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글로 신작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미확인 ICBM 대응 혼란 현실적으로 그려
의사 결정 마비가 진짜 재앙
핵미사일 탐지. 목표 시카고. 도착까지 18분. 발사국 불명. 캐스린 비글로 감독이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로 그린 악몽이다. '제로 다크 서티' '허트 로커'로 전쟁영화의 새 장을 펼친 그가 이번엔 핵전쟁 스릴러를 들고 왔다.
이야기는 파격적이다. 핵폭발 장면은 단 한 컷도 없다. 대신 핵미사일 탐지부터 시카고 도달까지 18분을 백악관 상황실, 전략사령부, 대통령 시점으로 세 번 반복한다. 같은 시간, 다른 공간, 엇갈리는 정보. 관객은 결말을 알면서도 다시 18분을 견뎌야 한다.
반복 구조는 단순한 시점 변화가 아니다. 영화는 하나의 중심 사건이 꽃잎처럼 여러 방향으로 퍼져나가는 '플라워 내러티브'를 택했다. 백악관에서는 정보의 혼란을, 전략사령부에서는 시스템의 경직을, 대통령 시점에서는 결정의 무게를 각각 다르게 체감하게 한다.
유발하는 감정도 제각각이다. 첫 번째는 혼란, 두 번째는 무력감, 세 번째는 절망으로 구분된다. 이미 아는 정보를 다시 보는데도 긴장은 오히려 증폭된다. 인간의 판단력이 무너지는 과정 자체가 현실적 공포로 다가온다.
대통령(이드리스 엘바)은 농구 행사장에서 급보를 받는다. 비밀경호국이 헬기로 대피시키는 와중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전략사령관(트레이시 레츠)은 즉각 보복을 주장한다. "선제공격하지 않으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00기가 날아들 걸 각오해야 하는데, 그때쯤 되면 이 전쟁은 이미 진 겁니다." 대통령이 핵 공격 설명서를 넘기며 "이건 미친 짓"이라고 하자 전략사령관은 되받아친다. "아니요, 대통령님. 현실을 보셔야죠."
댄 카블러 전 전략사령부 요원은 기술 자문으로 참여해 제작진의 네브래스카 오펏 공군기지 방문 등을 주선했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이후 어떤 대통령도 핵 대응을 훈련하지 않았다. 브리핑만 받았을 뿐"이라며 영화 속 혼란이 실제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인에게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북한이 잦은 ICBM 도발로 평화를 위협한다. "총알로 총알을 맞힌다"는 요격 실패 장면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와 패트리엇에 의존하는 한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돌아보게 한다.
영화의 결말은 흐릿하다. 대통령이 핵 공격 명령서를 들고 있지만 그의 선택은 보이지 않는다. 화면이 암전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는 동안 둔탁한 폭발음만 반복된다.
이 또한 계산된 선택이다. 관객을 영화 속 인물들처럼 불완전한 정보로 판단하게 한다. 비글로 감독은 "관객은 불확실성 속에 남겨지면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것은 일종의 질문이다. 핵무기로 가득한 화약고에서 인류는 18분 안에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예고편에 깔린 칼 세이건의 내레이션은 부정적이다. "모든 사람이 햇빛 속 먼지 같은 행성에서 삶을 살았다. 장군과 황제들이 그 점의 일부를 잠시 지배하려 피의 강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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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이 종식되고 30여년이 흘렀지만 세계 핵탄두는 여전히 1만2000개에 달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전술핵 사용을 위협하고 중국은 핵전력을 확장한다. 비글로 감독이 말하는 '다이너마이트 집'은 은유가 아니라 현실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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