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실패했지만 재등장만으로 승리한 성기훈
시즌 3은 또 다른 질문을 향한 여정
참가자 신념 교정 불가능…시스템 전복 노릴 듯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질문하고 싶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부작용 속에서 '인간은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뒷세대에게 지속 가능한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까'라고 묻고 싶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 3 공개를 앞둔 황동혁 감독의 말이다. 9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 호텔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고 밝혔다.
질문을 유도하는 이야기의 근간은 성기훈(이정재)과 프론트맨(이병헌)의 대립이다. 성기훈은 다시 찾은 게임에서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다. 자기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시민의식을 발휘한다. 참가자들에게 살아남는 비법을 알려주고, 게임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인지부조화를 극복한 남다른 용기로 집단행동을 촉발한다.
프론트맨은 여전히 인지부조화에 시달린다.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참가자들을 악으로 상정하고, 자기 행동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합리화한다. 일반 도덕이 아닌, 자기 생각에 더 우월하다고 믿는 고유한 도덕에 따라 행동한다. 이에 따른 양심의 가책은 자기 면책과 책임 회피, 비인간화로 벗어난다.
황 감독은 "인간의 믿음에 대한 대결이자 가치관의 승부"라며 "시즌 2 초반에 성기훈과 프론트맨이 나눴던 '인간에 대한 믿음'에 관한 대화가 시즌 3에서 어떻게 마무리될지 지켜보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승패는 이미 결정됐다. 프론트맨이 형성한 이데올로기가 성기훈의 재등장과 함께 무너져버렸다. 지옥 같은 세상을 경험하고도 성숙하고 헌신적인 인간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사회의 불공정함을 우리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쏘아 올렸다. 그것은 오징어 게임에서처럼 우연히 쟁취한 승리가 아니었다.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않고, 인간의 존엄을 지켜 이뤄낸 빛나는 성과였다.
성기훈이 참가자들과 함께 일으킨 반란의 실패는 패배가 아니다. 또 다른 질문을 향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황 감독은 "가장 친한 친구 정배를 잃은 성기훈이 죄책감과 절망감으로 바닥에 떨어졌다가 어떻게 다시 헤쳐 나가는지를 시즌 3에 담았다"고 밝혔다.
이정재는 "성기훈이 처음에는 '이 게임을 멈추겠다', '이 게임을 만든 사람들을 벌하겠다'는 마음으로 돌아왔다면, 이제는 '게임장 안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고 변모해간다"고 말했다.
핵심은 참가자 과반을 설득하지 못했던 영향력을 얼마나 발휘하느냐다. 참가자들은 이미 게임 지속 여부를 두고 두 집단으로 나뉘었다. 분열의 바탕에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제시되는 확증 편향이 있다. 내 믿음을 키우는 정보는 찾아서 간직하고, 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부는 굳게 믿는 신념에 반하는 증거를 알게 되면서도 마음을 바꾸기보다 더 굳힌다. 이처럼 반발 심리에 의해 기존의 편견이 강화되는 경향을 심리학에선 역화 효과라고 부른다.
성기훈이 이를 온전히 바로잡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게임을 지속하려는 참가자들이 뚜렷한 동조성까지 보이는 까닭이다. 동조성은 지도자에게 복종하거나 지시에 따르는 행위와 다르다. 자발적으로 하는 행동으로, 판단을 내리기보다 전체 흐름에 따르려고 한다.
아주 단순한 조건에서도 진실을 버리고 동조성을 택하는 사람이 많다고 할 때, 이런 습관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설사 바꾼다고 해도 빨리 이뤄지지 않고, 일정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시도하더라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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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적 편향을 줄인다고 해서 불균형과 사회 활동의 불공정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현실은 오징어 게임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역사적 배제, 불평등한 기회, 착취적 경제 정책, 부패한 기초 위에서 축적된 불공평한 구조의 유산들이다. 시스템상의 큰 변화 또는 전복만이 그런 거대하고 장기적인 불의를 교정할 수 있다. '오징어 게임'의 마침표인 시즌 3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험대여야만 한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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