 시스템을 정비할 수 있도록, 로드맵 도입 시기를 늦춰야 한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상장회사협회 관계자는 "로드맵의 핵심은 '언제'보다 '무엇을 공시할 것인가'에 있다"며 "현재는 구체적인 공시 내용과 적용 방식이 막연하게 논의되는 단계로, 산업계와 금융당국 모두 기업에 충분한 준비 기간을 부여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현재 논의의 핵심 쟁점은 공시 도입 시기와 대상 기업 범위다. 금융위가 공시 도입을 앞당길 경우 2027년, 2028년, 2029년 등 하나를 선택하되, 공시 대상 기업 규모를 축소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반대로 도입 시기를 늦출 경우에는 공시 대상 기업을 확대하는 방향이 거론된다. 공시 방식 역시 확정되지 않았다. 공시 성격을 법정 공시로 할지, 금융감독원 공시로 할지를 두고도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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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맵 발표가 차일피일 늦어지면서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아시아기후변화투자자그룹(AIGCC)은 국내 ESG 공시 로드맵 발표가 반복적으로 지연될 경우 정책 신뢰를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국부 펀드를 포함한 70개 이상 회원국을 보유한 AIGCC는 지난해 11월 글로벌 자산운용사들과 함께 한국 금융위원회에 공개서한을 보내 ESG 공시 의무화 로드맵을 조속히 확정해 발표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AIGCC 관계자는 "당초 2024년 말 발표가 거론됐다가 2025년 상반기, 다시 2025년 말로 미뤄졌고,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정책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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