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화 수출 첨병 '바이주(白酒)'
"원샷 아니라 향으로 마신다"
아시아 주류 중심 홍콩서 소비자 경험 실험
"바이주가 세계의 술이 되는 날, 중국은 문화를 수출하는 새로운 방식을 갖게 될 것이다." <홍콩 주류전문가 토지 퐁(Tomy Fong) 테이스팅 트렌디스(Tasting Trendies) 대표>
지난 6일부터 사흘간 홍콩컨벤션센터(HKCEC)에서 열린 '제17회 홍콩 국제 와인&스피릿 박람회(Hong Kong International Wine & Spirits Fair)'는 중국 전통 증류주 바이주(白酒·백주) 굴기(堀起)의 최전선이었다.
중국은 이번 행사를 신규 수출 채널을 확보하고 유통망을 다변화하는 기회로 삼는 동시에 제품의 향미와 도수, 패키징 등 다양한 소비자 경험 요소를 재정비하고 테스트 무대로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맛보다 경험, 기술보다 스토리, 병보다 잔을 앞세운 중국 주류업계의 변화 방향을 집약적으로 선보인 자리였다.
지난 6~8일 열린 '제17회 홍콩 국제 와인&스피릿 박람회(Hong Kong International Wine & Spirits Fair)'에서 한 방문객이 중국의 바이주 제조사 양하의 제품을 둘러보고 있다.[사진=구은모 기자]
세계 최대 소비 증류주 '바이주'…내수 포화로 해외시장 개척
바이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소비량을 자랑하는 증류주다. 시장조사업체 비즈니스 리서치 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바이주 소비액은 1043억달러(약 152조원)에 달한다. 이는 위스키(841억달러)는 물론 보드카(503억달러) 소비액의 두 배가 넘는 엄청난 금액이다. 하지만 위스키와 보드카가 전 세계 시장에서 폭넓게 소비되는 것과 달리 바이주 소비는 90% 이상 중국 내수 시장으로 한정됐다.
여기에 소비층도 고연령·고소득층에 집중됐고, 젊은 층은 맥주·와인·RTD 등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내수 포화와 성장 둔화라는 구조적 압력 속에서 바이주 업계는 해외시장 개척이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아시아 주류 무역의 중심지인 홍콩을 거점으로 바이주 알리기에 적극 나선 배경이다.
실제 올해 박람회에서는 중국의 10대 바이주 브랜드 가운데 '구이저우 마오타이', '우량예', '양하', '루저우 라오자오', '지앤난춘', '랑주' 등 6개 브랜드가 참가했다. 특히 중국의 국가대표 바이주인 마오타이는 이번 행사에서 정규 제품 외에 다양한 한정판 제품을 적극 선보여 신규 소비자는 물론 기존 마오타이 팬들까지 열광하게 했다. 마오타이는 양조기술이 국가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됐다. 마오타이 관계자는 "마오타이 양조과정은 5가지 주요 공정, 30가지 절차, 165가지 기술단계를 거쳐 완제품까지 최소 5년이 소요된다"며 "그 결과 소스 향이 두드러지고 우아하면서도 섬세하고 포근한 맛을 자랑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6~8일 열린 '제17회 홍콩 국제 와인&스피릿 박람회(Hong Kong International Wine & Spirits Fair)'에서 홍콩의 주류전문가 토미 퐁(Tomy Fong) 테이스팅 트렌디스(Tasting Trendies) 대표가 바이주 트렌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구은모 기자]
음용법부터 페어링 방식까지 경험의 바이주 전략
중국의 바이주 굴기는 단순한 수출 확대가 아니라 '문화 번역(Cultural Translation)'의 과정이다. 중국의 주류업계는 '병에서 잔으로', '화학식에서 향으로', '내수에서 세계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 내 바이주 소비가 한계에 이르면서 세계화를 향한 시도가 단순한 브랜드 마케팅을 넘어 국가 산업 전략의 실험이다.
지난 6~8일 열린 '제17회 홍콩 국제 와인&스피릿 박람회(Hong Kong International Wine & Spirits Fair)'에서 한 방문객이 중국의 바이주 제조사 우량예의 제품을 시음하고 있다.[사진=구은모 기자]
이를 위해 바이주 업계는 페어링 전략도 바꿨다. 일례로 과거 중국 음식에만 어울린다고 여겨졌던 바이주를 이제는 커리나 블루치즈, 피자, 버거 등과 함께 내놓고 있다. 강한 향과 높은 도수가 오히려 향신료·치즈의 지방 성분을 중화시켜 새로운 균형을 만든다는 평가다. 홍콩과 상하이의 일부 레스토랑은 이미 '바이주 페어링 디너'를 정기적으로 열며 외국인 고객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전문가들도 바이주 세계화의 핵심은 '경험의 설계'를 바꾸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토미 퐁 대표는 '리추얼(Ritual)', 즉 음용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작은 잔을 한 번에 비워내는 전통적인 건배 문화 대신 위스키처럼 향을 중심에 둔 테이스팅 문화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튤립형 글라스로 술잔을 바꾸고, 마시는 속도를 늦추는 것만으로도 경험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주는 게임을 위한 술이 아니라, 천천히 향을 읽는 술"이라는 말이 현장을 관통했다.
지금 뜨는 뉴스
'바이 더 글라스(by the glass)'도 또 다른 돌파구로 제시됐다. 바와 레스토랑에서 잔 단위로 판매가 이뤄진다면 초심자의 진입이 훨씬 쉬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홍콩의 일부 호텔과 바에서는 이미 바이주를 위스키·와인과 같은 플라이트(Flight) 구성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퐁 대표는 "고가 병 단위보다 잔 단위 시음이 브랜드 확산의 첫 관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