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초기 미 2사단 소속 참전
쿠누리 전투서 공훈…회고록서도 회상
향년 94세로 남북 통일 못 보고 눈감아

한국전쟁 참전용사 출신으로 미국의 대표적 '지한파'였던 찰스 랭글 전 연방 하원의원이 26일(현지시간) 향년 94세로 별세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WP는 '시티칼리지 오브 뉴욕'의 성명을 인용해 랭글 전 의원이 미국의 현충일(메모리얼데이)인 이날 오전 뉴욕 맨해튼 한 병원에서 타계했다고 밝혔다. 시티칼리지 오브 뉴욕은 고인이 생전 정치학자로 재직한 곳이다.
고인은 1950년 자원입대한 후 한국전쟁 개전 초기 미 2사단 소속으로 참전했다. 중공군의 기습을 받은 쿠누리 전투에서는 40명의 병사를 이끌고 탈출해 이 공훈으로 퍼플하트와 동성 무공훈장을 받았고, 2007년 한국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광화장을 받았다.
그는 이후 자신의 회고록인 '나는 단 하루도 나쁜 날이 없었다(And I Haven't Had a Bad Day Since)'를 통해 이때의 극적인 탈출과 인생 반전을 풀어내기도 했다. 그는 전쟁에서 겪은 경험을 인생의 기준점으로 삼는 등 이후 삶에 관해 낙관적 태도를 유지했다.
한국과의 깊은 인연을 매개로 지난 1977년 같은 민주당 소속이었던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계획에 강력히 반대하기도 했다. 당시 카터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제시했으며, 취임 후 이를 공식 정책으로 추진했다. 당시 한국 정부와 미 의회 및 군 등에서 북한의 공격 우려 등 반발이 거셌지만, 카터 전 대통령은 실제로 일부 주한미군 철수를 단행했다.
고인은 또 미국 의회에서는 '한반도 평화·통일 공동 결의안'(2013년), '이산가족 상봉 촉구 결의안'(2014년), '한국전쟁 종전 결의안'(2015년) 등을 발의했고, 자유무역협정(FTA)에 대체로 비판적인 민주당 소속 의원이었음에도 한미 FTA를 앞장서서 지지해 체결에 기여했다. 그는 미 의회 내 지한파 의원 모임인 코리아코커스의 창립 멤버이기도 했다. 코리아코커스는 2003년 미 하원에서 처음 결성됐으며, 2023년에는 한미 동맹 70주년을 기념해 미 상원에서도 발족됐다.
고인은 한일 과거사 문제에서도 적극적으로 한국 편에 섰다. 2014년 6월 당시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성을 담은 고노 담화 검증 작업에 나섰을 때 부적절하다는 내용의 서한을 일본 정부에 보내는 데 동참했다. 그 이듬해 아베 당시 일본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의회 연설에서 과거사를 사과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발표하는 데도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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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에는 '백선엽 한미동맹상' 수상 소감을 통해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한국전쟁 때) 부상을 입고 한반도를 떠났을 때는 악몽과도 같았다. 한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미국의 7번째 교역 파트너이자 국제적 거인으로 부상한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한국은 항상 내 마음속에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남북 간 평화를 촉진하면서 우리 두 나라(한미)가 더 가까워지고, 내 평생에 분단된 한반도가 통일되길 소망한다." 그는 남북통일을 염원했지만 결국 이를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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