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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맥]달러를 쓰는 소버린 AI의 역설과 디지털 금융 주권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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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맥]달러를 쓰는 소버린 AI의 역설과 디지털 금융 주권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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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은 인류 역사상 생산성이 가장 극적으로 향상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은 단순한 업무 보조를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AI 에이전트(Agent)' 시대를 열었다. 이제 AI 에이전트들은 인간을 대신해 보고서를 쓰고, 코드를 짜며, 심지어 서로 협력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 화려한 기술 혁명의 이면에서, 한국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금융 주권을 잃어가고 있다.


AI 에이전트 경제의 핵심은 '초소액 고빈도 결제(Micro-High Frequency Payment)'다. 예컨대 AI가 인간을 대신해 보고서를 작성할 때, 필요한 기사 한 건을 열람하기 위해 5센트를 지불하고, 다른 에이전트에게 데이터 전처리를 맡기며 10센트를 송금하는 식이다.


문제는 기존 금융망이 이 속도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글로벌 결제 기업 스트라이프(Stripe)의 경우 기본 수수료가 약 30센트다. 5센트짜리 정보를 사기 위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수수료를 낼 수는 없다. 이 때문에 AI 에이전트 간 거래의 표준은 자연스럽게 블록체인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으로 굳어져 가는 추세다.


이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진행 중인 현실이다. 코인베이스가 지난 5월 선보인 AI 전용 결제 프로토콜 'x402'는 출시 후 불과 7개월 만에 1억건 이상의 결제를 처리했다고 공개했다. 구글은 9월 AI 결제 프로토콜 'AP2'를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글로벌 결제 공룡 페이팔(PayPal)이 주요 파트너로 합류했다.


그런데 뼈아픈 사실이 있다. 구글의 AP2 개발을 주도한 20명의 핵심 엔지니어 중 2명이 필자 회사 소속 개발자다. 한국이 참여해 만든 기술로 전 세계 AI 에이전트가 결제하고 있지만, 정작 그 결제 수수료와 데이터는 달러 생태계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해 소버린 AI를 육성하고 세계 AI 3강(G3)에 진입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두뇌가 한국산이더라도, 그 혈관을 흐르는 혈액인 '돈'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될 공산이 크다. 한국의 AI 에이전트가 한국 데이터를 학습하고 한국 기업을 위해 일하면서도, 정작 결제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눈앞에 와 있다.


지난 수년간 한국은행의 우려 제기 등으로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이 지연되는 사이, 한국이 선점할 수 있었던 기회들은 손안의 모래처럼 사라지고 있다. 기시감이 드는 장면이다. 2023년 2월, '토큰증권(STO) 가이드라인' 발표 당시 금융위는 제한적인 도입방안을 제시하며 상장주식의 경우 블록체인으로 거래를 처리하기 적절치 않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로빈후드와 바이비트는 미국 주식을 토큰화해 24시간 소수점 거래를 제공하고 있고, 나스닥도 토큰화 증권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규정 변경안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하며 제도권 편입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3년이 지나도록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제한적으로나마 시장이 열리기를 기대했던 STO업계는 고사 직전이다.


업계에는 STO가 3년을 허송세월했듯, 스테이블코인 또한 기약 없는 기다림이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가득하다. 디지털자산과 블록체인뿐만 아니라 새로운 혁신 기술에 대한 정부의 이해 부족, 그리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낡은 규제가 대한민국을 '혁신의 불모지'로 만들고 있다는 무기력증이 팽배하다.


스테이블코인은 AI 혁명이 열어갈 새로운 번영의 시대의 혈맥이 될 가장 기본적인 금융 인프라다. 이에 대한 이해 없이는 한국 기업이 만든 AI 에이전트들이 제대로 된 가치 획득(Value Capture)의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 채 달러 생태계 안에서 일하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AI 시대의 국가경쟁력은 기술력뿐만 아니라, 그 기술이 구동되는 기반인 디지털 금융 인프라를 누가 장악하느냐에 달려 있다. 더 늦기 전에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에 속도를 내야 한다. 아울러 규제 샌드박스를 하루빨리 시행해 혁신의 숨통을 틔워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속해서 언급되고 있는 '스테이블코인 발행 컨소시엄 은행 지분 51% 의무화' 같은 전례 없는 조항이 과연 누구를 위한 규제인지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법이 허용하는 것만 가능한' 현재의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급변하는 미래에 대응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AI와 스테이블코인을 비롯한 수많은 혁신의 파고가 몰아쳐 오는 상황에서 정부 당국이 모든 분야를 제대로 이해해 적절한 규제를 내놓고 국회가 이를 적기에 제도화해 주기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요원하다. 더 늦기 전에 국가 운영 시스템의 근본적인 대전환까지 고민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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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윤 디에스알브이랩스(DSRV) 공동대표




유현석 기자 guspow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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