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심성 공약 가득한 대선판
진짜 문제는 국가 비전의 문제
국민이 나서서 방향 설계해야
![[K우먼톡]대선이 끝나면 국민은 눈을 더 똑바로 부릅떠야 한다](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3061913272468281_1687148845.jpg)
계엄과 탄핵의 파고를 넘어 주사위는 던져질 것이다. 어떤 이는 새로운 희망으로 설렐 것이고, 또 어떤 이는 누가 되든 시답잖은 마음일 것이다. 영원한 자유인의 상징이 된 '그리스인 조르바'는 선상에서 정치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승객들에게 침을 탁 뱉고 빈정거렸다. "시답잖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창피한 줄 모르고. 무슨 뜻이냐 하면, 임금이니, 민주주의니, 국민투표니, 국회의원이니 해봐야 다 그게 그러니까 하는 소리요."
이번 대선에서 누가 되든 다 '그게 그런 것'일까? 그런 마음이 드는 건 누구도 비전을 보여주지 않아서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가 비전과 전략은 실종되고 비슷비슷한 선심성 공약만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지 혼란스럽다.
국가의 비전은 단순한 미래 청사진이 아니다. 국민의 집단적 상상력과 에너지이자 공동체로서의 존재 이유를 정립해 주는 핵심 기둥이다. 비전이 있는 나라는 도전 앞에서 하나의 목표 아래 국민이 결집하나, 비전이 없는 나라는 이리저리 표류하고 심지어는 멸망한다. 소련의 해체는 연방의 비전이 상실되어서이고, 그 이전 오스만 제국 또한 서구의 근대화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제국의 비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비전이 포퓰리즘으로 대체되면서 쇠락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가 주는 경고는 매우 현실적이다.
보라. 비전은 미래를 향한 상상력을 통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다.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 건설에 이어 '부유한 중국'이라는 비전 아래 개혁개방을 추진했고, 사회적·제도적 모순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중국의 꿈'이라는 중화민족의 부흥을 새로운 비전으로 내세웠다. 미국은 어떠한가? 아메리칸드림이 쇠퇴하자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세워 힘의 결집을 도모하고 있지 않은가? 미국과 중국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국가적 비전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겠다.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한국은 해방 후 비전을 갖고 여기까지 왔다.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국, 박정희 대통령의 잘살아보자는 산업화 비전에 이어 그 후에는 선진국으로 가자는 비전이 우리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지탱해 왔고 지금까지 성공의 핵심적 비결이었다. 그 비전으로 무수한 도전을 이겨낼 힘이 나왔고, 신명 나는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우리가 오늘날의 위기라 일컫는 인구절벽, 지방소멸, 과학기술 수준 저하, 정치. 사회 불신, 극단적 진영대립,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탈 한국 정서 등 복합적 동시다발적 위기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부차적인 위기라 할 수 있다. 그 근저에는 미래를 향한 집단적 약속, 즉 비전의 부재가 진짜 위기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 희생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우리가 함께 만드는, 그리고 미래세대가 누릴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는 국가적 비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어느 대선 후보도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선거 후가 더 중요한 이유이다. 누가 당선이 되든 국가 비전을 정립하도록 국민이 요구하여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살고 우리의 미래세대가 산다.
국민이 오늘의 희생을 감내하고도 남을 신명 나는 국가 비전을 그리기 위해서는 이념적인 진영대립을 극복하고 흔들리는 정체성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 위에 국가 어젠다와 전략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대선 공약들은 사상누각이며 마차가 말을 끌려는 모양새이다. 그리고 선거가 끝난 후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선심성 공약이 정치인들 제멋대로 이행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눈을 부릅뜨고.
지금 뜨는 뉴스
박은하 전 주영국대사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