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업인들](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3080314582429135_1691044526.jpg)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이제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다시 강행하는 상법 개정안 얘기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현행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게 뼈대다. 재계의 강력한 반발에도 상법 개정은 곧 현실화한다. 무엇보다 이재명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기존 안을 좀 더 보완해 세게 해야 한다" "(취임 후) 한 달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기존 안에는 없던 3%룰(감사위원 선출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 3%로 제한)까지 개정안에 포함됐다. 빠르면 오는 12일 국회 처리, 대통령 공포 후 (유예기간 없이) 즉각 시행 등 속도전도 예고됐다.
당장 '모든' 기업(상법은 상장사와 비상장사 모두에 적용)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주주'의 개념이 모호한 데다, 이들에 대한 의무 규정도 '충실' '보호' '공평' 등 원칙적 선언에 그쳐 너무 넓은 그물이라는 게 기업들의 우려다. 그 그물에 걸려 경영은 움츠러들고, 소송에 휩싸이고, 행동주의 펀드들의 경영권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 운운은 어불성설이다. 이사의 경영 행위가 과도한 형사 판단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 누가 위험을 무릅쓰는(risk taking) 공격경영에 나설 것이며, 누가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을 발휘해 창조적 파괴에 나서겠는가.
상법 개정은 이제 상수(常數)이니 되돌릴 수 없다. 보완이 필요하다. 우선 세부절차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규정의 모호함과 선언성에 따른 초기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최근 경제5단체가 제안한 '경영판단의 원칙' 명문화는 적극 고려해야 한다. 회사 이사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다한 경우 회사에 손해를 끼쳤더라도 면책해 주자는 것이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형법상 배임죄, 상법상 특별배임죄 폐지도 검토해 볼 일이다. 기업인들은 배임죄에 대해 경기(驚氣)를 일으킨다. 기준이 애매하고 대상이 너무 넓어서다. 오죽하면 "걸면 걸린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삼라만상을 처벌할 수 있다"는 말이 배임죄에 따라다닐까. "(배임죄 때문에) 늘 교도소 담장을 걷고 있는 느낌"이라는 기업인들. 상법 개정안은 이들을 교도소 쪽으로 떠밀 가능성이 크다. 이러니 상법 개정안을 강하게 주장했던 이복현 전 금융감독원장도 배임죄 폐지를 일종의 '바터(교환책)'처럼 제안한 바 있다. 이 대통령도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에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만나 배임죄 폐지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영권 위협에 노출될 기업들에 포이즌 필(poison pill·최대주주의 저가 신주 발행 권리), 차등의결권, 황금주(거부권 보유 주식) 등의 방어 수단을 부여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과 여당의 유연한 정책 대응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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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에도 촉구한다. 인적·물적 분할을 통한 쪼개기 상장, 상장사의 이익을 지배주주에게로 빼돌리는 터널링(tunneling) 등 구태는 이제 멈춰야 한다. 상법 개정을 촉발한 이런 구태를 반복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외치고, 코스피 레벨업(밸류업)을 논하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김필수 경제금융매니징에디터 pils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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